새벽이라 부를 아침, 끝 간 데 없이 하늘로 길게 뻗는 거대한 나무들 틈으로 푸르게 변색하는 하늘의 흔적이 보인다. 그 사이사이를 더듬는 미묘한 새소리들. 하르르 깔깔깔 웃던 요상한 큰 새의 한바탕 소동이 지나고 호로록 호로록거리는 작은 새소리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여명 아래, 어젯밤 어둠 속에서 실감하지 못했던 원시림을 흠뻑 느낀다. 오래 전 쓰러진 나무의 지름은 내 어깨를 훌쩍 넘고 나무들 너머 저편에선 킹콩의 이마라도 불쑥 오를 것 같다. 전날 해변에서 지구 자기장을 느끼며 잤던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옅은 대기의 막인지 안개인지 모를 운무가 나뭇가지 끝단의 형체를 지워가는 가운데 아침식사를 끝냈다. 킹피셔(Kingfisher)에서 하루 세 번밖에 뜨지 않는 바지의 첫 배를 타겠다고 새벽 5시에 일어나 부산을 떤 탓에 꽤 일찍 채비를 마친 셈이다.
맥켄지 호수, 부디 기억만을 가져가세요킹피셔로 넘어가기 전에 75마일 비치에 이은 프레이저 아일랜드의 간판스타 맥켄지 호수(Lake Mckenzie)에 들렀다. 어쩌면 75마일 비치보다도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곳이 여기일지도 모른다. 흰 모래와 푸른빛의 물색으로 완벽한 낙원의 자태를 재현하는 해발 80m의 호수는 눈요기뿐 아니라 천연 수영장으로 인기가 높은 곳이다. 그만큼 보행자들의 야영만 허용되고 차량 캠핑을 엄격히 제한하며 관리하는 곳이기도 하다.
차를 두고 조금 내려가니 안개에 덮인 호수의 자태가 보인다. 옥빛, 쪽빛, 비취색으로 비유되는 아름다운 물색이 안개에 살포시 가려 보일 듯 말 듯 몽환의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수묵 담채의 가장 옅은 선처리가 현세에서 벌어지는, 신선계의 형상을 모사하기 위해 드라이아이스를 뿌려 놓은 것 같은 이 광경을 무엇이라 표현해야 할까. 맥켄지의 짙은 안개는 쉽게 우리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지만 거부의 몸짓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수줍음과 겸양의 표정이다.
그때 무인지경의 백색 향연 속에서 잔잔한 프랑스어 소리가 꿈 같이 들린다. 우리 넷뿐인 줄 알았던 이곳에 또 누군가가 있다. 그들은 언제부터 이 안개와 함께 있었던 것일까. 이곳에서 밤을 샌 것일까? 레게 머리를 한 히피 같은 청년 둘이 백사장에 앉아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데 참말 꿈의 대화처럼 들렸다. 안개로 동화(同化)된 그들의 형체와 그들의 잔잔한 말소리는 주변에서 혹호혹 호호혹 우는 새소리와 함께 그저 자연의 배경으로 존재했다.
일체의 소음이 중단된 시간에 안개 속에 혼자 적막감을 느끼며 고은 시인의 시를 떠올렸다. 정말 '세상은 지금 묵념의 가장자리'에 든 것 같다. 이 광경은 '지나 온 어느 나라에도 없었던 설레는 평화'였다. 나는 이제야 '온갖 것의 보이지 않는 움직임을 바라'보게 된 것이며 '대지의 고백에 처음으로 귀' 기울이게 되었다. 이대로 지체하면 킹피셔에서 떠나는 8시 30분 첫 바지선을 타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감흥을 떨치고 자리를 뜰 수는 없다. 오늘이 아니면 또 어떠랴.
안개에 싸인 호숫가에서 어쩐지 영혼을 세척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근처 '땅에 대한 존중(Respect the land).'이란 푯말에 이렇게 써있다. 부출라(Butchulla) 부족이 그들의 영혼을 위해 의식을 치른 장소이니 부디 기억만을 가져가라고(Please take only memories). 굳이 이런 당부가 아니어도 누군들 이곳을 어지럽힐 수 있을까.
프레이저 아일랜드의 문명세계 킹피셔한참을 기다렸지만 안개는 걷힐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안개에 젖은 영적인 호수만을 가슴에 담기로 하고 두 번째 배편을 바라며 킹피셔로 향했다. 10시 30분에 킹피셔에 도착해 배편을 알아보았으나 오후 1시 30분 배는 이미 만선이라 우리 차를 실을 수 없단다. 마지막 배는 오후 4시에나 떠난다니 다른 선착장을 알아볼 밖에. 그런데 기왕 리조트까지 있는 문명 세계를 접했으니 잠시 누려보기로 했다(레인보우 비치를 포함해 벌써 3박 4일을 모래와 바다와 나무만을 접하며 지냈으니 그리울밖에).
쇼핑 빌리지(Shopping Village) 안 커피숍에서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었다. 우리 차 안에도 샌드위치 재료가 있고 각종 식재료와 취사장비가 있다. 그렇지만 아내가 늘 강조하는 것처럼 누가 해주는 밥이 가장 맛있는 법인지라 망설임 없이 매식을 택한 것이다. 벌써 열 끼 넘게 손수 요리로 끼니를 해결했으니 메뉴야 어찌되었든 사먹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
그런데 쇼핑 빌리지란 게 일종의 과대 작명이어서 커피집을 겸한 작은 빵집 하나에 기념품점, 그리고 주유기 하나가 있는 곳인지라 배를 채우고 난 후 마땅히 '문명'의 혜택을 누릴 만한 게 없다. 그래도 여인들은 기념품점에 한껏 의욕을 보이기에 주차장에 나와 기다리는데 우리와 같은 차종인 '패트롤'을 타고 있는 것이 인연이 되어 이스라엘 친구와 말문이 텄다.
정말 말이 많은 이 친구는 자기 아내가 이스라엘에서 의사인데 45일간 휴가를 내어 가족 모두가 자동차로 호주를 돌아보고 있다느니, 다윈에서 출발해 케언즈 거쳐 이곳까지 왔는데 어디가 좋다느니, 거기서 주은 돌은 어떻다느니, 한국에서의 네 차는 뭐냐느니, 이스라엘에도 그 차가 있다느니 등등의 소소한 이야기를 쉴 새 없이 펼쳐놓는다. 하필 햇빛을 역광으로 받은 터라 한참을 인내하며 들어주는데 고맙게도 아내가 나타난다. 덕분에 그와 이별을 고하고 우린 왕굴바(Wangoolba) 선착장을 향해 떠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문득 조심스러워진다. 나는 이스라엘 사람과의 대화는 처음이다. 때문에 한 사람에 대한 기억을 이스라엘 전체에 대한 인상으로 환치시켜 기억하려 하고 있다. 다른 이들도 나를 볼 때 그렇지 않을까. 수천만 한국인 중 하나인 나를 보고 한국인에 대한 기억을 만들어 저장하는 것은 아닐까. 행실 하나하나에 주의할 노릇이다.
왕굴바 선착장에 가기 전 맥켄지 호수의 안개 걷힌 모습을 다시 보기로 했다. 아침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다시 도착해 호수를 찾았을 때 안개 걷힌 맥켄지는 형언할 수 없는 푸른빛으로 일렁였다. 안개 낀 아침의 모습이 신선을 위한 영계(靈界)였다면 햇살 부서지는 푸른 호수는 인간을 위한 낙원이다. 비키니 차림의 서양아이들이 수영도 하고 물장구를 지치며 제각각 즐거운 모습이다.
여행에서 잘못된 길이란 없다. 그저 다른 길만이 있을 뿐이다. 첫배를 타려는 시도가 어긋났으니 잘못되었다 할 것인가. 만약 두 번째 배가 만선이 아니었다면, 그래서 우리가 그 배로 떠나 지금 육지에 닿았다면 이 휘황한 낙원의 모습을 경험할 수 있었을까. '투명'이라는 말로는 다 형언하지 못할 이 물빛을 모르고 떠났다면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아니, 모르고 떠났으니 안타까울 리는 없겠지. 그저 기억 한 켠을 아름다운 기억으로 채우지 못했을 뿐.
저들처럼 수영복 차림으로 물에 들어가는 것은 엄두는 내지도 못하고 바지만 걷은 채 발을 담갔다. 속이 비치는 물 아닌 물이 내뿜는 맑은 빛과 영혼까지 적시던 그 서늘한 감촉을 천천히 가슴에 담았다.
드디어 아웃백으로맥켄지는 시간을 잊은 자들이 머물러야 하는 곳이다. 왕굴바에서 리버 헤즈(River Heads)로 떠나는 바지선 시간표를 알고 있었지만 호수를 뒤로 한 채 왕굴바로 향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그만 출항시간에 맞추지 못할 뻔했다. 아침에 그러했듯이.
리버헤즈행 바지선에 차를 올리고 멀어져가는 프레이저 아일랜드를 응시했다. 안녕, 프레이저. 2박 3일의 짧은 체류였지만 모래와 원시림, 그리고 맑은 바다가 선물한 청정한 기억은 오래 잊지 못하리라. 경숙도, 최 감독님도, 그리고 아내도 아련한 먼 눈으로 프레이저를 응시하고 있다. 말은 없었으나 그네들의 가슴이 무엇을 담고 있는지 알 것 같다.
50분이 안 되는 짧은 항해 끝에 리버헤즈에 도착했다. 원래 오늘 가고자 했던 로마(Roma)까지 내비게이션을 찍어보니 540Km. 오후 3시가 넘은 시간이니 해지기까지 서너 시간 안에 가는 것은 무리라 그저 가는 데까지 가다가 서기로 했다. 그 동안 모래 위를 누비느라 1/3 수준으로 공기를 뺐던 타이어에 휴대용 에어컴프레서로 바람을 넣으면서 프레이저 아일랜드에서의 감흥을 차곡차곡 접었다. 이제부터는 서쪽으로 서쪽으로 아웃백을 향해 달려야 할 때. 새로운 기대와 흥분이 또아리를 튼다.
리버헤즈에서 30여Km 만에 나타난 첫 마을 마리브루(Marybrough). 식민지 시대 건축이 남아 있는 모습이 이색적인 이곳에서 기름을 가득 채웠다. 호주의 주유소에는 기본적으로 냉각수 보충을 위한 물과 타이어 공기주입기가 비치되어 있고 가게가 딸려 있다. 며칠 간의 야영으로 소진한 식재료도 보충할 겸 장을 보는데 아내가 아보카도 앞에서 반색을 한다.
잘 익은 것은 기름기 함유량이 많아 버터처럼 빵에 발라 먹어도 좋고 그냥 샐러드로도 좋은 이 초록색 과일에 저렇게 목 매는 이유는? 한국에선 하나에 3000원을 주고 샀던 것이 여기선 55센트(1호주 달러=1030원), 그러니까 500원이 조금 넘는 가격이다. 대체로 호주 물가가 한국에 비해 비싼 편이라 여겼는데 이런 과일과 육류에서는 의외의 반전을 만난다.
장을 보고 주유소를 나서려는데 세 명의 젊은 아이들이 탄 승용차가 휙 지나가며 인종차별적인 소리를 외친다. 호주 여행 중 처음 만나는 불유쾌한 현지인의 모습이다. 분명 우리가 장보던 사이 먼저 나간 그 차 같은데 그 때는 대놓고 뭐라 못하고 지나가면서 욕을 했나보다. 지구 어딜 가도 생각이 행동을 못 따라가는 부류는 있다. 한국의 동남아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은 어떠했던가?
마리브루 이후 지나치는 소읍들은 엽서에서 보던 풍경이다. 작은 마을과 펍(Pub), 그리고 그 앞에 카우보이 모자를 쓴 채 담배를 문 중년의 사내들. 목장과 목장. 그리고 농장. 파인애플, 오렌지, 아보카도를 공급한다는 사인들. 점점 내가 기대했던 진짜 호주의 모습이 펼쳐진다. 이제 아웃백으로 다가서고 있는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이미 아웃백에 들어서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 이렇게 말하면 여기 사람들은 펄쩍 뛸까? 여기가 왜 아웃백이냐고, 대도시 브리즈번으로부터도 겨우 200여km 떨어진 근교가 무슨 아웃백이냐고. 그러나 작은 마을 지나고 나면 끝도 없는 벌판을 가다 다시 그만한 동네가 나타나는 풍경은 여느 시골의 모습은 아니다.
최 감독식 조리법저녁 7시 멀건(Murgon)에 도착했다. 아담한 타운의 모습이 정겹다. 더 이상의 밤길 야간 운전은 부담스러워 로마행을 멈추고 여기 카라반 파크에 자리를 폈다. 언제나 그렇듯 시장기를 반찬으로 맛난 저녁을 해치우고 나니 평양 감사가 조카 같다. 감기기가 살짝 돈다던 아내와 경숙은 따뜻하게 마늘을 구워 소주와 곁들이더니 금세 말끔해졌다. 다들 멀쩡한 기운으로 내일의 식사를 고민했다.
"내일은 가급적 많이 가야하니까 아침 시간을 아끼는 차원에서, 그리고 식당을 만나기 어려운 점심을 대비해서 샌드위치를 준비하면 어떨까."경숙이 제안했다.
"내일을 위한 샌드위치는 내가 만들지." 조리장 최경숙을 젖히고 맛의 달인 최 감독님이 나섰다. 그런데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
"각시야, 야채 어디 있지?""은주씨, 소스 좀 만들어 보세요.""각시, 이거 빵 좀 잘라서 주고. 참치캔은 따서 여기에 부어주고, 달걀 좀 부쳐오고, 버터 좀 퍼서 여기에 덜고, 숟가락 어딨지? 잼은......"
참 이상한 요리도 다 있다. 만들겠다던 당사자는 입이 바쁘고 한 시름 놓나 했던 두 여인은 몸이 바쁘다. 모든 재료가 앞에 놓였다. 그제서야 최 감독님의 씻지 않은 두 손이 식빵 사이사이 속을 넣고 빵들을 포갠다. 아주 손쉽게 최 감독표 샌드위치가 완성됐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만든 사람은 분명 최 감독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