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에 아들 녀석이 시골 할머니 집 텃밭에서 달팽이 한 마리를 잡아와 키운 적이 있습니다. 그때 잡아온 달팽이를 매미 집에 넣어두고 물과 상추나 배추 잎을 넣어주면 달팽이는 그걸 먹고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보냈지요. 가끔 당근을 얇게 썰어 주기도 하면 먹는지 안 먹는지 잘 모르지만 불그스름한 것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달팽이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면서 아들은 가끔 먹이와 물을 주는 걸 까먹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달팽이는 몸을 자신이 평생 짊어지고 다닐 움집에 집어넣고 나올 생각을 안 했습니다. 그러다 다시 물과 음식을 주면 죽은 듯이 있던 달팽이는 목을 쭈욱 빼며 느릿느릿 기어오곤 했습니다. 달팽이는 스스로 갇힌 공간에서 자신이 살아가야 할 방법을 터득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달팽이의 삶은 올 봄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주인의 무관심으로 결국은 고치처럼 말라 죽었습니다. 등껍질은 깨진 상태였습니다.
말라 죽은 달팽이를 보며 달팽이의 삶을 생각해봤습니다. 결국 달팽이는 인간이라는 강자에 의해 죽음을 당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해본 것이지요. 이는 우리 사회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달팽이를 생각하는 글을 하나 만들어봤습니다.
어린 아들놈이 매미 집에 달팽이 한 마리 가두고
틈틈이 먹이와 물을 주었다.
푸른 상추와 배추를 주면 파란 똥을 누었고
붉은 당근을 주면 연붉은 똥을 내놓았다.
달팽이는 주는 대로 먹고 쌌다.
그가 한 일은 그것뿐이었지만 그게 삶이었다.
가끔 사랑하는 이들이 생각났지만
가끔 맑은 이슬과 배춧잎 아래에 누워 바라본 총총거리는 별들이 떠올랐지만
달팽이는 이내 체념하곤 했다.
부딪혀봐야 자신이 갈 곳이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달팽이가 신기하다며
크디큰 아들놈은 작디작은 달팽이를 손가락에 올려놓고 뱅글뱅글 놀았다.
달팽이는 그때마다 목을 길다랗게 빼고 온몸의 진액을 싸냈다.
손가락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더듬이의 촉각을 잔뜩 세웠다.
때론 간밤에 먹었던 상추의 퍼런 쌩똥을 싸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도 달팽이의 마음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
삽질과 괭이질로 강바닥이 파헤쳐질 때마다 강이 신음하는 소릴 듣지 못하는 것처럼.
아들놈은 즐거웠겠지만 달팽이는 무서웠으리라.
그렇지만 난 아들놈을 뭐라 하지 못했다.
나도 어느 틈엔가 공범이 되어 있었다.
생명을 생명으로 보지 않고 놀이로 보려하는 얄팍한 공범이 되어가고 있었다.
강을 강으로 보지 않고 돈으로 보려하는 사람처럼.
그렇게 한 계절이 지나고 두 계절이 지나갔다.
시간은 아무 말 없이 눈만 깜박거렸다.
그렇지만 의외로 달팽이는 꿋꿋했다.
먹이와 물을 주든 안 주든 달팽이는 더 이상 촉각을 세우지 않았다.
대신 연약한 자신의 집에 들어가 고치가 되어갔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었다.
그것만이 자신이 살아갈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다 밤이 우는 어느 날 새순이 올라오는 냄새를 맡았다.
메마른 움집 밖으로 힘겹게 촉수를 내밀고 목을 내밀자
어둠이 말을 건넸다.
나가라고 했다 숨지 말라고 했다 살아서 죽은 몸이 되지 말라고 했다
밝음인 채 떠드는 세상과 한 번 맞서보라는 말을 남기고 어둠은 사라졌다.
시간이 흐르고 하늘이 보였다.
온몸의 진액을 다해 한 발 한 발 앞으로 위로 올라갔다.
오르고 오르다 힘이 다해 밑으로 떨어지면 다시 올랐다.
그렇게 수십 번, 등이 욱신거리고 신열이 났다.
등이 허전했다. 등뼈가 나간 것이다. 그런데 시원했다.
깨진 등으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와 손을 내밀어 잡아주었다.
그 손길에 달팽이는 눈물 없이 울었다.
힘없고 가난한 달팽이는……
- '달팽이' 모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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