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이 신하를 대할 때는 승지가 입시하고 두 명의 사관이 좌우에 앉아 모든 내용을 기록했다. 이른바 좌사우언(左事右言)이다. 좌측 사관은 임금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고 우측 사관은 임금과 신하 사이에 오가는 말을 기록했다. 단독 밀담으로 인한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한 제도다. 이는 임금과 신하 모두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다.
독대는 달콤한 유혹이다. 우월적 지위에 있는 임금으로서는 신하를 사신(私臣)으로 만들 수 있고 부름을 받은 신하 역시 총애를 만천하에 과시할 수 있다. 하지만 신하에게 독대는 독배(毒杯)가 될 수 있다. 승지를 배제한 김자점과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벼슬자리를 잃을까 걱정하는 무리들은 오직 시세에 붙을 줄만 안다. 자신이 한 말이 시행되지 않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긴다면 어찌하여 벼슬을 버리고 떠나지 않는단 말인가?"
"모두 임금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통촉하소서."
"장응일은 임금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죄목을 억지로 정하고 죄 없는 사람을 죽이려 한다'고 과인을 비판하였으니 이른바 임금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장응일은 영남 사람으로 사람됨이 자못 질박하여 그렇습니다."
"시골 사람도 이와 같으니 더욱 놀라운 일이다. 말을 이와 같이 하는 것은 뒷날 부관참시를 당할까 두려워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이해에 천착하여 염치를 상실한 것이다. 경은 오늘날 정부와 대각이 하는 것을 보라. 옳은가? 그른가?"
"이것이 어찌 뼈를 가루로 만드는 화를 두려워해서 그러겠습니까. 사람들의 논의에 동요된 데 지나지 않습니다."
"옛적에 양녕을 세자에서 폐할 때, 황희가 홀로 안 된다고 하여 시종 그 뜻을 바꾸지 않았다. 참으로 소견이 있다면 이와 같이 해야 할 것이다. 오늘의 일은 필시 몇 명의 간흉이 유언비어를 날조해 대신들을 위협하여 시일을 끌려고 한 것이다."
"간흉들이 위협하였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결코 그런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대신과 대각이 어찌 이토록 겁을 먹을 수 있겠는가? 나는 장차 예상치 않은 변이 일어날까 두렵다."
"우려할 만한 단서가 있다면 신이 어찌 모르겠습니까."
좌의정 김자점은 임금의 명에 따라 호위청에 머물고 있었다.
"지혜로운 자도 천 번 행하다 보면 한 번은 실수할 수 있다. 변란은 소홀히 여기는 데서 발생하는 것인데 경이 여기에서 한 번 실수하는 것이 아닌가?"
"전하께서 마음을 푸시지 않으니 조정이 갈수록 격화되어 끝내 환란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가령 강씨가 죄를 범한 바가 없다 하더라도 위아래 인심이 이와 같이 돌아가니 강씨는 죽을 만하다. 또한 강씨는 외부의 죄인이 아니니 내가 곧바로 대궐 안에서 사사(賜死)하고자 하는데 경의 생각은 어떤가?"
"대궐 안에서 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본가로 내쫓아 두었다가 서서히 그 죄를 밝혀 처치하는 것이 타당할 듯합니다."
"한 무제가 궁중에서 구익(鉤弋)을 죽인 것은 무슨 까닭이었던가?"
"이 일은 구익의 일과는 다릅니다. 당초에 논의가 없었다면 할 수도 있지만 논의가 된 뒤에는 궁중에서 처단할 수 없습니다. 대간이 반발할 것입니다."
"강씨 처단을 지연하다가 장차 큰 화가 있을까 염려된다."
"신이 목숨을 걸고 그렇지 않으리라는 것을 장담하겠습니다. 혹시 큰 화가 있게 된다면 신을 먼저 처단하소서."
"남들은 다 아는데 경만 모르고 있을까봐 염려가 된다."
인조가 눈을 게슴츠레 뜨고 내려다보았다. 반정 당시 혁명군을 이끌고 자하문 고개를 넘어 창덕궁을 접수할 때, 광해는 훈련대장 이흥립을 궁내에 입직하게 했으나 이흥립은 반정군과 내응하여 혁명군을 맞이했다. 자신이 그러한 전철을 밟지 않을까 걱정한 것이다.
"신은 결단코 그렇지 않다고 확신합니다."
"경이 지금 이와 같이 하고서 만에 하나 뜻밖의 변이 발생한다면 장차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가?"
"만일에 변란이 발생한다면 신을 죽이소서."
"나라가 망한 뒤에 처벌하고 싶어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일이 만일 그런 지경에까지 이른다면 전하께서 비록 신을 죽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신이 자결할 것입니다."
"옛적에 조 무령왕(趙武靈王)이 그의 자식을 폐출하려다 난에 휩싸여 끝내 굶어 죽고 말았는데 이 점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조무령왕은 춘추전국시대 진시황과 함께 전국칠웅에 드는 인물이다. 적장자 안양군을 제치고 첩에게서 낳은 자식 하를 권좌에 앉히니 그가 혜문왕이다. 이에 불만을 품은 안양군이 아버지와 이복동생 혜문왕이 사냥 나간 사이 전불례와 작당하여 난을 일으켰다. 형제가 골육상쟁을 벌이고 있는 사이 영빈 별궁에 갇힌 조무령왕은 굶어죽고 말았다.
"강씨는 단지 죄를 얻은 한 과부입니다. 어찌 이와 같은 우려할 만한 환란이 있겠습니까."
"경이 이와 같이 말하니 내 깊이 믿겠다."
"조속히 영상과 우상을 불러서 의논하소서."
"두 재상은 그전부터 실없는 의논에 동요되어 사실을 돌아보지 않았는데 지금 부른다 하더라도 즐겨 오겠는가?"
"최명길, 이경여, 이경석도 다시 불러 의논하소서."
"이경여가 조정이 뒤숭숭할 것이라고 말했던 것은 바로 오늘을 말 한 것이다."
"전하께서 여러 신하들을 불신하여 이처럼 의심하고 계시니 신은 나랏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신료들은 과인더러 신하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신료들은 내 얘기에 얼마나 귀 기울였는가? 임금을 성의 없이 섬기고도 임금이 우대하기를 바라는 것이 옳은 일인가? 맹자가 말하기를 '임금이 신하를 초개처럼 여기면 신하가 임금을 원수와 같이 본다'고 했다. 지금 신하가 임금을 이와 같이 보고 있으니 임금이 신하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그러나 이것은 내가 덕이 박한 소치이니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하겠는가."
인조가 탄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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