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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발끈 단단히 조여매고

세석에서 천왕봉까지 한발 한발 걷는다. 

 

산비알 뙈기에 

철쭉꽃 피빛으로 물들어 가고,

자지러진 그리움처럼

하얀 산안개들 피어난다.

  

여기 저기 쾅쾅

지뢰 터지는 소리를 내며

지리산 열두 폭포들

'짧고 굵게' 외치며

하얀 꽃잎 날리며 낙하한다. 

 

저 6. 25 동란 때  

피묻은 태극기를

휘날리며 전우의 시체를

짓밟고 짓밟고 넘어가 

압록강까지 진격했다지...

 

이렇게 나 한발 한발

저 둥실둥실

구름밭 위로 걸어가면,

 

내 아버지 피난 내려오면서,

한사코 고향집 지키겠다고

고집 부리셔서, 홀로 남겨진 

증조할머니 만날 수 있을까. 

 

2.

지리산은 오를수록 

더 깊이 올라가는 산.

 

천일염처럼

따갑게 쏟아져 내리는

오월의 잘 익은 햇살에,

 

산의 겨드랑이마다

푹푹 그날의 피냄새 풍기며 

철쭉꽃 다투어 피어 난다

 

막 알 껍질을 깨부수고 나온 

지리산 뻐꾸새 울음 소리

산의 폐부까지 스며든다.

 

나는 한발 한발

지리산 깊이 오를수록  

오래 잊고 산 

북에 계신 증조 할머니 생각

하얀 물안개처럼 피어나고,

 

지리산은 물소리를

실타래처럼 풀어 풀어

저 *피아골 계곡까지 

환하게 어둠 속에

길 하나를 내어준다.

 

 

덧붙이는 글 | *피아골은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에 있는 골짜기로, 지리산의 관문인 노고단에서 섬진강으로 향하는 물줄기가 동남쪽으로 깊이 빠져나간 큰 계곡이다. 6.25 동란 직후 ‘피아골’이란 영화 작품이 나왔던 탓으로 흔히들 동란 때 이곳에서 동족상잔의 피를 많이 흘려 피아골이라 부르게 된 것으로 잘못 알고 있으나 오랜 옛날부터 불러 내려오는 유서 갚은 이름이다. 그 어원을 살펴 보면 옛날에 속세를 버리고 한적한 이곳 선경을 찾은 선객들이 이곳에 오곡중의 하나인 피를 많이 가꾸었던 연고로 자연히 피밭골이라 부르게 된 것이 그 후 점차 그 발음이 피아골로 전화된 것이라 한다.활엽수의 원시림이 울창하며, 피아골은 ‘지리10경’에 들만큼 가을단풍이 유명하고 식물이 능선별로 구분되어 분포한다. 산이 단풍에 의해 붉고(산홍; 山紅), 그 붉은 산이 계곡물에 비쳐서 물도 붉고(수홍; 水紅), 또한 그 물에 반사된 사람의 얼굴 또한 붉어진다(인홍; 人紅)는, 즉 산·물·사람 모두가 빨갛다는 삼홍소(三紅沼)가 있다.


#지리산#남부군#지리산 철쭉#전쟁#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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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곧 인간이다고 한다. 지식은 곧 마음이라고 한다. 인간의 모두는 이러한 마음에 따라 그 지성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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