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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하는 아버지, 변덕스러운 선생

 

1901년 4월 13일

독일, 라이프치히

라이프치히 대학

빌헬름 오스트발트 교수님

 

존경하는 교수님께

무례함을 무릅쓰고 감히 존경하는 교수님께 글을 올립니다. 아들의 장래를 걱정하는 아비의 심정을 너그러이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편지를 올리는 이유는 스물두 살인 제 아들 알베르트에 관해 말씀드리고자 함입니다. 제 아들 녀석은 요즘 마땅한 일자리가 없다는 것, 또 자기 인생이 제 궤도를 벗어났다는 생각 때문에 심각한 실의에 빠져 있습니다. (중략)

혹시라도 녀석에게 이번 학기나 다음 학기라도 조교 자리를 주실 수 있다면, 감사한 다음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한없이 존경하는 교수님께

당신의 충실한

헤르만 아이슈타인

 

무성한 백발 아래 괴짜와 같은 얼굴로 널리 알려진 위대한 과학자 아이슈타인 역시 오늘날 88만원 세대라고 일컬어지는 우리들과 비슷하게 취업난을 겪어야 했던 젊은이였나 보다. 그것을 보다 못했는지 그의 아버지 헤르만 아이슈타인이 아들 알베르트 아이슈타인의 조교 자리를 부탁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라이프치히 대학의 교수에게 보낸 것을 통해 봤을 때 말이다. 이런 아버지의 노고에도 불구하고 아이슈타인은 라이프치히 대학의 조교로 일할 수 없었다. 대학의 교수로부터 어떠한 답장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록 그가 쓴 편지는 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은 주지 못했지만 아이슈타인은 자신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마음에 어떠한 방향이로든 자극을 받았으리라.

 

오늘날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에너지'라는 개념이 도입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마이클 페러데이는 원래 책 제본을 하는 기술자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우여곡절 끝에 그 당시 저명한 과학자 중 한명이었던 험프리 데이비의 조교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조교로 일할 수 있게 해 준 데이비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패러데이는 연구에 열심히 정진했다.

 

그러나 데이비는 패러데이를 향해 변덕스러운 태도를 취하고 결국에는 패러데이의 위대한 발견이 훔친 것이라고 비난하기에 까지 이른다. 패러데이가 과학의 길로 들어설 수 있게 하는데 데이비의 도움은 결코 무시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데이비를 패러데이의 '스폰서'라 칭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이렇게 보면 누군가에게 스폰서가 된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이지 않나 싶다. 돕고 싶다는 마음만을 가진다고 스폰서가 되기에는 조금 부족한 듯 하고, 누군가에게 단 한번의 도움을 줬다고 해서 스폰서라 말하기에 사람은 너무나 쉽게 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이비라는 변덕스러운 과학자를 싸잡아 욕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는 최소한 패러데이에게 너무나 소중한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데이비, 그가 아무리 변덕스러운 인간이라 하더라도, 그가 그의 조교에게 비난을 퍼붓는다 하더라도 그가 패러데이에게 주었던 기회는 결코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꽃이 되고 싶다

 

스스로 질문해본다. 나는 누군가에게 단 한번이라도 소중한 도움을 주었던 적이 있었던가. 

 

작년 어느 중학교에서 한 학기 동안 사회봉사활동을 했었다. 그것은 우리가 전공 수업에서 배운 것들을 중학생들에게 다시 가르쳐주고자 하는 취지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당시 신문정보학 수업을 듣고 있었던 나는 부푼 마음을 가지고 잘하고 말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한 아이가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리는 이야기에서 종종 등장하는 조력자가라는 역할에 나를 끼워 넣기도 했다. 때로는 다정하고 때로는 엄격한 선생님이 되리라. 스폰서가 되리라. 다짐했던 것이다.

 

첫 주 활동을 가며 나는 찾은 자료와 종류별로 신문들을 준비해갔다. 기존에 신문활용수업이라고 불리는 수업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에 대해 유심히 보기도 했다. 학교에 도착하자 중학교 2학년이라는 남자아이 2명이 얌전히 앉아 있었다. 내가 중학교 때도 저랬나 싶을 정도로 쑥쓰러움을 타는 아이들이었다. 그 모습에 어쩐지 자신감이 더욱 붙는 듯 했다. 저렇게 얌전한 아이들이면 잘 따라오겠지. 내가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생각했던 것 보다 더 보람 있는 활동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문에 있는 사진과 글들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잘라서 붙여 자신을 소개하는 페이퍼를 만들게 했다. 낯설어 하는 신문에 쉽게 다가가기 위함이라는 목적으로 한다는 것은 그럴듯한 이유도 있었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잘 따라오나 싶더니 다른 길로 빠진다. 스포츠 면과 TV편성표를 보며 자신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그 모습에 조금은 친해졌나 싶어 계속해서 이야기를 들어주다 보니 결국에는 원래 의도했던 목적에서 벗어나 연예인의 사진, 야구선수의 타격장면이 오려진 것들 만 종이에 붙이고 그날 시간은 끝나고 만다.

 

활동 보고서를 써야 했다. 그 내용에 '아이들과 신문을 활용해 자기소개를 했다, 재미있어 하는 아이들이 신문에 조금 가깝게 다가간 것 같았다'라고 적는다. 그러나 픽 하고 자조의 웃음이 나온다. 그 다음시간에도 그리고 그 다음시간에도 무언가를 준비하긴 해가지만 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 활동에 의욕이 점차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과연 무엇을 하는 것인가. 수업이라 불리는 그 시간조차 제대로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수업을 넘어서 내가 아이들에게 과연 어떤 영향을 줄 수 있긴 한 걸까.

 

'스폰서'라 말하기 이전에 내가 누군가에게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지를 물어봐야 할 일이다. 스폰서라 말했는가? 누군가에게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되고 싶은가? 하지만 스스로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그리고 그 생각 중에 나에게 영향을 끼친 사람들이 떠오르며 그들이 더욱 존경스럽게 느껴진다. 그들의 어떤 행동과 말들이 나를 감탄하게 했는가.

덧붙이는 글 | <참고도서> E=MC^2 . 데이비드 보더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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