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
"투표용지는 권력을 이길 수 있는 '종이총알'이다."심상정 진보신당 경기지사 후보의 사퇴로 명실상부한 야권 단일후보가 된 유시민 경기지사 후보가 한 말입니다. 본디 정권에 대한 심판의 의미로 사용한 것이지만, 보수층의 '안보무능' 비판과 중도층의 군 지휘부 책임론을 '외부의 적'으로 돌리려는 이명박 정부의 과도한 '안보 드라이브'로 '전쟁이냐 평화냐'의 갈림길에 선 지금 상황에 딱 맞는 말입니다.
단임제 대통령제 권력구조의 속성상 집권 반환점에서 치르는 전국동시선거는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일 수밖에 없습니다. 역대 선거가 다 그랬습니다. 그리고 1998년 선거를 제외한 역대 선거에서 야당이 압승했습니다. 그래서 야당은 '바람'을 일으키려 하지만 집권당은 늘 쟁점 없는 '조용한 선거'를 원합니다. 그것이 권력의 속성입니다.
'조용한 선거' 대신에 '노이즈 마케팅' 전략 택한 집권당그런데 이 정권은 희한하게도 '시끄러운 선거'를 꾀하고 있습니다. 생때같은 해군 사병 46명이 수장된 천안함 사건을 활용한 '안보장사'로 집권여당에 대한 중간평가를 '김정일 심판'으로 호도하고 있습니다. 김정일에게 '죄'가 있다면 유엔 안보리의 제재로 응징할 일이지 표로 심판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이 정권은 또 김두관(경남지사), 안희정(충남지사), 유시민, 한명숙(서울시장) 후보 같은 이른바 '친노' 인사들이 대거 출마한 것을 구실 삼아 '이번 선거는 현정권 대 과거정권의 대결'이라는 궤변으로 중간평가에 '물타기'를 하고 있습니다. 2002년 집권 후 이미 3번(2004년 총선, 2006년 지방선거, 2007년 대선)이나 심판받은 과거정권을 또 심판하자는 것은 '부관참시'라도 하자는 것일까요?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몬 것은 3번의 심판이 아니라 현정권의 '모욕 주기'였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식의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 전략은 실제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안보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선 천안함 침몰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과학적 조사결과가 발표되면서 4대강 사업, 무상급식, 세종시 문제 같은 정책이슈와 정권심판론 등 정치 쟁점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습니다. 야당으로서는 공격거리를 잃은 셈입니다. 이른바 '천안함 효과'로 중간평가라는 선거의 본질이 실종된 것입니다.
또 중간평가의 실종으로 야당에 유리한 견제론보다 여당에 유리한 안정론에 무게가 실리는 양상입니다. 동아시아연구원-한국리서치 패널조사(24~26일)에 따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노풍'(35.9%)보다 천안함 사건(54.1%)을 투표 기준으로 삼겠다는 응답자가 더 많았습니다. 또 민군합동조사단의 천안함 사건 조사결과와 대통령의 담화문 발표 뒤에 대통령의 지지율이 상승했습니다.
전쟁터엔 전부 40대 이상만 가라?결국 전쟁이냐 평화냐의 갈림길에서 평화세력이 기댈 곳은 '세상의 절반'인 여성밖에 없습니다. 한명숙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선대위가 25일 오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여성단체들과 함께 "바보야, 평화가 경제야"라는 구호를 날리며 '여성이 일으키는 평화의 소용돌이'라는 여성 집중유세를 벌인 것도 믿을 곳은 '여성'밖에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전쟁의 소용돌이'를 막는 방법은 '평화의 소용돌이'밖에 없고 그 중심에는 '평화=여성'밖에 없습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여성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때입니다. 서해 NNL(북방한계선)과 휴전선 155마일 어디에선가 국지전이라도 발생하면 죽고 다치는 것은 평범한 여성 누군가의 애인이나 아들들이지, 핵무기 공격을 받아도 안전하다는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열리는 안보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한 한 사람 건너 한 사람이 군대 안 간 '군미필 벙커족'이 아닐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퇴임 후 부시 미국 대통령의 전쟁불사론에 맞서 한반도 전쟁 위기를 막고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구가 떠오릅니다. 김 전 대통령은 2006년 10월 19일 서울대 초청강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전쟁을 반대해야 합니다. 왜 우리가 강제로 분단되어서 강대국들의 대리전으로 큰 전쟁을 치렀으면 됐지 또 전쟁을 해야 합니까. 전쟁에는 젊은 사람들이 나갑니다. 찰리 채플린이라는 희극배우는 히틀러를 반대하고 전쟁을 반대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희극배우답게 말했어요. '전쟁은 전부 40대 이상의 사람만 가라. 나이 먹은 사람들이 자기들은 전쟁에 안 가니까 쉽게 결정해서 젊은 사람들을 죽게 만든다. 그러니까 나이 먹은 사람들이 전쟁에 나가서 죽든 살든지 해야 한다.'" 전쟁광 히틀러를 '위대한 독재자'로 희화한 천재 채플린다운 어법입니다만, 웃고 말 일은 아닙니다. 언제든지 전면전으로 확전될 수 있는 전쟁 위기지수가 가장 높은 곳이 한반도입니다.
전국 '고무신 카페'와 '어머니 카페'에서 전쟁 놀음 막아야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불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사랑하는 애인과 아들을 군대에 보낸 전국 방방곡곡의 '고무신'과 엄마들이 단결하면 얼마든지 막을 수 있습니다. 'IT강국'답게 전국의 부대마다 잘 조직돼 있는 '고무신 카페'와 '어머니 카페'에서 '사이버전'으로 대항하고 '종이총알'로 심판하면 됩니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를 살짝 비틀면 '전국의 고무신이여 단결하라'입니다.
'종이총알'로 심판할 게 어디 전쟁뿐이고, 사랑할 사람이 내 애인과 제 자식뿐이겠습니까. 여성의 사랑을 사람을 넘어 살아있는 모든 생명과 자연으로 넓히면 광우병 위험 쇠고기를 반대하는 '유모차부대'와 4대강 개발 저지에 나선 보살과 수녀들이 모두 평화를 사랑하는 여성들입니다.
이처럼 평화를 사랑하는 여성이 적극적으로 투표하고 많은 여성후보들이 공직에 진출해야 합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러려면 많은 여성이 투표장에 나가 능력 있는 여성이나 좋은 여성정책을 편 후보에게 투표해야 합니다.
주요 정당의 지방의원 여성후보자 등록현황을 보면 ▲한나라당 244명(광역 54명, 기초 190명) ▲민주당 195명(광역 42명, 기초 153명) ▲민주노동당 77명(기초만 77명) 등입니다. 단체장의 경우, 한나라당은 서울 4곳(강남, 송파, 동작, 광진)과 부산 2곳(사상, 중구), 대구 1곳(중구), 인천 1곳(중구)에서 여성 후보를 공천했습니다. 민주당은 서울시장 후보 외에 인천(부평)과 광주(서구)에서 여성후보를 공천했습니다.
주목할 만한 여성후보와 여성단체들이 지지한 후보
이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여야를 떠나서 주목할 만한 후보들이 여럿 있습니다. 지면 관계상 3인만 소개합니다.
김대중 정부에서 초대 여성부장관을 지내고, 노무현 정부에서 첫 여성총리를 지난 한명숙 후보는 '첫 여성 서울시장'에 도전합니다. 한 후보는 16개 광역단체장 후보 가운데 당선권에 있는 유일한 여성후보이기도 합니다.
기초단체장 중에는 서울시에서 잔뼈가 굵은 도시행정 전문가인 신연희 한나라당 강남구청장 후보가 눈에 띕니다.
신 후보는 서울시 최초 여성 회계과장으로 '복마전'으로 불린 서울시 금고에 최초로 일반공개경쟁입찰 등을 도입해 투명회계의 기초를 닦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서울시 최초 여성 행정국장으로서 서울시 전체 살림을 총괄하기도 했습니다.
이와 함께 홍미영 민주당 인천 부평구청장 후보도 눈에 띕니다. 인천에서 오랫동안 풀뿌리 지역 운동을 해온 홍 후보는 부평에서 구의원과 시의원을 거치고 인천에서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됐습니다.
중앙당의 여성 전략공천 몫으로 공천을 따낸 홍 후보가 당선되면 여성 최초의 '그랜드 슬램'(구의원, 시의원, 구청장, 국회의원) 달성이라는 점에서 산악인 오은선의 히말라야 14좌 등반과 다를 바 없는 여성계의 쾌거입니다.
여성은 여성 후보에게 잘 투표하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어쩌면 정치를 독점한 남성들이 만들어 전파한 속설일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한명숙과 신연희, 홍미영 후보가 이번 선거에서 받을 '성적표'는 여성표의 가치를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입니다.
※ 추신 : 참, 페미니스트인 유시민 후보도 그 '리트머스 시험지'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잊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심상정의 눈물'에 반응했는지도 중요한 여성표 체크 리스트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