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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1 :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5월 29일 저녁 진주 평거동 거리. 무소속 김두관 경상남도지사 후보가 청학동 김봉곤 훈장 등과 함께 유세를 벌이고 있었다. 연설 도중 신호를 받은 승용차들이 줄을 지어 섰다. 승용차 창문이 열리더니 '김두관 파이팅'을 연호했다. 잠시 뒤 지나가던 택시가 멈추더니 기사가 내려 김 후보와 악수했다.

장면2 : 가게 네온사인 불빛이 경쟁하듯 밝아지기 시작한 5월 31일 저녁 창원 상남동 분수대공원 앞. 탤런트 출신인 김을동 의원이 '장군(김좌진)의 손녀'라고 소개할 즈음 한나라당 이달곤 후보가 나타났다. 해병대 복장을 한 사람이 교통정리를 하기도 했다. 이 후보는 군중 사이로 다니며 한 손은 악수하고 다른 한 손은 엄지손가락을 높이 들었다.

장면3 : 5월 30일 오후 진주의 어느 목욕탕 휴게실. 50~60대 네 명이 앉아 팬티만 입은 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50대 아저씨가 "와! 김두관 많이 올라갔더구만"이라고 하자 텔레비전을 응시하던 50대는 "이러다가 김두관이 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라고 받았다. 대머리 60대는 "그래도 여기는 한나라당 아이가. 김두관이 많이 나오기는 하지만 결국에는 이달곤이 될 걸"이라고 말했다.

전국이 주목하는 경남도지사 선거

6.2지방선거를 앞두고 야권단일후보 김두관 후보와 한나라당 이달곤 후보가 맞붙은 경남도지사 선거가 전국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6.2지방선거를 앞두고 야권단일후보 김두관 후보와 한나라당 이달곤 후보가 맞붙은 경남도지사 선거가 전국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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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이달곤(57) 후보와 야권단일후보인 무소속 김두관(51) 후보가 맞붙은 경상남도지사 선거에 국민적 관심이 쏠려 있다. 한나라당 정서가 강한 경남에서 무소속 후보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고 있기 때문이다. 몇몇 여론조사 결과는 그야말로 접전이었다.

창원 출신인 이 후보는 서울대 교수와 국회의원(18대)을 지내고 이명박 정부 초대 행정안전부 장관을 지냈다. 남해 출신인 김 후보는 마을이장, 남해군수를 거쳐 노무현 정부 초대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냈다. 이 후보는 경남지사 선거 첫 도전이지만, 김 후보는 국회의원 선거(하동남해) 두 번 도전에 이어 지사 선거는 세 번째다.

지금까지 경남지사 선거에서 투표 전 한나라당 소속이 아닌 후보가 앞선 여론조사는 한 차례도 없었다. 신한국당, 한나라당 소속이었던 김혁규 전 지사(1995년, 1998년, 2002년)와 한나라당 소속 김태호 지사(2004년, 2006년)가 치른 선거 때마다 모두 신한국당 내지 한나라당 후보가 여론조사에서도 앞서가다 당선했던 것.

그런데 이번에는 다르다. 신한국당, 한나라당이 아닌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처음으로 앞섰다. 지난 5월 한 달 동안 언론사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엎치락뒤치락이다. 이달곤 후보가 5개, 김두관 후보가 5개 앞섰던 것. 이 후보가 10%포인트 이상 앞선 여론조사가 있는가 하면, 김 후보가 10%포인트 이상 앞선 여론조사도 있었다.

한나라당 이달곤 경상남도지사 후보가 유권자들을 만나 악수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한나라당 이달곤 경상남도지사 후보가 유권자들을 만나 악수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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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단일후보인 무소속 김두관 경상남도지사 후보가 율동팀과 함께 춤을 추고 있다.
 야권단일후보인 무소속 김두관 경상남도지사 후보가 율동팀과 함께 춤을 추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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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농민단체 "여론 반반이라 선거운동 안 해"

경남 민심이 궁금해서 선거를 며칠 앞두고 곳곳을 다니며 이야기를 들었다. 분명 이전 선거와 다른 '공기'가 감지되었다.

5월 28일 함안 군북 길거리에서 한 농민단체 간부를 만났다. "요즘 바쁘지 않냐"고 물었더니 "이전 선거 때는 좀 바빴는데 이번에는 손을 놓고 있다"고 대답했다. 왜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의외였다.

"사실 선거 때마다 우리 단체는 후보를 정해 도왔다. 이전 선거에서는 거의 대부분 김태호 지사 지지자들이었다. 그래서 선거운동 하기가 쉬웠다. 그런데 이번에는 회원들 여론을 살펴보니 반반이다. 그래서 간부들이 가만히 있기로 했다. 간부들이 한 후보를 위해 나섰다가는 조직이 와해될 것 같다."

그러면서 그는 "사실 이전 선거에서는 한나라당 후보면 무조건 당선으로 봤다. 그런데 이번에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대화를 듣고 있던 50대 아주머니가 끼어들며 "이전에는 김태호 지사를 찍었는데, 이번에는 김두관이 찍을 거라는 사람 많다"고 말했다. 그 이유를 묻자, 아주머니는 "한나라당이 오래 해먹었잖아. 김두관이도 장관까지 했으니 이젠 해볼 만 한 거지"라고 말했다.

진주로 향했다. 경상대 입구 한 식당. 대학생 네 명이 앉아 늦은 점심을 먹고 있었다. "투표할 거냐"고 물었더니 모두 당연히 투표한단다. 김재훈(26)씨는 "경상대에 첫 부재자 투표소가 이번에 설치된 것만 봐도 알 수 있잖아요"라고 말했다. 그만큼 대학생들의 투표 참여 열기가 높다는 것.

이현우(25)씨는 "아마 대학생 거의 대부분은 한나라당은 안 찍을 걸요"라고 말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이 '반값 등록금'을 공약으로 내세웠는데 오히려 더 올랐잖아요. 촛불도 마음대로 들지 못하게 하는데, 투표로 본때를 보여줘야죠"라고 말했다.

'천안함 침몰' 이야기를 꺼냈더니, 숟가락질만 하던 학생이 "인터넷 조금만 하는 사람이라면 정부 발표 그대로 믿지 않을 걸요"라고 말했다. "이전에는 텔레비전이나 신문에서 보도하는 정보가 진실인양 받아들였는데 지금은 아니잖아요. 다들 정부가 뭔가 숨기는 게 있다고 느끼잖아요"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이달곤 경상남도지사 후보 선거운동원들이 5월 31일 오후 창원 상남시장 앞에서 유세를 벌이고 있다.
 한나라당 이달곤 경상남도지사 후보 선거운동원들이 5월 31일 오후 창원 상남시장 앞에서 유세를 벌이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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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단일후보인 무소속 김두관 경남지사 후보의 선거운동원들이 5월 29일 저녁 진주에서 거리 홍보를 하고 있다.
 야권단일후보인 무소속 김두관 경남지사 후보의 선거운동원들이 5월 29일 저녁 진주에서 거리 홍보를 하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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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진주시장 후보 공천 갈등도 영향

시내에 있는 진주시외버스주차장을 찾았다. 산청 가는 버스를 기다리던 강준식(72)씨는 천안함 이야기를 하면서 '역정'을 냈다. "정부는 북한 소행이라고 하는데 민주당은 믿지 않잖아. 그래서 민주당이 안 되는 기라. 누가 민주당 찍겠나"라고 말했다.

옆에서 대화를 듣던 60대가 거들었다. 그는 "김두관이가 이번에는 무소속이라면서. 그래도 나중에는 민주당에 들어갈 거 아니냐. 김두관이도 도지사 할 때가 되기는 했지만, 민주당 들어갈 거니까 안 찍으려 하는 사람 많을 걸"이라고 말했다.

강씨는 "전라도 한번 봐라. 민주당으로 똘똘 뭉친다 아이가. 대구경북만 해도 한나라당으로 뭉치는데, 경남은 흩어지잖아. 지난 총선에서 사천도 그렇고, 창원도 그랬다 아이가. 그럴 거 뭐 있노. 다 한나라당이 되어야지.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이 괜히 있는 줄 아나"라고 말했다.

진주에서 만난 한 교사는 "정부가 교사와 공무원을 징계한다고 발표를 했던데, 선거에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것"이라며 "아직 판결도 안 났는데, 징계 방침부터 발표한 것은 잘못이다. 생각을 조금이라도 하는 사람이라면 정부 속셈을 다 안다"고 말했다.

또한 한나라당의 진주시장 후보 공천과 관련한 갈등이 계속되고 있었다. 한나라당은 등록 직전에 강갑중 전 도의원에서 이창희 전 경상남도 정무부지사로 후보를 교체했다. 거기다가 현 시장인 정영석 후보는 불출마를 선언했다가 출마해 시민들의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김인석(48)씨는 "경남지역 곳곳이 한나라당 공천 때문에 시끄럽다. 그것이 도지사 선거에도 영향이 있다"며 "공천 때문에 무소속 후보 찍겠다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또 그는 "그런데 처음에는 좀 그런 분위기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안정돼 결국에는 결집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더라"고 전했다.

한나라당 이달곤 경상남도지사 후보가 5월 31일 창원 상남시장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한나라당 이달곤 경상남도지사 후보가 5월 31일 창원 상남시장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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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손님 대부분 한나라당 안 찍겠다고 한다"

창원에서 택시를 탔다. 하얀색 머리카락이 더 많은 50대 기사는 "창원지검 앞에 가면 피켓 들고 서 있는 사람들이 많다. 한나라당 박완수 창원시장 후보의 금품수수 의혹 사건이 터졌는데, 검찰이 빨리 수사 결과를 발표하지 않으니까 상대 후보 측에서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모습이 도지사 선거에까지 영향을 끼친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번 선거는 이전과 다를 것이다. 택시 타는 손님 열 명 중에 칠팔 명은 한나라당 안 찍는다고 하더라"면서 "'천안함'이니 '북풍'이니 하는데, 경남은 휴전선에서 멀리 있어서 그런지 안 먹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창원시외버스터미널에서 만난 윤지호(53, 합천)씨는 "그런 거 왜 물어보느냐. 선거운동원이냐"며 일단 경계하더니 기자라고 하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는 "김두관 후보가 이겼다고 하는 소리도 들리는데, 내가 볼 때는 아직은 모르겠다"면서 "시골에서는 무조건 한나라당이다. 서로 비슷한 것 같다"고 말했다.

울산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장성기(48)씨는 "한나라당밖에 모르는 사람들을 보니 애가 탄다"면서 "한번쯤은 바꿔봐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된다. 그런데 이번에는 바뀔 것 같다"고 말했다.

창원 정우상가 앞에서 시내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대부분 젊은이들이었다. 선거 이야기를 묻자 "관심 없다"며 몇 걸음 물러서는 사람도 있었다. 양산을 쓰고 있던 20대 여성은 "젊은 사람들은 아마도 다 김두관 후보 찍을 걸요"라고 말했다.

강병성(35)씨는 "이전과 다른 것 같다. 김두관 후보 이야기를 많이 한다. 나이 많은 사람들도 김두관 후보는 알고 있다. 이달곤 후보에 대해서는 잘 모르더라. 아마도 한나라당이 김태호 지사를 내세웠더라면 지금과 같은 분위기는 아니고, 좀 편안한 선거를 했을 것이다"고 말했다.

박효건(48, 사천)씨는 "분위기는 무소속이 조금 강세인 것 같다. 옛날에는 위에서 내려오면 다 되는 분위기였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정민석(52)씨는 "결국에는 이달곤 후보가 될 것이다. 경남의 정서를 보면 보수 성향이 강하다. 최근 한나라당 중앙당에서 많은 정치인들이 내려와 경남에서 유세를 벌이고 있는데,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지금은 김두관 후보 쪽 분위기가 좋지만 결국에는 이달곤 후보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무소속 김두관 경남지사 후보가 5월 29일 저녁 진주 평거동 거리유세 때 한나라당 진주시장 후보로 공천되었다가 박탈된 강갑중 전 경남도의원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무소속 김두관 경남지사 후보가 5월 29일 저녁 진주 평거동 거리유세 때 한나라당 진주시장 후보로 공천되었다가 박탈된 강갑중 전 경남도의원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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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 도지사 선거 언급 많이 한다"

마산 어시장에서 만난 김순복(62)씨는 "박근혜가 왜 안 오는지 몰라. 박근혜가 여기서 한번 유세하면 한나라당 지지율 확 올라갈 건데. 한나라당이 박근혜도 데려오지 못하면서 무슨 정치를 하는지 몰라"라고 말했다. "누구 찍을 거냐"고 했더니 김씨는 "그런 거 함부로 말하면 되는가"라며 입을 닫아버렸다.

그러나 아직도 후보를 결정하지 않은 유권자도 제법 있다. 주부 강순임(36, 창원)씨는 "아직 누가 나오는지 모른다. 정치에 관심이 없다. 먹고살기 바쁘다. 후보들은 많은 것 같은데, 다 똑같은 사람 아니냐. 홍보자료 오는 것 보고 판단할 것이다"고 말했다.

최인경(44, 진주)씨는 "아직 누구에게서도 이 사람을 찍어 달라는 부탁을 받지 못했다. 아는 사람이 누구 찍어 달라고 하면 찍어줄 마음이 있다"면서 "그런데 교육감이며 교육의원 선거까지 겹쳐서 누가 누군지 모르겠다. 그래서 투표하러 안 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 언론인은 "지난해 양산 국회의원 재보선 때 여론조사에서는 박희태 의원이 송인배 후보를 10%포인트 앞섰다고 했는데, 막상 결과가 나와 보니 비슷했다. 여론조사를 해도 중산층은 표시를 잘 안 하는 것 같다"면서 "시민들은 의외로 도지사 선거를 많이 언급하고 있다. 김두관 후보가 무소속이다 보니 이전보다 선택하기가 쉬워진 것 같다. 천안함 침몰 원인 발표를 했지만, 경남에서는 별로 영향을 주지 않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태그:#격전지, #한나라당 이달곤 후보, #야권단일 무소속 김두관 후보, #경상남도지사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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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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