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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있던 지리산(智異山) 종주등반 계획을 결행했다. 몇 해 전부터 꼭 한번 민족의 영산 지리산을 종주하고 싶었는데, 6·2지방선거를 앞두고 짬이 나서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연휴나 주말을 틈타 계획을 잡을 요령으로 홈페이지를 통해 대피소에 예약을 시도했으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5월 30일 일요일에 출발하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장거리 산행을 해본 적이 없기에 주변 사람들의 조언을 얻어 출발하기 전날 마트에서 먹을거리를 준비하고, 아내와 나는 다소 들뜬 기분으로 취사도구와 비옷 등 간단하게 짐을 꾸렸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여행은 준비과정의 즐거움과 설렘을 빼면 출발하면서부터 고생이다. 나이 들면서 집 나가면 고생이라는 말이 더욱 실감난다. 그러나 내가 사서하는 고생인데 기꺼이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는가.

 

광주고속버스터미널 유스퀘어(U-square)에서 구례로 가는 버스는 오전 8시 20분에 있었다. '자연으로 가는 길' 구례에 도착하니 9시 40분이다. 구례터미널에서 성삼재까지 운행하는 군내버스는 2시간 간격으로 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대부분 등산객으로 보이는 10여명의 승객이 탑승했을 뿐 버스는 한가로웠다. 낡은 버스는 고갯길을 심하게 흔들거리며 성삼재를 향해 올랐다.

 

달리던 버스가 천은사 입구에서 갑자기 멈췄다. 한 사내가 군정정권 시절 검문하듯이 차에 올라와 입장료를 내야 한단다. 무슨 입장료냐고 물으니까 천은사 입장료란다. 참 어이가 없다. 문화재는 관람을 목적으로 관람료를 내는 것이 아니냐고 따졌더니 그래도 내게 되었다고 한다.

 

행선지가 성삼재인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지방도를 타고 지나가는데 승객들한테 돈을 내라니 횡포도 이런 횡포가 없다. 입장료나 관람료가 아니라 차라리 통행료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승객들 모두 볼이 부어 1인당 1600원씩의 입장료를 내고서야 그곳을 통과할 수 있었다.

 

"천은사 주지스님 그렇게 입장료 받아 살림 좀 나아지셨습니까?"

 

잠 못 이룬 연하천대피소의 첫날밤

 

성삼재에 도착하니 11시다. 대충 요기를 하고 노고단으로 향했다. 이 구간은 지리산에서도 가장 접근성이 좋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언제나 탐방객이 붐빈다. 해발 1507m 노고단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정오가 조금 넘어서 주능선을 타고 본격적인 종주에 돌입했다. 아내의 걸음걸이에 맞추다보니 산행은 더디고 한가로웠다.

 

온 산을 덮고 있는 초목은 녹음을 발산하며 봄 햇살을 만끽하고 있다. 아내는 나와 함께 신혼 초에 화엄사에서 시작해 노고단을 거쳐 임걸령 삼거리에서 피아골로 내려가는 코스를 밟은 후 20년을 훌쩍 넘기고 이번이 처음이니 참으로 감개가 무량한 모양으로 자꾸 카메라 앞에 섰다.

 

노고단에서 임걸령을 지나 노루목, 삼도봉, 화개재에서 연하천대피소까지 이어지는 첫째 날의 10.5㎞ 코스는 비교적 평탄하고 완만하다. 별 무리 없이 명선봉을 넘어 연하천대피소에 도착하니 오후 6시가 조금 못 되었다. 미리 도착한 산객들이 저녁식사 준비에 분주하다. 중국인 10여명도 단체로 올라와 그 속에 섞여 즐거이 식사를 한다. 우리는 여장을 풀고 숨 돌릴 틈도 없이 밥과 라면을 끓여 한 끼를 해결했다.

 

저녁 어스름이 깔리면서 산속의 기온은 급격히 떨어졌다. 물은 너무 차가워 씻을 수가 없을 정도다. 우리는 두꺼운 옷을 준비하지 못해 밖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이른 저녁에 실내로 몸을 피했다. 밖에서는 여전히 젊은 친구들이 가스등을 밝힌 채 삼삼오오 모여앉아 객담을 주고받으며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속에 산막의 밤은 깊어가고, 나는 오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다.

 

시속 1㎞의 느린 속도로 명상에 젖어 걷는 산길

 

다음날은 나이 드신 등산객들이 새벽부터 부산을 떠는 바람에 일찍 잠에서 깼다. 그러나 외기 온도가 낮아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게으름을 피우다가 7시쯤 돼서야 아침을 지어 먹었다. 해가 오르니 햇살이 따사롭고 공기가 맑아 기운이 상쾌하다. 아침 8시에 둘째 날의 산행을 시작했다. 형제봉과 벽소령을 거쳐 칠선봉, 영신봉을 넘어 세석평전까지 이어지는 9.9㎞의 거리다. 오늘은 이동거리가 짧아 출발부터가 여유로웠다.

 

숲속 사이에 드문드문 핀 연분홍색 철쭉 그리고 무리지어 피어난 얼레지, 연령초, 긴개별꽃 등 야생화가 눈에 들어오고, 직바구리, 동고비, 어치, 박새 의 노랫소리와 함께 가끔 까마귀 울음소리가 산속의 적막을 깨곤 했다. 녹음이 짙어가는 산길을 아내와 나는 말없이 걸었다. 평소 1시간에 60㎞에서 120㎞까지의 속력으로 달리던 일상의 습관을 버리고 시속 1㎞가 조금 넘는 느린 속도로 명상에 젖어 걸었다.

 

벽소령 산장에서 식수를 보충한 후 두어 시간을 더 걸었을까? 덕평봉을 돌아서 내려가니 선비샘이 있다. 화전민 노인의 유지를 받들어 그의 아들이 그곳에 묘를 씀으로써 생겨났다는 전설을 가진, 산객들에게는 고마운 감로수다. 샘 주변 그늘을 빌려 간단하게 점심요기를 했다. 오후 4시쯤에는 해발 1652m 영신봉 고지에 올라설 수 있었다. 봉우리에 서서 걸어온 길을 되짚어 보니 멀리 노고단을 중심으로 양옆에 반야봉과 왕시루봉이 아스라이 솟아있다. 병풍처럼 펼쳐진 산줄기들이 수묵화처럼 아름답다.

 

영신봉을 내려서니 세석평전이다. 철쭉으로 유명하다던 세석평전에 철쭉은 수줍은 듯 연분홍 꽃망울만 맺은 채 아직 피지 않고, 바람의 흔적과 세월의 상흔만이 도처에 산재해 있다. 산장에는 산객들로 북새통이다. 5월의 마지막 밤을 이곳에서 보내야 한다. 산장은 규모가 크고 깔끔했다. 아직 해가 많이 남아 여유롭다. 힘들어하는 아내와 함께 벤치에 앉아 해바라기를 했다. 햇볕과 바람이 적당하게 좋다.

 

발아래 걸친 구름, 이곳이 선경인 듯...

 

6월1일 종주 마지막 날이다. 새벽 5시에 잠에서 깨어 바로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온 산이 안개에 덮여 시정거리를 가늠할 수가 없다. 싸늘한 아침공기를 해치고 단숨에 촛대봉까지 내달렸다. 밀려왔다 밀려가는 운무 속으로 언뜻언뜻 연하봉, 제석봉, 천왕봉이 얼굴을 내민다. 시간이 지나고 해가 오르면서 안개는 무리지어 산속을 헤집고 다니다가 점차 자치를 감췄다. 연하봉에 오르니 발아래 산허리에 걸쳐있는 구름이 마치 우리가 선경에 서있는 것처럼 느끼게 했다.

 

장터목산장에 도착했을 때는 아침 7시였다. 그곳에서 아침식사를 해결하고 천왕봉으로 향했다. 아침 일찍 출발한 사람들은 벌써 내려오고 있었다. 올라가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결연한 의지가 보이는 반면, 내려오는 사람들의 모습은 평화로웠다. 제석봉 주변 초지에는 고사하여 뼈만 앙상한 구상나무가 군데군데 애처로이 서있다. 털진달래가 이제야 피었다.

 

오르는 길 멀고 길지만 머무를 시간 너무 짧구나

이제껏 오르지 못하고 멀리서만 바라본 곳

단 한번 꼭 오르고 싶었던

내 삶의 정수리

 

내 대신 누가 험한 산길 오르고 오르겠느냐

두 무릎 꺾이며 꺾이며 어리석었던 나를 버렸다

산아래 고요히 누운 세상

아! 그걸 보며 나를 또 꺾는다

 

- 김영재 作 '천왕봉 시편' 전문

 

드디어 해발 1915m 천왕봉에 올랐다. 정상에 오르니 그 높이를 느낄 수 있겠다. 멀리 펼쳐진 모든 산들이 발아래 있다. 저 멀리 남원, 함양, 산청쪽으로 산자락에 열린 마을들이 아스라이 멀다. '韓國人의 氣像 여기서 發源되다' 표지석에 새겨진 글귀를 읊조려본다.

 

민족의 영산 지리산, 내가 언제 또다시 이 산을 오를 수 있을까? 몇 해 전 친구와 함께 이 산의 종주를 시도했으나, 비 때문에 중도에서 포기하고 내려간 적이 있다. 그 친구는 결국 지리산 종주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지난해에 불의의 사고로 죽고 말았다. 그 친구를 위해 잠시 기도를 하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우리는 천왕봉을 내려왔다.

 

하산 길은 차편 때문에 백무동계곡 쪽으로 잡았다. 장터목산장에 도착하니 11시다. 장터목에서 백무동까지는 5.8㎞로 3시간 정도 소요되는 것으로 안내되어 있다. 당단풍나무, 떡갈나무, 굴참나무, 쪽동백, 복자기…, 울창한 교목숲 사이로 난 탐방로가 중간까지는 하산하기에 좋았다.

 

그러나 중간을 지나자 경사가 심해지면서 침식을 막기 위해 등산로에 돌을 깔아 정비해 놓아 걷기에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발을 옮길 때마다 무릎에 무리가 오는 것이 느껴졌다. 흙길이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요즘은 흙길로 된 등산로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좋은 흙길을 시멘트로 발라놓은 곳도 많다. 나중에는 그것을 다시 걷어낸다고 법석일 터다.

 

길이 좋지 않아 자주 쉬었던 탓에 오후 3시에야 백무동에 도착할 수 있었다. 4시간이 걸린 샘이다. 아내와 나는 허기에 지쳐 주변 식당에서 산채비빔밥으로 늦은 점심을 때우고 남원행 버스를 탓다. 그곳에서 광주 가는 버스로 갈아타면 된다.

 

실제 산행거리는 35.7㎞로 2박3일 동안 무리한 거리는 아니었음에도 아내는 많이 힘들어했다. 그래도 아내가 함께 동행해주어 가능했던 지리산 종주였다. 산행은 나를 깨우는 외침이다. 아내가 힘들었던 기억을 잊을 쯤에 다시 한번 종주에 도전해야겠다.


#지리산#종주등반#민족의 영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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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물처럼, 바람처럼, 시(詩)처럼 / essayist, reader, trave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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