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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꼼하게 처마 작업을 하는 윤구씨. 하지만 시골집에서처럼 처마 끝에서 내리는 빗물을 더이상 볼수 없게 되었다.
 꼼꼼하게 처마 작업을 하는 윤구씨. 하지만 시골집에서처럼 처마 끝에서 내리는 빗물을 더이상 볼수 없게 되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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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은 이것 줌 도와주세요."
"어, 그류."

처마작업을  마무리한 윤구씨가 점심을 먹고 나서 물받이 작업을 시작하자며 내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처마 작업을 할 때처럼 물받이 작업 역시 뒷일을 거들어 주는 단순한 일이었지만 모처럼 일이 생겨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렇게 단단하게 해놓으면 바람이 아무리 불어도 끄떡없겠는디."
"아 그럼요, 태풍이 불어도 끄떡없을 겁니다."
"빗물 소리를 듣지 못해 아쉽긴 하지만..."

지붕을 타고 내려오는 빗물 처리를 깔끔하게 할 수 있는 아주 단단하고 말끔하게 생긴 물받이를 설치하다보니 섭섭함과 아쉬움이 밀려들었습니다. 충남 공주 시골집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새로 짓는 목조 집은 빗물들이 지붕에서 내려오자마자 처마 끝에 달린 물받이가  거둬가지만 공주 시골집에 비가 내리면 함석지붕의 골을 타고 내려온 빗물들이 거침없이 뜰팡 아래로 낙수 칩니다.

그 뜰팡 아래에는 오랜 세월동안 빗물에 깎여 하얗게 속살을 드러낸 돌 뿌리들이 있습니다. 빗물은 그 돌 뿌리에 부딪히고, 그 주변에 고인 빗물들은 낙수 물에 파문을 일궈내며 느린 화면으로 다가왔습니다. 때로는 이슬 내리듯 조용하게 때로는 세상의 모든 소리를 잠재우는 아우성 소리로, 그 자연의 생생한 소리들이 귓속으로 파고들었습니다.

그렇게 충남 공주 시골집에서는 비가 내리면 마루에 앉아 빗물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한가로움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혼자 있을 때는 어렸을 때 그랬던 것처럼 비 소리에 빠져들어 무한 공상에 빠져 보기도 하고 때론 손님들이 찾아오면 마루에 둘러 앉아 뜰팡 아래로 낙수치는 빗소리를 들어가며 운치 있게 술잔이나 찻잔을 기울여 가며 세상사는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기도 했습니다.

"말끔 하고 좋긴 한디, 더 이상 빗물 떨어지는 소리를 못 듣게 생겼구먼..."
"예? 뭐라구요?"
"아 아뉴, 그냥... 뭘 달라고 했쥬? 이거유?"
"아니, 그거 말구 저기 저 길쭉하게 생긴 것 줌 갖다 주세요."

다른 작업과 마찬가지로 윤구씨는 빗물이 새지 않게, 바람에 흔들리지 않게, 물받이 작업을 꼼꼼하게 처리했습니다. 비 샐 틈 없이 모든 것이 완벽하게 꾸며지는 목조주택, 안방에 지붕에서 빗물이 줄줄 새는 허술하기 짝이 없는 다 낡은 공주 시골 토담집과 너무나 비교가 되었습니다.

공주 시골집 사랑방 처마. 봄이면 매실꽃이 활짝 피고, 비가 내리면 처마 끝에서부터 들팡까지 꽃잎처럼 빗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공주 시골집 사랑방 처마. 봄이면 매실꽃이 활짝 피고, 비가 내리면 처마 끝에서부터 들팡까지 꽃잎처럼 빗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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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 쓰러져 가는 공주 시골집은 그 허술한 틈새를 메워 주는 것이 있습니다. 소박한 삶에서부터 젖어 드는 기분 좋은 감성들입니다. 가슴팍으로 파고드는 그 빗물 떨어지는 소리와 같은 감성들이 허술하고 낡은 시골집의 틈새를 메워 주었습니다.

훗날 우리 집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 메마른 세상을 살아가면서 공주 시골집의 촉촉한 기억들로 큰 위안거리를 삼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 빈틈없이 번듯한 목조 집에서는 어떤 추억거리를 담아 놓을 수 있을까? 그래도 집 앞에 바다가 있으니 바다와 더불어 이 집 나름대로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뭔가가 생기겠지요?

그렇게 오후 내내 나는 목수들의 팀장인 윤구씨와 빗물이 새지 않도록 꼼꼼하게 물받이 작업을 했고 다른 목수들은 집안으로 바람이 새어 들어오지 않게 두툼한 내부 단열재를 벽체에 덧입혔습니다.

오전에는 '스탠 오일'인가? '오일 스탠'인가? 아무튼, 널빤지로 짠 마루짝이 썩지 않게 한다는 기름을 칠하고 물받이 작업 뒷일을 거들어 주랴, 모처럼 만에 일다운 일을 하고나자 온몸의 피로가 기분 좋게 몰려왔습니다.

사글세방에 돌아와 방바닥에 퍼질러 누었습니다. 그렇게 나와 윤구씨는 거실에서 영화 <러브인 아프리카>를 보고 나머지 목수들은 안방에서 피곤한 몸을 녹여가며 저마다 가족들에게 안부 인사를 주고받고 있었습니다.

나는 오래 전에 보았던 <러브 인 아프리카>를 재탕하다가 벗어놓은 양말을 챙겨 세면장에 쪼그려 앉았습니다. 그동안 벗어 놓았던 양말이 모두 다섯 켤레나 되었습니다. 흙이 잔뜩 묻어 있어 빨아도 빨아도 계속해서 흙물이 나왔습니다. 거기에 때 구정물도 뒤섞여 있을 것이었습니다. 이 때 구정물은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양말을 방안에 널어놓고 노트북을 열었습니다. 문득 10년 넘게 가깝게 지냈던 한 선생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청렴하게 살아가는 그 선생과 관련된 기사를 쓴 적이 있었습니다. 그 선생과 연관된 사리사욕에 눈먼 사람들, 자본에 찌들어 온갖 똥폼 다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 기사를 썼는데 선생이 그 사람들로부터 공격당했던 모양입니다.

나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어리석은 일이었기에 거듭 사죄를 하고 사과문까지 올렸지만 선생의 분노는 풀리지 않았습니다. 선생은 그들로부터 공격을 당하고 나서 내 기사에 크게 실망하고 절망했다며 충고어린 메일을 보내 왔습니다.

'송 선생이 깨끗해지겠다고 걸레를 빨면 그 물에 더럽혀 지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 때 구정물로 알게 모르게 누군가가 피해를 본다. 송 선생의 그런 비판적인 의식 때문에 송 선생의 아내가 힘들어 하는 것이다. 비판적인 기사(더럽고 추접한 자본과 정치 현실)는 송 선생과 어울리지 않는다. 송 선생에게는 아이들에 관한 순수한 기사들이 잘 어울린다.'

그의 뼈 있는 충고를 접하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구구절절 맞는 말처럼 다가와 내 머리통을 후려쳤습니다. 혼자서 깨끗한 것처럼 잘난 척하지 말라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부끄러움에 한동안 사람들 앞에 글을 내놓을 수 없었습니다. 그 무렵 소박한 삶이 어쩌니 살아오다가 번듯한 집을 짓는 문제 앞에 고민하고 있었기에 '자본의 걸레'가 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의 충고 속에는 '다른 사람을 비판하려는 송 선생, 너의 마음이야말로 더러운 걸레다. 그 더러운 걸레로 세상을 더럽히지 마라'라는 의도가 깔려 있는 듯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나는 내 더러운 마음을 깨끗이 하겠다고 그 더러운 마음의 때를 벗겨내겠다고 누군가를 재물로 삼아 함부로 비판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나 같이 잔머리 굴리는 속물들의 속성이 그렇듯이 그 선생의 충고를 무시하고 어떻게 하든 자신을 변호할 수 있는 변명거리를 생각해 내기 마련인가 봅니다. 나는 일주일 동안 묵혀 있던 더러운 양말을 빨면서 나름대로의 변명을 찾아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걸레를 빨면 그 물에 더럽혀지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라고 하지만 그는 모르고 있다. 나는 단지 양말이 더럽기 때문에 빨고 있는 것이다. 나 자신 뿐만 아니라 내 주변의 누군가가 그 더러운 양말에 고통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순수한 아이들에 관한 얘기만 쓰라고? 따지고 보면 그 순수한 아이들을 위해 걸레를 빨고자 하는 것이다. 그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세상의 걸레'는 빨아야 한다. 이른바 도인들처럼 말하자면 그 물이 그 물이라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걸레를 빨아야 한다. 단지 어떤 마음으로 그 걸레를 빨아야 하는가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어쩌면 그 선생은 단지 겉으로 들어난 걸레의 더러움만을 얘기하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내가 빨고자 하는 걸레는 '마음의 걸레' 였습니다. '마음의 걸레'에서 나오는 때는 세상을 더럽히지 않는다고 믿고 있습니다.

내 안에서 씻어 나오는 그 더러운 '마음의 때'는 세상을 혼탁하게 하는 구정물이 아닙니다. 그 마음의 때가 벗겨지는 순간 곧바로 소멸되고 오히려 세상을 맑게 하는 기운으로 번지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선생의 충고대로 빨아도빨아도 내 마음의 때가 벗겨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것이 고통스러울 따름입니다.

물받이 공사며 내부 단열재 공사가 얼추 마무리 될 무렵 충남 공주에서 지내던 가족들이 집 짓는 현장인 전남 고흥으로 내려오기로 했습니다. 단열재 공사가 마무리 되면 아내가 원하는 장판과 도배 공사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윤구씨의 심부름으로 공구상회에서 몇 가지 공구와 오공본드를 구입하고 나서 가족들의 도착 시간에 맞춰 터미널로 달려갔습니다.

"인효 아빠 집 팔았어!"
"그래? 잘됐네."

애초에 우리부부 앞으로 등기가 올려져 있지 않았던 집이었고 또 집 뒤로 호남고속철도 공사가 임박해 있었기에 그 집을 누가 살까 싶었습니다. 그런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집이 팔린 이유는 주변 시세 보다 3배나 싼 가격에 내놓았기 때문인듯 했습니다.

"오백만원 받았어. 그렇지 않아도 돈이 부족해서 도배장판은 뭘루 하나 싶었는데 딱 맞게 생겼어. 인효 아빠 말대로 하늘이 다 알아서 도와 주시나봐."
"헌집 줄께 새집 달라였네, 근디 뭔가 좀 허전하네 이."

헌집 주고 새집을 받은 것이 진정 하늘의 뜻이었을까? 그동안 집짓는 공사 현장에서 지내면서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집에게 미안했습니다.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삼라만상 모든 것이 만나면 헤어지기 마련이라지만 가슴 한 켠이 뻥 뚫린 듯 허전했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더할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두세 살 될 무렵부터 13년을 살아온 정든 집이었습니다. 녀석들에게는 고향집인 셈이지요.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다 쓰러져가는 시골집을 버려진 물건들로 재활용해 고쳐가며 살아온 집이었으니 그 심정은 더할 것이었습니다. 구석구석 아내의 손때 묻지 않은 곳이 없는 집이었지만 정작 아내는 크게 내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공주 시골집 마당 긴 의자 위에 엎드려 한가롭게 책을 보는 아내. 본래 허름한 빈집이었던 것을 버려진 물건들을 주워와 재활용해서 수리했다. 아내의 손길 닿지 않는 곳이 없다.
 공주 시골집 마당 긴 의자 위에 엎드려 한가롭게 책을 보는 아내. 본래 허름한 빈집이었던 것을 버려진 물건들을 주워와 재활용해서 수리했다. 아내의 손길 닿지 않는 곳이 없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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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 겨울 공주 시골집을 찾은 선후배 가족들. 처마끝에 서서 큰 웃음을 남겨 놓고 갔다.
 어느 해 겨울 공주 시골집을 찾은 선후배 가족들. 처마끝에 서서 큰 웃음을 남겨 놓고 갔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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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우리 식구들 뿐이겠습니까? 10여년 동안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공주 시골집을 찾아와 그리움을 새겼습니다. 외양간을 고쳐 만든 아내의 '그림의 집'을 찾아 그림을 배워가며 산과 들로 뛰어 다녔던 아이들은 물론이고 선후배들의 가족들이 시골집에 웃음꽃을 피워 놓고 갔습니다.

아내는 마루장이며 물받이 등 집이 완성되어가는 현장을 세세하게 둘러보면서 윤구씨에게 침이 마르도록 고마움을 표시했습니다.

"비싼 아파트는 화장실 인테리어만 하는데도 천 오백만원이나 든다는데... 윤구씨 아니면 이 집을 지을 생각도 못했을 거요. 싼 공사비에 꼼꼼하게 정성들여 잘 짓고 있다고 윤구씨 자랑을 했더니 주변에서 윤구씨 한데 집 짓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줄을 섰어요."

그날 저녁 아내는 목수들에게 공주 시골집을 팔아서 돈이 생겼다며 기분 좋게 회식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나는 불판에서 지글거리는 삼겹살을 젓가락으로 집어 입안에 넣고 오물거렸지만 마음이 썩 내키지 않았습니다. 팔린 집이 살아 있는 돼지처럼 다가왔습니다. 정든 시골집을 팔아 고기를 먹고 있자니 애지중지 기르던 정든 돼지를 잡아먹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아내는 기분 좋게 가위를 들고 고기를 자르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시골집을 판 돈으로 장판을 마련하고 도배지를 마련할 것입니다. 거기다가 여분이 생기며 싱크대까지 새로 장만해 아내가 원하는 번듯한 실내 공간을 꾸밀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헌집을 팔고 새 집을 완성해 가고 있었지만 내 마음은 갈수록 복잡하기만 했습니다. 마음속에 때가 덕지덕지 끼고 있는 듯 찝찝했습니다. 그것이 딱히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았지만 우리 가족들이 그동안 소박하게 살아오면서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던 그 어떤 소중한 것들을 하나하나 도려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태그:#물받이 공사, #빗물 떨어지는 소리, #내부 단열작업, #마음의 때, #헌집과 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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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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