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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꽃동네는 처음부터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동사무소나 구청이나 시청에서 목돈을 들여 꽃밭을 곳곳에 만들어 놓는다고 꽃동네가 되지 않습니다. 공무원들은 지난날부터 길바닥 갈아엎기와 꽃밭 새로 만들기를 하느라 어마어마한 돈을 들이고 있는데, 이렇게 한다 해서 동네가 한결 나아지거나 예뻐지는 법이란 없습니다.

 

꽃동네는 한 해 두 해 열 해 스무 해라는 햇수가 차곡차곡 쌓이며 저절로 태어납니다. 가난하든 가멸든,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이면서 마을이 이루어지고, 이렇게 이루어진 마을에서 저마다 제 깜냥에 걸맞게 텃밭이나 꽃밭을 일구면서 아주 느리게 태어납니다. 몹시 크고 넓은 꽃밭이나 텃밭이 있어야 이루어지는 꽃동네가 아닙니다. 아주 작은 꽃밭이나 꽃그릇으로도 이루어지는 꽃동네입니다.

 

꽃동네를 이루어낸 아주머니나 할머니나 할아버지들은 이야기합니다. 꽃을 바라보거나 물을 주고 있으면 당신 마음이 얼마나 맑아지는지 모른다고.

 

 꽃잔치를 이루는 꽃동네 한켠.
꽃잔치를 이루는 꽃동네 한켠. ⓒ 최종규

 

가만히 생각해 보면, 당신들 스스로 먼저 맑은 마음이 되었기에 꽃밭을 일구든 텃밭을 가꾸든 합니다. 먼저 맑은 마음과 몸으로 흙을 만지며 씨앗을 사랑하였기에 고운 꽃이 당신한테 찾아듭니다. 맑은 넋인 맑은 사람과 만나며 비로소 맑은 내음과 맑은 빛깔을 베푸는 꽃 한 송이입니다. 제아무리 곱거나 빛나는 꽃이라 한들, 맑지 않은 사람 앞에서는 맑은 내음과 빛깔을 뽐내지 못합니다.

 

이리하여, 나라에서 꽃동네 하나를 만들고 싶은 꿈을 꾼다면, 정원사나 기술자나 건축가 들을 불러모아 큰 돈을 쓸 일이 아닙니다. 동네사람 스스로 오순도순 살아갈 만한 정책을 펴는 한편, 오래오래 막개발이나 엉터리 삽질이 없도록 마음을 기울이면 됩니다. 사람들 누구나 오붓하게 어울릴 수 있는 동네는 어느 동네나 시나브로 꽃동네로 탈바꿈을 하니까요. 사람들이 집 안에만 예쁜 꽃을 두지 않고, 길가 어디에나 어여쁜 꽃밭을 일구며 이웃과 길손하고 스스럼없이 맑고 고운 꽃송이를 나누려 하니까요.

 

자전거 문화를 널리 퍼뜨리고 싶다면, 몇 천억이나 몇 조에 이르는 돈을 들여 자전거길을 닦을 노릇이 아닙니다. 자전거길을 닦는 데에는 한 푼조차 들일 까닭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바빠맞은 돈벌이 굴레에 매이지 않게끔 복지와 생활문화가 느긋하고 넉넉하도록 정책과 행정을 펼치면, 사람들은 스스로 나서서 자전거를 탑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나서서 자전거를 타면 아주 튼튼하며 아름다운 자전거 문화가 제 힘으로 샘솟습니다.

 

어느 꽃동네를 보든 매한가지인데, 사람이 애써 심어서 자라는 꽃이 있지만, 사람이 따로 심지 않았으나 꽃씨 스스로 바람에 날리고 떠돌며 동네 곳곳을 환하게 밝히고 빛내기 일쑤입니다.

 

 골목길 사진 하나.
골목길 사진 하나. ⓒ 최종규

 

106. 인천 동구 송림1동. 2010.6.14.16:49 + F16, 1/80초

외딴 막다른 골목은 자동차는커녕 오토바이조차 들어올 일이 없이 고즈넉하고 살갑습니다. 이리하여 저절로 꽃골목으로 태어납니다.

 

 골목길 사진 둘.
골목길 사진 둘. ⓒ 최종규

 

107. 인천 남구 학익2동. 2010.6.11.17:38 + F6.3, 1/50초

겉보기로는, 아니 부동산시세표로는 가난한 빌라 몇 채 모여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속보기로는, 아니 이 가난하다는 빌라에서 살아가는 분들 삶으로는 더없이 맑고 빛나며 고운 꽃잔치 마당입니다. 어느 집으로 들어서든 빌라 문간부터 우람한 나무와 어여쁜 꽃무리가 꽃그늘을 드리우며 꽃바람을 선사하고, 동네 분들이 쉬는 자리 둘레로는 봄부터 겨울까지 갖은 꽃이 흐드러집니다.

 

 골목길 사진 셋.
골목길 사진 셋. ⓒ 최종규

 

108. 인천 남구 용현1동. 2010.6.11.16:55 + F8, 1/60초

집 나이와 똑같은 포도넝쿨은 올해에도 꽃을 피웠고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웬만한 골목동네 골목집마다 마흔 살은 너끈히 넘은 포도나무나 감나무나 배나무나 대추나무나 모과나무나 능금나무나 복숭아나무나 살구나무 한 그루쯤은 키우고 있습니다.

 

 골목길 사진 넷.
골목길 사진 넷. ⓒ 최종규

 

109. 인천 동구 화평동. 2010.6.14.15:36 + F9, 1/50초

흙을 밟을 수 없는 도시이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틀림없이 흙 밟을 일이 없는 이 도시에서도 흙을 밟을 수 있도록 텃밭과 꽃밭을 일구는 분들이 어김없이 있습니다. 이리하여 이런 흙땅에 꽃잎을 떨구는 장미나무들은 장미꽃잎이 자동차나 오토바이한테 밟히지 않으면서 삭고 썩어 흙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 기쁘고 즐겁습니다.

 

 골목길 사진 다섯.
골목길 사진 다섯. ⓒ 최종규

 

110. 인천 동구 송현2동. 2010.6.14.16:01 + F16, 1/80초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는 골목집은 가스통을 들여놓고 살림을 꾸립니다. 이 가스통 둘레에는 고추도 심고 푸성귀도 기르지만, 수국 하나 함께 심어 무지개빛과 같은 해사함을 스스로 즐기기도 합니다.

 

 골목동네 작은 집 문간이기 때문에 이렇게 꾸밀 수 있습니다.
골목동네 작은 집 문간이기 때문에 이렇게 꾸밀 수 있습니다. ⓒ 최종규

 더 많은 꽃이 있다 해서 이루어지는 꽃동네가 아닙니다.
더 많은 꽃이 있다 해서 이루어지는 꽃동네가 아닙니다. ⓒ 최종규

 세월만이 아닌 사람들 따순 손길에 따라 이루어지는 꽃동네.
세월만이 아닌 사람들 따순 손길에 따라 이루어지는 꽃동네. ⓒ 최종규

 자동차를 세우지 않는 작은 빌라에는 이 만한 땅 모두가 텃밭이나 꽃밭이 됩니다.
자동차를 세우지 않는 작은 빌라에는 이 만한 땅 모두가 텃밭이나 꽃밭이 됩니다. ⓒ 최종규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2007∼2010)


#골목길#인천골목길#골목꽃#골목마실#사진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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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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