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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로 계산된 성적만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지원자가 제출한 다양한 서류를 바탕으로 학업 능력뿐만 아니라 학업에 대한 노력, 의지, 열정, 적극성, 도전 정신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다면적이고 심층적인 평가 제도.

 

요즘 대학입시 전형 방식의 화두,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정의다. 이태 전부터 내신 등급과 수능 점수 1, 2점으로 당락이 결정됐던 기존의 대학입시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칠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되었고, 대통령조차 임기 내 100% 확대 시행을 강조할 정도로 주목받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미국 등 서구의 대학에서는 이미 정착된 제도다.

 

특히 작년부터 학교는 학교대로, 교육청은 교육청대로 입학사정관제 전형에 대비하기 위한 다양한 연수를 실시하고 있는데, 연수가 있는 날이면 강의실 안팎으로 교사와 학부모는 물론, 학생들까지 발 디딜 틈조차 없이 꽉 들어차기 일쑤다. 하나라도 더 챙겨 듣고 메모해가며 한 발짝이라도 앞서 가려는 몸부림이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명문대일수록, 수도권 대학일수록 입학사정관제 전형 비율이 높다고 하니 더 그럴 밖에.

 

신입사원 선발방식과 입학사정관제가 같다?

 

지난 월요일, 지역 교육청 주관으로 또 하나의 연수회가 열렸다. 입학사정관제 전형 준비의 핵심이랄 수 있는 '진로 설정'에 관한 내용이라 여느 연수와는 달리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 여겼다. 방과 후에 관심 있는 학생들과 함께 연수에 참여했다. 교육청이 수도권의 한 대학으로부터 초빙한 강사는 두 시간이 훌쩍 넘도록 강의를 이어갔는데, 결론이 다소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다.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대학 교육의 목표이고, 대학이 요구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바로 고등학교 교육의 목표라는 것이다. 그러한 '맞춤형 인재'를 선발하기 위한 기업의 신입사원 선발 방식과 대학의 입학사정관제 전형은 그 취지와 방식이 동일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말하자면,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를 중등교육과정에서부터 준비시켜야 된다는 논리다.

 

앞서 말한 정의를 통해 알 수 있듯, 입학사정관제 전형 방식의 도입은 공교육 정상화를 목표로 삼고 있다. 기존의 대학입시가 중등교육과정 전체를 좌우하며 왜곡시켜왔기에 결과가 아닌 과정 중심, 그리고 교과 중심에서 체험과 활동 중심의 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도입된 획기적인 전형 방식이다. 그런데, 그의 설명대로라면 입학사정관제 전형은 대학별 학생 선발의 자율권을 보장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기업설명회 자리라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명색이 지성의 전당, 진리의 상아탑이라는 대학이 교사와 고등학생들 앞에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할 얘기는 못 된다. 더욱이 공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육청에서조차 강사의 말을 두둔하는 모양새라니.

 

점입가경. 강의 말미에는 따로 시간을 할애해 자신이 재직하고 있는 대학의 높은(?) 취업률을 보여주며 참여한 학생들더러 대학 선택에 참고하라고 하니, 특정 대학 입시설명회를 교육청이 교사와 학부모, 학생들 다 불러모아놓고 열어주는 꼴이 돼버렸다.

 

대학을 기업연수원으로 만들 참인가

 

이번 연수를 통해 정작 깨달은 바는 따로 있다. 기실 입학사정관제 전형이 수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엄청난 부작용만 남긴 채 흐지부지되거나 변질될 것이란 저간의 우려가 결코 흰소리가 아니라는 점이 그것이다. 입학사정관제가 대학에 따라서 어떻게 '악용'될 수 있는가, 또 아이들의 고등학교 생활을 얼마나 괴롭게 만들고, 되레 획일화시킬 수 있는가를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말마따나 입학사정관제 전형을 준비하는 데에 핵심 자료랄 수 있는 커리어 로드맵(Career Roadmap)도 좋고, 포트폴리오도 좋다. 백보 양보해서, 입시 기준에 있어서 교과 성적 편향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기에, 준비 과정이 아무리 복잡하고 힘들어도 견딜 수 있다 치자. 그러나 정작 진로와 적성을 판단하고 선택하고 준비하는 데에 있어 획일화될 우려가 다분하다는 게 문제다.

 

입학사정관들이 면접 때 다 걸러낼 수 있다고 겁을 주지만, 학생과 학부모 입장에서 누구나 다 웬만하면 의대, 경영대 등의 인기학과로 진로를 정하고 도움이 되는 자료와 교내외 활동을 준비할 것이다. 지금도 여건이 되면 생물과 화학 등을 선택해 중점적으로 공부하고 병원 등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의사가 되기 위한 적성을 '기르는' 학생들이 적잖은 게 현실이다.

 

왜 그럴까. 아이들의 흥미와 적성, 진로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할 테지만 준비 과정에서 획일화될 수밖에 없는 건, 사회적인 인식과 보수 등 대우의 격차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결국 보수에 따른 직업의 귀천이 여전하고 승자독식의 학벌구조가 공고한 현실에서 입학사정관제 전형은 대학과 직업 선택의 부익부빈익빈을 '합법'의 틀 안에서 고착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기존의 수능 일변도 입시를 두둔하려는 건 결코 아니다. 다만 입학사정관제를 비롯한 모든 교육 정책의 종착점이 민주 시민 육성을 위한 공교육 정상화로 맞춰져 있어야 한다. 기업의 요구에 대학교육이 휘둘리고 그런 대학이 중등교육과정을 좌우하는 현실에서, 과연 입학사정관제 전형이 공교육 정상화에 기여할 수 있을까.

 

입시의 방식만을 문제 삼아 입학사정관제라는 그럴듯한 '꿀'을 바르고 호들갑을 떨지만, 결국 '대학교육' 자체의 문제로 되돌아가지 않으면 답이 없을 듯하다. 곧, 입시 방식을 고민하기 전에 대학교육의 존재 이유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과 대학교육의 수준 향상이 선결돼야 하지 않을까. 대학교육의 목표가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 양성이라면, 그게 기업 연수원이지 대학일까.

 

명문대 합격자 자랑하는 교육청 모습, 우습다

 

덧붙여, 명색이 지역의 교육청이라면 지방대학을 살릴 수 있는, 아니 적어도 그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공감만이라도 하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지역의 학교를 살리고 교육을 선도해야 할 교육청이 수도권 대학의 입시 담당자 등을 비싼 값에 초빙해 와 지역 고등학생들에게 취업률 들먹이며 수도권 대학에 '입성'하는 방법 따위를 운운하도록 종용해서야 되겠는가.

 

하긴 지역 인재들의 명문대 합격자 수 많다고, 수능 점수 높다고 현수막 내거는 지역 교육청의 모습이 입학사정관제 전형 설명회 자리에서 재직하는 대학의 취업률을 자랑하고 홍보하는 강사보다 갑절은 더 우스꽝스럽긴 하다.

 

사설 학원이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곳도 가봤고 대학이 개최하는 곳에도 참여해봤지만, 교육청이 주관하는 입학사정관제 전형 설명회는 어떻든 다를 줄 알았다. 부디 '현실이 그렇잖냐'며 두루뭉수리 답변하지 말아 달라.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http://blog.naver.com/myhb0211)에도 실었습니다.


#입학사정관제#대학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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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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