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학교에 카스트 제도가 있다? '그렇다'고 답하는 67명의 여성들이 있다. 한양대에서 '학사 지원직원'으로 불리는 전국대학노동조합 한양대학교지부(이하 한양대지부) 소속 조합원들이다. 이들은 '차별철폐'를 외치면서 지난 5월 24일 파업에 들어가 28일로 파업 34일차를 맞았다. '차별철폐'를 외치는 걸 보니 비정규직 같다고? 아니다. 이들은 엄연한 정규직이다.
"한양대엔 정규직 직원이 직원 갑·을·병으로 돼 있어요. 우린 '직원 병'이죠."김미옥(39)씨는 '학사지원직원이란 말이 낯설어 자꾸 발음이 꼬이는 기자에게 '직원 병'으로 부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직원 갑'과 '직원 을'의 정식 명칭은 '직원'과 '직원 을'이다.
직원이면 똑같은 직원이지, 직원 을은 뭐고 학사지원직원은 뭔가. 이는 '태생'을 중시하는 한양대 측의 고민 속에 만들어진 이름이다. '직원 을'의 태생은 임시직, '학사지원직원'의 태생은 행정 조교다. 한양대는 2003년 비정규직법이 한창 거론되던 시기, 매년 계약을 새로 하던 두 직종을 정규직화했다.
김씨는 "그때만 해도 정년도 보장되고 우리의 열악한 처우도 좋아지는 줄 알았어요"라면서 당시의 기대감을 전했다. 그도 그럴 것이 행정조교 시절 이들의 근로조건은 형편없었다. 그에 대해선 이들보다 교수나 학생들이 더 문제제기를 했다.
1996년에 행정조교가 된 박수경(가명·39) 씨의 초봉은 45만 원이었다. 그해 5만원 올랐던 월급은 2000년 학생들이 함께 싸워주고 나서야 80여만 원이 됐다.
"그때는 교수님들이 저희 보고 막 나가서 싸워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셨어요. 다른 대학 행정조교들 월급과 비교한 대자보를 붙이니 학생들도 '정말 너무 한다'는 반응이었죠." 박씨가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임금도, 정년도, 식대도 65% 정규직
김미옥씨는 직원 갑·을·병이 하는 일은 같다고 했다. 입학 관련 홍보, 몇 주년 기념식 등 행사 기획, 강의 시간표 짜기, 교수·강사 관리, 강의실 기자재 총괄, 학생 성적 관리, 졸업 관련 통계 내기, 예·결산 등 대학의 교육, 경영 전반을 관장하는 학사 업무가 이들의 일이다. 그는 "학생들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맡는다고 생각하면 돼요"라고 자신들이 하는 일을 정의했다.
대학 측의 답변은 좀 다르다. 직원 갑은 대학본부에서 일하는 행정직이고, 직원 을은 사서 등 기능직으로 구성돼 있고, 직원 병은 단과대·대학원 교학과에서 사무를 보는 직종으로 하는 일이 다르다는 게다.
이런 대학 측의 주장에 대해 박수경씨는 "재작년까지만 해도 저도 대학본부에서 일했어요. 지금 자리도 그 전엔 직원 을이 하던 일이었고요. 직원 을에 기능직도 있지만 사무 보는 사람도 있어요"라면서 업무 구분이 없다가 '동일노동 동일임금' 규정 때문에 억지로 업무를 구분해 놓은 것 같다고 밝혔다.
정규직이 됐지만 직종에 따른 처우의 차별이 존재한다. 일반 직원 100을 기준으로 직원 을은 80%, 학사지원직원은 65%의 대우를 받는 것. 단순 임금뿐만 아니라 그 차별의 벽은 견고하다.
"정년부터 차이가 나요. 갑은 58세 또는 60세이고 을은 58세인데 저희는 50세죠. 본교에서 안산캠퍼스로 발령이 나면 교통비가 나오는데 그 역시 갑은 3만 원인데 저흰 1만 원이에요. 임금에 포함되는 식사비도 저흰 갑의 65%죠. 임금에 따라가는 시간외수당은 말할 것도 없고요. 체육대회, 개교기념일에도 우리 선물만 안 나와요." 김미옥씨가 승진도 없고 봉사상에서도 제외되는 차별의 실체를 꺼내 놨다. 복지 부분이 직원 갑과 같아진 것도 작년부터란다. 그 전까진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나 회갑도 65%, 출산비도 65%였단다. 박수경씨는 "우리는 반만 슬퍼하고 반만 기뻐하라는 거였죠"라면서 자조했다. 그나마 작년에 복지가 100%된 것도 조합원들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100%, 80%, 65%짜리 직원 중 누구와 인터뷰하시겠어요?"경제적 차별보다 이들이 더 견디기 힘든 건 자신들을 보는 선입견이었다. 김미옥씨가 "65%짜리 직원 병은 열등한 사람들처럼 대하는 게 너무 괴로웠어요"라고 말하자 주변 조합원들의 경험담이 쏟아진다.
"손님 올 때 차 심부름이나 사무실 부품을 닦아야 할 때 신입 직원이 있어도 10년 넘은 학사지원직원이 해야 돼요. 갑을병 구조에서 우리가 병이니까요." "식사나 회식도 따로 따로 하죠. 단과대 몇 주년 행사를 하고 교수님이 수고했다고 식사 자리를 마련하셨어요. 다 같이 야근하고 힘들었는데 회식 전날까지 직원들이 저한텐 가자는 소리를 안 하더군요. 나중에 교수님 몇 분이 펑크를 내니까 그제야 '회식 있다'는 얘기를 하는데 그 때도 '꼭 오라'고는 안 했어요." "갑과 저희가 같은 주제로 보고서를 냈는데 결과가 다르면 일단 학사지원직원 보고서가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왜 이렇게 했어?'라고 따지다가 제 보고서가 맞으면 그냥 쓱 지나가죠."김미옥씨가 기자에게 물었다.
"기자님이 한양대에서 인터뷰를 해야 하는데 100%, 80%, 65%짜리 직원이 있어요. 그러면 누구한테 인터뷰를 청하시겠어요? 아마 100%일 걸요. 저흰 그런 경험 많이 당했어요." 김미옥씨는 조합원들이 전문적이지 않고 수준이 낮은 것처럼 보는 시선이 힘들다고 했다. 학사지원직원의 60%는 한양대 출신이고 또 상당수는 대학원까지 나왔다.
2007년 노조를 만들고 나서의 첫번째 요구사항 역시 2003년 정규직되면서 바뀐 '고용안정조교'라는 명칭을 '직원'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김미옥씨는 "학교 측이 그냥 직원은 안 된다고 해서 '학사 직원'으로 하자고 하니까 결국 '지원'이란 단어를 넣더군요"라면서 '학사지원직원'이란 직종이 생긴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학사업무엔 '지원'은 없다고 했다.
"우리가 하찮은 존재란 걸 인정할 수 없다"
한양대 측의 태도는 분명하다. "갑·을·병에 따른 100:80:65 구조는 학교의 임금정책"이라는 것이다. 그 방침이 완강해 지난해 10월부터 시작된 교섭이 세 번 만에 결렬되고 파업에까지 이르렀다.
김미옥씨는 "임시직과 행정조교는 입사전형도 거의 같고, 정규직이 되기까지만 해도 서로 직종을 왔다갔다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직원 을은 80%, 우리는 65%여서 그 격차가 계속 커져 박탈감이 심하죠. 그래서 직원 을과 같게 해 달라, 지금 당장 하기 힘들면 앞으로 어떻게 해서 맞춰주겠다는 비전만이라도 제시해주면 좋겠어요"라는 소박한 바람을 밝힌다.
학교가 꿈쩍 안 해서 파업이 길어질 것 같다고 하자 한 조합원이 말했다.
"제가 정부 지원 프로젝트 사업단에서 거의 10년 가까이 일했어요. 1년에도 몇 번씩 나오는 감사 때문에 만날 새벽에 들어가고 주말도 없이 일했죠. 내 일이니까 한 거예요. 그런데 학교는 계속 우릴 65%짜리라고 하네요. 여기서 파업을 접고 들어가면 우리가 그렇게 하찮다는 걸 인정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절대 들어갈 수 없죠." 이 조합원은 지난해 '야근 잘 한다'는 이유로 다른 일 많은 센터에서 데려갔단다.
김미옥씨도 "이건 우리 67명의 자존감, 직원으로서의 정체성을 찾는"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라고 밝혔다. 한여름 땡볕 아래서 그들의 흔들림 없는 눈빛은 "우리는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한양학원의 교육이념은 '사랑의 실천'이다. 김미옥씨를 비롯한 한양대지부 조합원들은 " '국제인권회보'의 발행인이신 총장님이 아직 우리 상황을 잘 모르셔서" 투쟁이 오래 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총장과의 첫번째 만남이 29일로 예정돼 있다. 이들의 '주인선언'에 한양대는 어떤 답을 할 것인가. 한양대의 카스트제도가 깨질지, 이 신분제 타파 싸움의 끝이 궁금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월간 <노동세상> 7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