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한나라당 이재오(65)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식량을 버리고, 배를 가라앉히는" 심정으로 출마를 선언한 서울 은평구에 범야권의 대표선수들이 대거 몰리고 있다. 목표는 하나다.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불리는 이재오 전 위원장을 다시 한번 주저 앉히는 것.
각 정당별 예비주자들은 저마다 '반 MB-반 이재오' 적임자를 자임하면서 자신을 야권단일후보로 세워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범야권, '최고위원-시장후보' 화려한 타이틀 줄줄이 출마 선언
민주당만 해도 최고위원 2명이 출사표를 던졌다. 이화여대 총장과 DJ정부 국무총리 서리를 지낸 장상(70) 최고위원은 일찌감치 은평구에 터를 잡고 표밭을 누비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 교육부총리를 지낸 윤덕홍(63) 최고위원도 도전장을 냈다.
두 최고위원 외에도 이계안(57) 전 의원도 출마의 뜻을 굳힌 상태다. 그는 이미 지난달 24일 "이재오 전 위원장이 출마한다면 은평을에 출마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6.2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경선에 나섰다가 한명숙 전 총리에게 밀려 눈물을 머금고 뜻을 접은 적 있는 이 전 의원에 대해 당 안팎에서는 "이번에는 기회를 주자"는 동정론도 일고 있는 상황이다.
이 밖에도 은평을에서 착실히 지역구를 관리해 온 고연호(47) 서울시당 대변인과 최창환(47) 이포이 대표도 '세대교체론'을 내세우며 뛰고 있다.
벌써 5명이 예비후보로 등록한 상태지만, 당내에서는 이재오를 누르기 위해서는 당 대표급 선수들을 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손학규 전 대표, 김근태 전 의장 등이 거론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광옥(68) 상임고문의 출마설이 나돌기도 했지만, 그는 1일 서면을 통해 "야권 연대에서의 민주당 입장을 고려해 은평 재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이처럼 민주당 예비후보가 난립한 가운데, 야권단일화를 노리는 군소 정당도 대표선수들을 뽑아 '몸풀기'에 들어갔다.
6.2 지방선거에서 야권연대로 큰 수확을 거둔 민주노동당은 이상규(45) 서울시당위원장이 출마를 선언했다. 야권연대에 따라 민주당 한명숙 후보를 지원했던 이 위원장은 이번 7.28 재보선에서 민주당의 양보를 기대하고 있다.
국민참여당도 천호선(47) 최고위원을 내세웠다. 천 최고위원의 선대위원장은 유시민 전 경기도지사 후보가 맡기로 했다.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당 대표선수들이 후보와 선관위원장을 각각 맡은 것은 그만큼 국민참여당의 원내진출 의지가 높다는 증거다.
창조한국당도 깃발을 올렸다. 지난 2008년 총선에서 이재오 후보를 꺾은 문국현 전 대표가 의원직을 잃은 아픔을 겪은 창조한국당은 "문 전 대표의 명예회복과 은평을 재탈환을 위해 후보를 내겠다"고 밝혔다.
사회당의 금민(47) 전 대표도 진보진영 후보로 나섰다. 진보진영에서는 금 전 대표를 단일후보로 추대하자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김세균(서울대), 김수행(성공회대), 조희연(성공회대), 손호철(서강대) 등 진보진영 교수와 단체들은 1일 기자회견을 통해 "7.28 재보선에서 금민 후보를 진보진영 단일후보로 추대할 것을 진보세력 전체에 호소한다"고 밝혔다.
진보신당은 아직 어느 후보가 출마할 지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당의 후보를 낸다"는 원칙은 정해져 있어 조만간 출전 선수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6.2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 후보로 나섰다가 막판에 눈물의 사퇴서를 읽은 심상정 전 대표가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있지만, 진보신당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진보신당 관계자는 "심 전 대표 출마설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현재 후보를 물색 중이고, 조만간 당에서 논의해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엉킨 실타래 된 야권연대... 국민참여당 "정당지지율별 지역구 배분" 제안
이처럼 범야권 후보들이 우후죽순처럼 솟아오르면서 야권연대는 더 어려워지는 모습이다. 민주당,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창조한국당 등 야당 대표들은 지난 6월말 오찬 회동에서 7.28 재보선에서도 야권연대를 유지하자는 원칙에 합의한 바 있다.
하지만 각 정당과 후보들의 생각이 크게 달라 실무협상은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승리하는 야권연대여야 한다"(정세균 대표)고 말하고 있다. 야권연대를 하더라도, 필승의 카드를 뽑아야 한다는 뜻이다. 역시 '인물론'이다. 이는 야권 전체에서 이재오를 누를 만한 인물이 나오지 않는다면, 지지율이 가장 높은 민주당의 후보가 대항마로 나서야 한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그러나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은 민주당의 통큰 양보를 기대하고 있다.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진보진영의 양보로 큰 수확을 거둔 만큼, 이번에는 대승적인 차원에서 물러서야 한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야권연합 논의는 엉킨 실타래처럼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보다 못한 시민사회가 "개혁진보 야당들 사이에 양보와 호혜의 정신에 바탕을 두고 또한 가치를 중심으로 한 연합이 포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며 "각 당이 책임있는 논의를 신속하고 집중적으로 진행할 것을 촉구한다"(1일, 희망과대안 성명서)고 호소하고 나섰지만, 과연 협상이 시작될지조차 알 수 없다.
이 가운데 국민참여당은 "지방선거 정당 지지율로 재보선 지역구 8곳을 나누자"는 구체적인 제안을 들고 나왔다. 국민참여당은 1일 최고위원회를 열고 이같은 내용을 담은 성명서를 발표했다.
'야권연대 일괄타결'을 내놓은 국민참여당은 "지방선거 정당지지율별로 재보선 지역구 8곳을 나누면 민주당이 5~6곳, 민주노동당이 1곳, 국민참여당이 1곳을 책임질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어 "정당지지율을 기준으로 한 분배가 비교적 합리적 방안"이라며 "더 좋은 대안이 있다면 열린 사고로 연대 논의를 하자"고 협상테이블을 놓자고 요구했다.
7.28 재보선 후보자 등록일은 13~14일이다. 따라서 범야권이 단일후보를 선출하기 위한 시간은 2주도 채 남지 않았다. 짧은 기간 내에 범야권이 다시 한번 동맹을 맺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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