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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지금 하고 있는 일, 전공, 취미, 이런 것들과 도대체 어떻게 처음 만나게 됐을까? 흔히 접하기 어려운 악기라든가 낯선 취미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더더욱 궁금해지곤 한다. 나 역시 우연한 만남이 지금의 전공과 직업으로 이어졌으니 다른 사람에 대해 궁금해 하는 것도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겠다.

 

25년 전 쯤 신입 아나운서로 30분 짜리 노인 대상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을 맡으면서 시작된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한 관심은 자료 수집에 열을 올리는 계기가 되었고, 방송 출연자였던 노인복지 전문가들의 "노인복지 하면 참 잘하겠다!"는 덕담 한 마디는 정말 잘 할 것 같다는 근거 없는 자부심에까지 이르렀다.

 

결국 몇 년 후 방송을 그만두고 노인복지 현장으로 달려갔고, 그제야 부족함과 자격 없음을 깨달아 새롭게 공부를 해 사회복지사가 되었다.    

 

<장수만세> 만든 PD가 쓴 <노인을 죽여야...>

 

책 <노인을 죽여야 노인이 산다>의 저자 홍순창씨는 전직 KBS PD다. 라디오 프로그램인 <장수무대>와 텔레비전 프로그램인 <장수만세>를 만들었던 사람이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중심으로 대가족이 나와 무대를 가득 채웠던 <장수만세>의 장면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저자는 PD로 프로그램만 제작한 것이 아니라 노인복지 관련 일에 뛰어들었던 것으로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은초록' 카드를 만들고, '은초록' 사회복지법인을 만들고 등등.

 

그런데 이번에 책을 읽으니 그간의 활동이 죽 적혀있다. 최초의 노인악단 결성과 공연, 노인 솜씨 자랑 경연대회와 판매장 개설, '은초록' 멤버십 카드, 며느리 상담전화, 일자리 박람회 개최 같은 일들이다.

 

방송인 특유의 개성 넘치는 아이디어는 시대를 앞서갔던 것이 분명하다. 그가 생각해내고 최초로 시도한 일들이 그후에 자연스레 노인복지 프로그램으로 이어졌으니까. 그러나 한 편으로는 다른 평범한 현장 전문가가 똑같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다 해도 그렇게 힘있게 실천할 수 있었을까 싶다. 그가 방송에 몸 담고 있었기 때문에 실천 가능했던 일들이 분명 있었을 것이기에 방송의 힘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 나이로 60세. 지난해 정년퇴직을 한 저자는 그동안의 경험을 살려 보통 사람이 연예인을 섭외할 수 있는 창구('뽕필닷컴')를 개설했고, '미래효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우리의 효 문화를 널리 알리는 일에 마음을 쏟고 있다. 중년을 지나 노년의 초입을 바라보고 있는 저자야말로 노년 세대와 젊은 세대를 아우르는 데는 더할 수 없이 좋은, 늙지도 젊지도 않은 '중간 나이'일 것이다.

 

"막강한 인맥도, 재산도 없던 내가 노인복지 일을 오랫동안 한 것은 오로지 아이디어였다"면서, 앞으로의 (초)고령사회 문제 역시 아이디어로 풀어갈 수 있다는 저자의 주장은 귀담아 들을 만하다. 사람의 삶에 얽힌 일들은 어디서나 어느 때나 돈만으로는 다 해결되지 않는 법이다.     

 

'이미지의 노인', 반드시 죽여야만 할까?

 

책은 자신이 노인복지에 관심을 갖게 된 과정을 방송 프로그램과 연결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해, 한국의 효문화를 국가 브랜드로 만들면 좋겠다는 의견과 (초)고령사회의 문제를 어떻게 하면 아이디어로 풀어나갈 것인지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여기에 더해 40년 동안 청바지만 입은 사연, 30동안 해온 신문 스크랩의 역사 등 자신이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들려주고 있다.    

 

책 제목 <노인을 죽여야 노인인 산다>의 뜻을 머릿말에서는 "낡은 이미지의 노인들에게도 아이디어로 역동적이고 젊을을 입혀 사회에 도움을 주는 노인으로 거듭나게 해야 한다"면서 "'낡은 사고와 케케묵은 이미지의 노인'을 죽여야만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후기에서는 "노인을 스스로 죽이고 '나이든 젊은이'가 되어 살자, 꿈과 미래를 갖고 산다면 여생을 생기 있게 살 수 있다"며 이것이 바로 <노인을 죽여야 노인이 산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라고 덧붙이고 있다.

 

책을 덮으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이든 '젊은이'로 살고 싶은지.

 

아니, 나는 그냥 나이든 '사람'으로 살고 싶다. 새로운 사고방식과 역동성은 젊음과 동의어일까. 젊음과 나이듦과 늙어감, 늙음이야말로 살아있는 모든 존재가 밟아나가는 생의 속성이므로 나는 그냥 젊은 사람에서 나이들어가는 사람, 나이든 사람, 늙은 사람으로 불리우는 것에 대해 이의가 없다. 어느 시점에 있든 나는 나니까. 나는 변하지 않으니까. 

 

저자는 그동안의 활동을 책으로 정리했으므로 일단 작은 마침표를 찍고, 노년의 자리로 자연스레 옮겨 가며 그에 맞는 새로운 아이디어로 노년의 삶을 풍성하게 해주면 좋겠다. 굳이 노인을 죽일 것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 속에서 제대로 나이들어가는 노년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도 좋을 것 같다. 청바지를 입고 노인복지 현장을 뛰어다니는 저자에게서 그 모습을 기대해 봐도 좋을까, 저자 자신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덧붙이는 글 | <노인을 죽여야 노인이 산다>(홍순창 지음 / 이채, 2010)


노인을 죽여야 노인이 산다

홍순창 지음, 이채(2010)


#노인을 죽여야 노인이 산다#홍순창#노년#노인#노인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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