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천렵(川獵, 내천 잡을렵) 가기 좋은 계절이 왔다. 예산군 신양·응봉·대흥·광시 등 4개 면에 걸쳐 광활하게 뻗어 있는 예당저수지 주변에선 민물고기의 비린내를 없앤, 담백하고 얼큰한 어죽을 만날 수 있다.

1929년 일제 강점기에 조선농지개발사업으로 각 마을에서 가구당 1명씩 차출해 강제노역으로 무한천 상류를 막았고, 이 물이 예산에서 농수로를 타고 당진까지 갔다. 그리하여 예당저수지란 이름이 붙었다.

해방 후 공사가 잠시 중단됐다가 1964년에 완공됐으며, 둘레 40km, 저수량 4607만t, 관개면적 91.89㎢로 단일호수로는 국내 최대 규모다. 본래 농업관개용으로 축조됐으나 생활용수 공급과 홍수조절기능도 하는 데다 각종 담수어가 풍부해 전국 최고 낚시터로 각광받으면서 1986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됐다. 저수지 주변의 빼어난 풍광을 바라보며 쉴 새 없이 고기를 낚다보면, 시장기가 돌면서 어죽 생각이 난다.

해마다 전국낚시대회가 열리면 남여노소 할 것 없이 2000여명 이곳을 찾는다. 그들이 이곳에서 꼭 먹고 가는 음식이 바로 어죽이다. 여기가 어죽의 본 고장이고 원조임을 증명케하는 일화를 소개한다.

6·25 전쟁이 끝나고 20여년이 지났지만 삶은 여전히 고단했고 많은 이들이 굶주렸다. 저수지를 끼고 살았던 주민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물 반 고기 반 흔하디 흔한 물고기였지만 변변한 도구 하나 없어 포획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어느날 동네 한 아주머니가 저수지로 흘러 들어가는 실개천을 지나며 물빠진 또랑에 들어누워 버둥대는 붕어떼를 한 소쿠리나 잡았다. 그리고 몇몇 이웃과 함께 먹을 요량으로 동네 한마당에 가마솥을 걸고 요리를 시작했다. 잡은 고기의 배를 가른 취 통채로 넣고 끊였다. 그리고 거기에 국수와 수제비를 넣고 휘휘 젓는데, 음식냄새가 온 사방에 퍼지며 입소문을 듣고 동네사람들이 하나 둘 몰려 들었다.

사람수에 비해 식사 양이 턱없이 부족하다 싶어 물을 더 넣고 저으니 탕도 국도 아닌게 물고기들이 살아서 헤험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맹탕이 될 것 같았던 아주머니는 불린쌀 한 종지와 아들을 시켜 사온 찌게용 돼지고기를 아주 잘게 썰어 넣었다. 그렇게 너무 오랫동안 끊이다 보니 물고기는 부서져 흔적도 없고 탱탱불은 고기죽이 돼 버렸다.

아무튼 한사발씩 떠받은 동네사람들은 기막힌 맛에 땀을 뻘뻘 흘리며 절로 탄성을 질렀고, 무슨 재료가 어떻게 얼만큼 들어갔는지 모르는 이름도 성도 없는 이 음식을 이때부터 어죽(물고기 죽)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로부터 40여년, 전국 향토음식 3300여종 가운데 어죽은 예산의 오미(五味)로 자리잡고 예당지를 찾는 낚시꾼들의 입을 통해 명물로 알려지게 된다. 몇 해 전 그 아주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아들 내외가 비법을 전수받아 그 독특한 맛을 이어가고 있지만, 오랜기간 전파되면서 지금은 주변 어느 음식점에 가도 같은 맛을 느낄 수 있다.

붕어를 6~8시간 이상 중간 불로 고아 삼베보자기로 짜 굵은 가시를 걸러내고 그 육수에 쌀, 국수, 수제비, 들깨가루, 파, 마늘, 고추장, 고춧가루와 예당호에서 잡은 새뱅이(민물새우)를 넣는다. 그리고 근처 논·밭두렁에서 고추, 깻잎, 호박 등을 따다가 뚝뚝 잘라 넣어 끓인다.

삼복에서 초가을로 넘어갈 무렵, 친구나 마을사람들 끼리 무한천 백사장에서 투망, 반두로 잡은 물고기를 회(피래미)나 어죽으로 만들어 먹고 미역감던 천렵의 계절이 그립도록 다가온다. 이제는 아련하게 사라진 풍경이 됐지만 아직도 그때 그 시절 입맛은 추억속에 생생하게 살아있다.


#어죽#예당저수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