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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 없이 걸어 들어갔던 그 길고 암울한 터널 속에서 천성산이 내게 남긴 유산이 있다면 이 땅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고 이 땅을 더욱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천성산은 이제 다시 '상처의 의미'로 내게 다가오고 있다. 상처의 의미, 그것은 진실을 알리라는 것이다. 진실! 나는 다시 진실의 법정에 그들을 불러들일 것이다. 만일, 누군가 그 격전지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지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모든 것을 걸고 이 위험한 시대를 건넜다고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박재완 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비서관을 상대로 명예훼손과 모욕 발언으로 해를 입었다며 1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가 1심에서 기각된 '천성산 지킴이' 지율 스님은 "다시 진실의 법정에 그들을 불러들일 것"이라고 밝혔다.

 

 지율 스님. 사진은 2006년 대법원에서 도롱뇽 소송 재항고를 기각한 뒤 기자회견을 통해 입장을 밝히고 있는 모습.
지율 스님. 사진은 2006년 대법원에서 도롱뇽 소송 재항고를 기각한 뒤 기자회견을 통해 입장을 밝히고 있는 모습. ⓒ 윤성효

20일 '천성산대책위'에 의하면,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89단독 정영훈 판사는 지난 16일 지율 스님이 박 전 수석비서관을 상대로 낸 손배소를 기각했다. 정 판사는 기각 결정만 밝혔으며, 구체적으로 그 이유를 설명하지는 않았다.

 

김정진 변호사는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판결문이 아직 나오지 않아 기각 사유를 정확히 알 수 없다. 지율 스님은 <조선일보> 등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는 승소했지만, 박 전 수석비서관의 발언이나 배포 자료에는 구체적으로 이름이 거명돼 있지 않았다고 해서 논란이 있었다"면서 "판결문을 받아본 뒤 지율 스님과 상의해서 항소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율 스님은 2008년 10월 28일 김정진 변호사 등을 대리인으로 해 서울중앙지법에 소장을 제출했었다. 지율 스님은 경부고속철도(대구~부산) 천성산 구간 터널과 관련해 부실한 환경영향평가로 인해 발생할지도 모를 터널 안전 문제와 자연환경 파괴, 법적 보존지역의 훼손 우려, 법적 절차 등의 흠결을 이유로 환경영향평가 재실시를 요구하며 국토순례와 삼보일배, 3000배 기도, 단식, 도롱뇽 소송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그런데 박 전 수석비서관은 2008년 7월 25일 제주도 서귀포호텔에서 열린 대한상공회의소 주최 포럼에 참석해, 천성산 문제를 거론하면서 '대한민국 발전의 걸림돌' 내지 '설익은 민주화의 적폐', '이념을 둘러싼 집단 이기주의' 등이라고 발언했다.

 

또 당시 박 전 수석비서관은 "특히 천성산 터널을 뚫는 과정에서 도롱뇽을 보호하기 위해 2조5161억원이나 소요됐다"거나 "차라리 말이 통해서 도롱뇽을 집단 이주시켜서 공사 후에 돌아오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됐다"고 발언했다.

 

박 전 수석비서관은 '천성산 터널 반대운동'으로 인한 손실이 2조5161억원이라고 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천성산 터널 공사가 논란을 빚을 때, <조선일보>를 비롯한 상당수 언론들은 '도롱뇽 소송=2조(2조5000억) 손실' 등으로 보도했다.

 

이후 <중앙일보>와 <문화일보>, <연합뉴스>는 정정보도문을 게재했고, <경향신문>은 반론보도문을 게재했다. 지율 스님은 정정보도를 하지 않았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지율 스님 "고속철도와 4대강사업은 일직선상에 있다"

 

지율 스님은 이번에 박재완 전 수석비서관을 상대로 제기했던 소송이 기각된 뒤 홈페이지(초록의공명)에 심경을 밝히는 글을 올려놓았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기억은 무로 돌아간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내가 겪었던 거의 모든 일들은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것이 세상의 순리이고 이치이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는 말처럼 슬프게도 내가 그토록 지키고 싶어 했던 천성산의 비경들은 기억 속에 별로 남아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천성산 문제를 가져간 이 사회의 논리의 한가운데 서 있다."

 

지율 스님은 고속철도를 '세금 먹는 하마'로 표현했다.

 

"당시 고속철도 개발의 논리였던 수송능력 4배 증가, 연간 4조의 사회 경제적 편익, 그리고 1시간 56분대의 청사진은 이미 허위였음이 밝혀졌고 23조라는 막대한 세금을 쏟아부은 고속철도는 세금 먹는 하마로 전락했지만 약간의 상식만으로도 추론이 가능했던 결과들에 대해 국내 유수의 연구소와 교수들이 앞 다투어 연구결과를 내놓았고 이들이 발표한 논리를 언론이 되새김질하면서 천성산 문제는 국민들의 인식에 수조원의 손실, 국책사업의 발목을 잡는 선례로 깊이 각인되어 버렸다."

 

지율 스님은 "천성산의 생태와 문화적 가치는 위장된 경제논리 앞에 무너졌고 환경영향평가 등 법적 절차 준수는 개발의 걸림돌로 전락했다"며 "그 결과는 곧바로 4대강으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지율 스님은 이미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 '도롱뇽 소송=2조 손실' 주장이 계속 언급되고 있는 데 대해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지율 스님은 "개발논자들은 여전히 이 수치를 포석으로 논리를 펴나가는 데 아무런 장애도 느끼지 않고 있으며 이는 천성산 손실 문제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깊이 각인되어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고 밝혔다.

 

지율 스님은 이 글에서 '고속철도'와 '4대강사업'은 일직선상에 있다고 밝혔다. 국토해양부는 이명박 정부의 4대강정비사업을 주도하고 있으며, 정종환 장관은 2008년 2월부터 재직하고 있다. 정 장관은 천성산 터널 논란이 한창이던 2004년부터 2007년 1월 1일까지 한국철도시설공단 이사장을 지냈다.

 

"기억은 반복에 의해서 강화된다고 했던가. 그러하기에 나는 천성산이 지시하고 있는 방향에 선 거짓과 죽음의 4대강 현장에 다시 서지 않을 수 없었다. 고속철도와 4대강은 그 시행 주체가 전혀 변하지 않은 일직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지율 스님#경부고속철도#4대강정비사업#박재완 수석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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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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