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와 <예스24>는 '지난 10년 최고의 책' 선정 특별기획을 진행하면서 각계 인사 10명을 선정자문위원으로 위촉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 김민웅 성공회대 NGO대학원 교수,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고명섭 <한겨레> 책·지성팀장, 이한우 <조선일보> 출판팀장, 심성보 <오마이뉴스> 이사, 이동우 <북세미나닷컴> 대표, 정윤수 문화평론가,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이 자문위원을 맡았다. 이들은 각각 어떤 책을 '지난 10년 최고의 책'으로 뽑았을까. 자문위원 중 몇 명의 '지난 10년 최고의 책' 총평과 추천도서를 소개한다.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지난 10년은 절대 고독의 개인이 발견되는 여정이었다"
"나는 1981년부터 2010년까지 베스트셀러 30년을 정리한 적이 있다. 그때 정리해본 바에 따르면 2000년 이후 개인은 '성공'에서 나만의 '행복'으로, 일과 개인생활에서 철저하게 이기적인 성향을 띠는 '현명'으로, 살아남은 자의 마지막 선택이라 할 수 있는 자기치유(self-healing)로 점차 자신의 꿈을 좁혀왔다. 2009년에는 진정한 소통을 꿈꾸었지만 그마저 쉽지 않았다. 2000년대의 첫 10년은 이렇게 절대 고독의 개인이 발견되는 여정이었다. 그 모습을 대표적으로 보여준 것이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이다.
IMF 구제금융 이후 전통적 가치들이 급격하게 무너지고 수많은 기업들이 직원을 헌신짝처럼 내버리는 탐욕스런 조직으로 변해가면서 개인은 고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고독해질수록 개인은 세상과의 소통을 꿈꾸었다. 그런 욕구가 사회적인 어젠다를 제시하는 책을 찾게 만든 것이다. <오마이뉴스>가 선정한 10권의 책은 대부분 그런 욕망을 충족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책들이다. 따라서 이 책들은 모두 우리 사회의 흐름을 제대로 천착한 책들이라 할 수 있다.
한 전설적인 논픽션 라이터는 책은 타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단련시켜 준다는 의미에서 최고의 툴(tool, 도구)이라고 말했다. 프로복싱 선수가 섀도복싱을 해야 하는 것처럼, 야구 선수가 배트를 허공에 휘둘러야 하는 것처럼, 책과의 대화는 인간의 정신을 단련시켜주고 고양시켜준다고 말이다. 10권의 책이야말로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책들이기에 시대를 뛰어넘어 읽어볼 가치가 충분한 책들이다." 한기호 소장의 추천도서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창비, 2008)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도 홀로 서야 하는 절대 고독의 개인을 그린 이 소설은 세계 시민에게도 통할 수 있는 대단한 소설이다. 모든 언어권에서 번역판이 출간될 예정이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한비야 지음, 푸른숲, 2005) 힘겨운 사람이 있으면 세계 어디든 곧바로 달려가 껴안을 줄 아는 미덕을 보여준 한비야야말로 2000년대에 대중에게 다가간 유일한 '영웅'이라 할 수 있다. <헌법의 풍경> (김두식 지음, 교양인, 2004) 실종된 헌법의 정신을 밝혀내면서 인권과 평등의 근거가 되는 법률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말하는 책이다. '불멸의 신성가족'으로 일컬어지는 법조계를 제대로 비판한 최초의 책으로 볼 수 있다.
고명섭 <한겨레> 책·지성팀장 "한국 사회가 지난 10년 어떻게 살았는지 요령 있게 보여준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책 10권을 선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번역서를 배제하고 한국어로 된 저술만 대상으로 한다고 해도 어려움은 줄지 않는다. 누가 보느냐,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 어떤 태도로 보느냐에 따라 선정의 잣대는 천차만별이 될 수밖에 없다. '최고의 책'을 가늠하는 절대적 기준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결국 어떤 관점에 서느냐가 판단을 좌우하는 것이 '최고의 책' 선정 작업일 수밖에 없다. 선정자문위원을 맡아 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그런 어려운 작업을 왜 내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용기를 내서 하겠다고는 했지만, '자문'만 하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다.
최종적으로 도출된 '최고의 책' 목록은 대중성, 사건성, 영향력, 충실성이 판단의 주요 기준이 됐음을 보여준다. 아무리 잘 뽑아도 책 10권으로 지난 10년을 요약할 수는 없다. 다만 거기에 근접할 수 있을 뿐인데, 선정된 책들은 우리 사회가 지난 10년 어떻게 살았고 무엇을 고민했는지 나름대로 요령 있게 보여준다. 전문가, 시민기자, 누리꾼이 함께 만든 집단지성의 효과일 것이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신자유주의가 우리 시대의 극복해야 할 장벽임을, <88만원 세대>는 젊은 세대의 취업난이 사회적 난제임을, <당신들의 대한민국>은 우리 내부의 소수자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 시대의 화두임을,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는 '노무현 시대의 명암'이 우리 모두 함께 풀어야 할 숙제임을 깨닫게 해준다. 그러나 동시에 <엄마를 부탁해>, <칼의 노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같은 책들은 선정 기준이 대중성이나 사건성에 다소 치우친 것 아니냐 하는 느낌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겠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경우도 이 책에 관련된 사건(국방부 불온도서)의 파장을 빼놓는다면, 같은 저자의 첫 번째 한국어 책 <사다리 걷어차기>에 마땅히 더 관심이 기울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아쉬움은 아쉬움대로 남더라도, 이번에 공들여 뽑은 '지난 10년 최고의 책'은 범람하는 이런저런 '선정도서'의 선정 기준과 비교하면 공정성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만하다. '지난 10년 최고의 책'이 보여주는 풍경은 <오마이뉴스>가 창립 후 통과해온 역사의 풍경과 겹칠 터인데, 그 풍경들을 통해 우리 시대가 해결해야 할 과제를 새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작업이 낳은 가외의 소득이 아닐까."
고명섭 팀장의 추천도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최장집 지음, 후마니타스, 2002) 민주주의가 계급지배의 도구가 되어가는 현상을 비판하고 대안으로 '민주주의의 민주화'를 제시한다. <노마디즘1, 2> (이진경 지음, 휴머니스트, 2002) 199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 몰아닥쳤던 포스트모더니즘의 지적 원류를 보여주고 2000년대 이후 탈근대운동의 이념적 지표를 제시한다. <대한민국사> (한홍구 지음, 한겨레출판, 2003)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일그러진 모습을 장쾌하고 매서운 필치로 통렬하게 고발한다. 21세기 판 <해방전후사의 인식>.
이한우 <조선일보> 출판팀장"한국 사회의 변화에 큰 영향을 준 책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진행되길"
"<오마이뉴스>와 <예스24>가 공동으로 선정한 '지난 10년 최고의 책' 명단을 전체적으로 보자면 분명 새천년 10년 동안 한국 사회에 강한 지적 영향을 끼친 책들임이 분명하다. 일부 좌편향 서적들이 있지만 그것은 젊은 세대와 독서세대의 취향과 부합하는 측면이 있어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다.
다만 다시 한번 과연 이 책들이 지난 10년 동안 국내 저자나 작가들이 쓴 '최고의 책'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던져보지 않을 수 없다. 기본적으로 지나치게 사회나 정치에 집중돼 있다. 그리고 문학책을 '최고의 책' 선정에 포함시키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해서도 기본적인 의문을 갖고 있다. 오히려 '한국 사회의 변화에 큰 영향을 준 책'이라는 기준으로 뽑았다면 대부분 적절했다는 평가를 받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이런 시도가 처음이기 때문에 상당히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이념의 편향성 문제는 또 다른 입장에서 비슷한 시도를 통해 보완될 문제이지 이번 <오마이뉴스>와 <예스24>의 선정이 그런 시비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책과 멀어지고 있다는 젊은 세대들이 좀 더 다양한 책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일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독서 분야의 권위 있는 지표로 자리 잡게 되기를 희망한다."
이한우 팀장의 추천도서 <현상학과 해석학> (이남인 지음,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현대 철학의 양대 분야인 현상학과 해석학을 각각 후설과 하이데거의 철학을 통해 깊이 있게 풀어낸 역작이다. 이 책으로 인해 우리도 이 분야에서 적어도 세계적인 학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우리의 철학자를 갖게 되었다. <대서양문명사> (김명섭 지음, 한길사, 2001) 12세기경 이슬람이 유럽에서 퇴조한 이후 대서양의 문명표준을 둘러싼 유럽 열강들의 쟁탈전을 거시적으로 전망하고 그것이 훗날 미국으로 어떻게 수렴되어 오늘날 신자유주의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를 역사적으로 조망하고 있다.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 (이삼성 지음, 한길사, 2009) 국제정치학을 전공한 저자가 특이하게도 한반도 2000년의 역사를 동북아 국가들의 역학 속에서 풀어내고 있다. 특히 전쟁과 평화라는 패러다임을 통한 통시적 분석으로 현재 대한민국과 북한의 대립을 비롯해 자주와 외세의 문제 등을 국제역학 관계에서 볼 수 있는 시야를 제시한 문제작이자 역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