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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사는 방 안에도 보이지는 않지만 영혼들이 있어. 방구석에 있다가 가끔 너희를 쳐다보지. 보통 방 하나에 영혼이 몇 명이나 있는지 알아?"

필자가 어릴 적 알고 지내던 동네 형 중에는 유명한 무당을 친척으로 둔 이가 있었다. 그 무당은 죽은 사람의 영혼을 직접 보고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그 형은 명절이 지나고 나면 무당 친척에게 들은 얘기를 동네 꼬마들에게 풀어놓곤 했다. 그 형이 직접 영혼을 본 것도 아니었고 그 이야기들이 사실이라는 증거도 없었지만 그가 영혼 이야기를 할 때면 항상 아이들은 무서워하면서도 집으로 돌아갈 줄을 몰랐다. 

사람들이 영혼이나 귀신 등의 초자연적인 존재들이 등장하는 무섭고 기괴한 이야기에 공포를 느끼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는 이유는 호기심 때문이라고 한다. 여러 종류의 영혼, 예지몽, 가위눌림과 기의 존재 등은 현대 과학으로 완벽히 설명되지 않는 영역에 있기 때문에 듣는 사람의 궁금증을 더욱 자극한다.

평소 이런 이야기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이라면 최근 펜타그램 출판사에서 나온 <심령 카툰>(2010. 7.28)을 눈여겨볼 만하다. 지난 2006년 7월부터 2008년 2월까지 <오마이뉴스>에 연재됐던 웹툰을 묶어낸 이 책은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유체이탈, 빙의, 악몽, 귀접현상 등 다양한 심령현상을 다루고 있다.

 <심령 카툰>
 <심령 카툰>
ⓒ 펜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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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현상을 다룬 한국 최초의 웹툰

<심령 카툰>의 가장 큰 매력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심령 체험의 세계가 매우 구체적인 글과 그림으로 묘사되고 있다는 것이다. 50개의 장으로 이뤄진 이 책은 저자 오차원이 지금까지 직접 겪은 경험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어려서부터 귀신을 볼 수 있는 '영안'이 발달했던 그녀는 시간과 장소, 꿈과 현실을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영혼들과 맞닥뜨려야 했다. 

"오로지 나 혼자만 공포스런 영의 공격을 당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밤이면 불을 환하게 켜놓아도 나의 뺨을 만지던 손의 감촉들과 잠을 자기가 무섭게 매일 밤 꾸던 흉측한 악몽들... 그저 '아이가 몸이 약해 헛것을 보는구나'라고 생각하신 부모님. 마당에 개들을 키우면 너무 자주 죽어가던 그 옛집. 그 집에서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스무 살까지 살아야 했습니다."

책에는 머리를 풀어헤치고 피칠갑을 한 귀신, 온몸이 투명한 유령, 나쁜 귀신을 물리쳐준 죽은 아버지의 영혼, 지하세계 사람들 등 보통 사람은 경험하기 어려운 초자연적 대상들이 대거 등장한다. 저자는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직업에 걸맞게 자신이 오감으로 느꼈던 당시 상황들을 생생하게 그리고, 그 위에 담담한 어조로 글을 붙였다. 책으로 묶여 나오기 전, 약 1년 반에 걸쳐 <오마이뉴스>에 연재되며 독특하고 개성있다는 평가를 받았던 그녀의 그림체는 귀여움과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자유롭게 오가며 때로는 몽환적인 느낌까지 자아낸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소재와 실제 경험을 생생하게 담아낸 높은 수준의 일러스트. 구성이 이렇다 보니 <심령 카툰>은 여느 심령서적들보다 독자들의 공감도가 높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심한 가위눌림이나 악몽 등 저자와 비슷한 심령체험을 경험한 독자들은 <오마이뉴스> 연재 시절, 웹툰 댓글에 자신의 체험을 공유하기도 했다.

"전에 기숙사 생활을 했었는데, 신기하게도 어느 방의 특정한 침대에서 유독 가위눌리는 사람들이 속출한 적이 있었어요. 처음에는 재미 삼아 사람들이 그 방 침대에서 자보곤 했는데 전부 잠들면 가위눌리는 경험을 했죠. 나중에는 사감까지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어서 그 방은 결국 창고로 바뀌었어요. 더 오싹한 건 그 침대에서 가위눌렸던 사람들은 모두 벽에서 여자목소리를 들었다는 거예요. 분명 거긴 남자기숙사였는데..."

 <심령 카툰>에 삽입된 삽화.
 <심령 카툰>에 삽입된 삽화.
ⓒ 펜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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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인 생각을 얻어가는 성장 보고서

책 내용은 초자연적인 존재들이 불러오는 공포에 그치지 않고 그 너머에 있는 부분까지 나아간다. 저자는 책의 앞부분에서는 심령 체험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 전하고, 뒷부분에서는 사람들이 이런 심령체험들을 하게 되는 이유와 이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다양한 자료들을 통해 나름대로 제시하고 있다.

"(내) 과거의 시간 속에는 유난히 섬뜩한 집이 두 곳 있는데, 두 집의 특징이라면 그늘지고 음침한 분위기와 잦은 횟수의 악몽, 유령 출몰이었다. 어렸을 때의 집은 특히 귀신을 경계하는 길냥이(집 없는 고양이)들이 밤마다 소리를 냈으며 '귀신의 살기'가 많았던 탓인지 집에서 기르던 개들이 자주 죽어갔다.

서울의 모 아파트는, 나도 모르게 나 스스로 커튼을 깊이 치고 어둡게 살았으며 전화 혼선이 자주 있었고 형광등 깜빡임과 심령 현상이 극에 달했었다. 자료 조사에 의하면 귀신이 사는 집은 시큼한 냄새와 알 수 없는 진동, 습기가 차는 등의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저자는 <심령 카툰> 작업을 시작한 이유를 "자신의 근원적인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그녀는 자신이 왜 남들과 다른 공포를 경험해야 했는지 알고 그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한다. 책의 후반부에 오컬트(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적·초자연적인 현상, 또는 그에 대한 지식)적인 내용이 비중 있게 가미되는 이유다.

그녀는 심령체험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저자는 <심령 카툰>의 작업을 마치고 지금은 대도시를 벗어나 사랑하는 반려동물과 함께 지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책을 마무리하며 작가 후기에서 "그간 나를 괴롭혀왔던 어둠의 그늘과 공포에서 점진적으로 벗어나 요즘은 밤이 무섭지 않다"고 고백하고 있다.

저자가 심령현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비결은 긍정적이며 밝고 깨끗한 생활과 독서와 명상 등으로 자신과 주변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허탈할 수 있는 결론이지만 500쪽에 달하는 저자의 심령체험 탈출 성장드라마에는 부정하기 힘든 고민과 환희의 흔적이 엿보인다. 무더운 여름밤, <심령 카툰>을 읽으며 우리는 자신을 치유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심령 카툰 - 보이지 않는 영과 혼의 세계를 찾아가는 카툰 라이프

오차원 지음, 펜타그램(2010)


#심령 카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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