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자율화로 학교교육의 다양성과 학생 선택권을 늘려준다던 2009개정교육과정이 정작 입시로 편중돼 학생선택권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당장 내년부터 시행하려고 해도 학생들이 볼 교과서도 안 나오고 시간표대로 가르칠 교사도 부족해 총체적인 난맥상을 드러내고 있다. 그래도 교과부는 중단없이 2009개정교육과정을 시행할 방침이라고 한다. 대체 학교 현장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2009개정교육과정 현장 적용 검토 토론회 열려
지난 8월 10일 민주당 김상희 의원실 주최로 국회에서 "2009개정교육과정 시행에 따른 문제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란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는 학계, 교과부, 교육청,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이하 자문회의), 학교 현장의 목소리가 골고루 발표되었고, 일반 참가자들도 1시간여 토론을 하였다.
이 토론회는 작년에 미래형교육과정이란 이름으로 시작할 때부터 여러 논란을 낳았던 2009개정교육과정 시행을 앞두고 여전히 학교 현장에 문제점이 많아 해결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현장의 우려를 반영해서인지 휴가기간인데 불구하고 토론회를 시작하기 전부터 좌석이 꽉 차고 보조의자로도 자리가 부족해 주최 측이 연신 미안하다고 방송을 할 정도였다.
토론회를 주관한 김상희 의원이나 격려사를 한 안민석 의원은 국회에서도 2009개정교육과정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고 앞으로 국정감사를 통해 문제해결에 동참하겠다고 하였다. 축사를 한 전교조 김현주 수석부지부장은 30~40년간 사회적 합의를 이끌고 교사 연수와 사회 인프라를 준비하는 나라도 있는데, 우리는 6개월 만에 교육과정을 바꾸느라 교사들조차 동의를 못하는 점이 안타깝다고 하였다.
MB 정권에 맞춘 2009개정교육과정
주제발표를 한 김두정 교수(충남대, 전 한국교육과정학회장)는 2009개정교육과정이 학교의 자율성을 강조하고 창의적 체험활동이나 집중이수를 하려고 하는 점은 긍정적이나 현장 적용에 문제점이 많다고 발표하였다. 특히 특정 교과만 창의성이 있다거나 수업시수가 적은 교과에만 집중이수제를 하는 것은 교과간에 차별성을 두는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고등학교 3년간 학생선택교육과정으로 운영한다는데 오히려 7차나 2007개정교육과정보다 필수이수단위 수가 많아진 것도 모순이라고 하였다. 교육과정을 연구하는 교수가 2009개정교육과정이 MB정부의 정책에 맞추기 위해 자문회의에서 추진했다는 점을 초반에 명확하게 정리하면서, 교육과정이 교육 본질의 가치 추구에 더 충실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첫 번째 토론자로 나선 허숙 교수(경인교대, 자문회의)는 미래형교육과정을 만들고 2009개정교육과정개정을 계속 추진하는 입장에서 토론회에 오기가 부담스러웠지만, 대학 총장도 하고 정년도 멀지 않아 전혀 사심없이 오로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이 일을 추진했다는 신상발언부터 하였다. 급변하는 경제계와 미래사회에 맞춰 글로벌 창의 인재를 기르기 위해 학교에 자율성을 주고 2007개정교육과정을 그대로 둔 채 집중이수제나 교과군, 학년군제로 학습양을 줄였다고 하였다.
박찬구 교수(서울대)는 1시간짜리 수업은 다 피상적이라고 규정하고 무조건 1-2학기에 몰아서 공부해야 한다는 것은 해당 교과 수업을 잘 모르면서 밀어붙이는 것이고, 교육철학이 빈곤한다고 비판하였다. 교과별 시수나 내용이 그대로인 상태에서 집중이수를 하는 것은 학생들의 학습부담을 더 늘릴 수 있다고도 하였다. 영어와 수학은 국가인증시험으로 돌리고 2009개정교육과정 시행을 유예하자는 제안도 하였다.
교과부에서 나온 강익수 연구사(교육과정기획과)는 토론회에서 나오는 의견을 최대한 많이 반영하겠다면서 2009개정교육과정의 취지를 다시 설명하였다. 그간 언론에 나온 우려를 반영해 2009개정교육과정이 절대 국영수교육과정으로 가지 않도록 철저히 지도하겠다고 하였다. 서울시교육청에서 나온 장학관도 교과부와 비슷한 내용을 발표하면서, 현장에서 우려되는 점에 대해서는 국영수입시위주 교육과정운영 방지, 집중이수제나 창의적 체험활동 운영 보완 방안을 이야기하였다.
중학교는 수학과 영어 대폭 늘고 학생 선택권 줄어2009개정교육과정의 구체적인 문제는 현장교사의 발표에서 나왔다. 박만용 교사(경기 역곡중)는 초등은 2009개정교육과정과 전혀 맞지 않고 전학이 잦아 집중이수제로 피해 볼 학생이 많으며, 벌써 올 1학기부터 일제고사에 맞춰 시험 보는 과목은 시간 늘리고 예체능은 2학기로 미루는 등 일제고사에 딱 맞는 교육과정이라고 하였다. 중고등학교 결과는 더 충격적이다.
서울시 모든 중학교의 내년도 교육과정(1차 보고)을 분석한 결과 77.8%인 245개 학교가 과목별로 수업시수 20% 증감을 적용했다고 하였다. 이 중 201개교(63.2%)가 영어, 181개교(57.5%)가 수학을 늘려, 전체 늘어난 시수는 영어가 9214단위, 수학은 6545단위였다(1단위는 매주 50분 수업을 기준으로 1학기 17주 이수하는 수업량임).
수업시수가 줄어든 교과는 국어(-782단위), 사회과목군(-2448단위), 과학과목군(-3706단위), 체육(-646단위), 음악/미술(-2298단위), 선택과목군(-5610단위)으로 나타났다. 교과부가 그 동안 2009개정교육과정을 적용하면 학교별로 다양한 교육과정이 나온다고 했는데, 뚜껑을 열고 보니 천편일률적으로 수학과 영어중심 교육과정이 나타났다. 게다가 인성, 예술 관련 교과가 줄어든 것은 물론 선택교과가 무려 5610단위나 줄어 오히려 학생선택권은 줄어들었음을 알 수 있다.
교과부는 작년에 미래형교육과정(2009개정교육과정으로 이름 바꿈) 토론회를 할 때마다 입시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학교자율화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으로 결국 입시교육과정으로 변질될 것이라는 우려에 학부모 의식이 높아 절대 그럴 리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였다. 막상 예상보다 심각한 상황이 나타나자 반대의견을 낸 쪽에서 더 당혹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늘어난 수업 들어갈 교사 없어이렇게 늘어난 수학과 영어 수업은 누가 진행해야 할까? 1차 보고내용대로라면 적용 3년째인 2013년에는 서울에서만 수학교사는 약 1636명 (6545단위/2 *10학급 /20시간), 영어교사는 약 2304명이 더 필요하다고 한다. 반대로 선택과목군(-5610단위 감소) 약 1403명을 포함해 약 3488명의 과원교사가 생겨 당장 교사수급이 문제된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는 교과부가 상담교사로 전환할 것이라고 한 1300여명의 2배를 넘는 수치라서 부실 연구나 교사 부족 등 논란이 예상된다.
2013년(2009개정교육과정 적용 3년차) 서울시 중학교 교사 수급 예상 |
<수업시수 늘어난 교과> - 수학교과의 경우 교사 수 증가요인이 (6545단위/2 *10학급 /20시간) 약 1,636명으로 산정. - 영어교과의 경우 교사 수 증가요인이 약 2,304명으로 산정
<수업시수 줄어든 교과> - 선택과목군(-5610단위 감소)에서는 약1,403명의 교사수가 감소되어야 함 - 기술·가정교과가 포함된 과학과목군(-3706단위 감소)에서는 약926명의 교사 감소되어야 함 - 도덕교과가 포함된 사회과목군(-2448단위 감소)에서는 약612명의 교사 감소되어야 함 - 음악, 미술교과가 포함된 예술과목군(-2298단위 감소)에서는 약574명의 교사 감소되어야 함
출처 : 8월 10일 국회 2009개정교육과정토론회 93-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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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이수제 결과를 보면 거의 모든 학교에서 국영수는 6학기 내내 배우지만 기술·가정은 4학기, 도덕, 역사, 사회, 음악, 미술, 한문 과목은 대부분의 학교에서 2학기만 이수토록 배치하였다. 체육, 과학 과목은 6학기가 대부분이나 4학기만 배우는 학교도 있었다. 그야말로 학교가 입시 교과와 일제고사를 보는 과목 중심으로 재배열된 것이다. 이런 배치에 대해 정작 학생들은 뭐라고 이야기할지 모르겠다.
고등학교는 수능교과중심, 교육과정 다양화는 뻥!서울시 고등학교의 경우 205개교 195개교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인문사회계열은 사회>국어>영어 과목 순서대로 필수이수단위보다 초과하여 배치하고, 자연과학계열은 과학> 수학> 영어 과목 순으로 초과 배치했다. 계열간 차이도 2007개정교육과정보다 줄고, 수능 과목만을 필수이수단위를 초과하여 배치하는 등 철저히 입시만을 고려한 교육과정으로 재편했다는 평가이다. 고등학교를 완전 자율화해서 다양하게 만든다더니 결국 입시학원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특히 195개교 중 예체능계열의 과정을 개설한 곳은 2개에 불과해 2009개정교육과정은 예체능 거점학교가 가능하고 대입시생의 10%나 되는 예체능계 진학생을 위한 특별한 교육과정이라고 선전한 것이 공염불에 지나지 않았음이 밝혀졌다.
박만용 교사는 그간 교과부가 교육과정이 다양하게 될 것이라고 선전해온 것이 거짓으로 드러난만큼 이에 대해 해명해야 하고, 적어도 교사수급 문제를 해결하기 전까지는 2009개정교육과정 시행을 유보하고 지금부터라도 교원단체, 시민단체를 포함해 사회적교육과정위원회를 만들어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 논의하자고 제안하였다.
적어도 교사와 교과서는 있어야죠이창희 교사(서울 대방중)도 교사수급이 안 된다는 문제를 집중제기했다. 도덕이나 기술, 가정, 음악, 미술, 체육 같은 교과가 집중이수에 적합하지도 않지만, 이 교사들에게 다 국영수를 부전공해 가르치게 하는 것도 전문성 관점에서 문제라는 것이다. 게다가 내년에 당장 학교에서 교원수급이 맞지 않는데 적어도 1년의 재연수 기간은 둬야 하므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교과서가 없어서 제대로 가르칠 수가 없다는 지적도 하였다. 당장 내년 중학교 1학년이 집중이수를 하는 과목(주로 역사, 도덕, 사회, 음악, 미술)은 1-3학년 3년치 교과서가 다 있어야 하는데 내년에는 2학년까지만 있고 3학년은 2012년에야 나오기 때문이다. 다른 교과는 교과서가 있는데 이 교과만 없는 것도 형평성에 벗어나고 무조건 학기당 8개로 줄이라니 교사 간에 갈등도 매우 커 교육현장의 갈등요소가 된다고 하였다.
또 서울은 고교입시에 중학교 2, 3학년 내신만 반영하는데 이수교과목이 다른 상황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 전입생의 불이익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입시준비하면서 1-2학기만 배우고 잊어먹은 내용은 사교육으로 해결해야 하는지 등을 물었다. 이런 상황에서 학기당 이수과목수를 꼭 8개로 해야 할 설득력 있는 이론이나 현실 준비도 부족한 상황에서 당장은 9개 교과로 시작하든지 1-2년 뒤에 2009개정교육과정을 시행하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2009개정교육과정으로 학생들을 실험하지 말라
토론자들의 발표가 끝난 후 1시간여 참석자들의 발표가 이어졌다. 이 자리에서는 현장의 문제가 더 구체적으로 나왔다. 학교에서 협의를 잘 해서 민주적으로 결정하라는데 교장을 뺀 67명 모두 반대해도 교육과정을 교장 맘대로 짜는 학교, 교장이 집중이수과목을 결정하고, 음악교사에게 일방적으로 10%를 줄이라는 학교, 10일 만에 내년도부터 3년치 교육과정을 다 짜라서 해서 그제서야 2009개정교육과정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는 학교 등 교사들이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학교자율화라면서 초등을 보면 학교장에겐 일제고사 점수 올리기나 수업시간 20%증감을 강요하고 교사들에게는 협의해서 잘 하라고 둘러대는 행태, 2009개정교육과정 홍보와 밀어붙이기로 막상 현장의 2007개정교육과정 지원은 방치되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집중이수로 학생들이 다양한 고민을 해결할 교과수업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는데 효율성만 따지는 집중이수제가 교육적으로 올바른 근거가 무엇인지 묻는 예비교사도 있었다.
2009개정교육과정 수정고시나 유보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여건이 마련될 때까지 경과조치를 만들거나 유보하는 방안, 연구를 제대로 할 때까지 무리한 규정을 수정하는 수정고시 방안이 제시되었다. 제대로 연구도 되지 않고 현장준비도 부실한 상태에서 전국 학생들을 실험대상으로 삼지는 말아야 한다는 질타도 있었다.
입시 교과만 하면 강력하게 지도하겠다? 학교자율화는 어쩌고쏟아지는 제안에도 교과부 담당자는 수정고시나 시행을 늦추는 것은 불가능하고, 시도교육청을 통해 입시위주 교과로 짠 학교는 강력하게 지도하겠다고 하였다. 토론회장에서는 입시행정에서 당연한 일을 모르는 척하다가, 교과부 장관도 아닌데 저걸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불만이 터져나왔다. 자율화는 어떻게 되는 거냐는 비판도 나왔다.
특히 중고등학교의 경우 8월 말까지 교과서 주문이 들어가야 하는데 교과부나 시도교육청의 대책이 너무 안일하고, 결국 교과서 주문 했으니 그냥 강행하자고 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사실 이날 제기된 문제는 불쑥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작년 1월 미래형교육과정 논의가 시작될 때부터 예상된 문제였다. 토론회에서는 서울시 중고등학교에서 짠 교육과정편제표를 통해 실제 입시중심 교과만 살아남고 다른 교과는 심각한 어려움을 겪는 데다 교육이 더 획일적으로 되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교과부가 뒤늦게나마 강력하게 지도하겠다는 것은 위기를 모면하려는 제스처일까, 장관도 바뀐 마당에 제대로 공교육을 살려내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일까? 학부모와 교사나 학생, 시민사회 모두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문제이다.
덧붙이는 글 | 토론회에서도 드러났듯이 2009개정교육과정은 선전과 달리 거의 모든 학교가 영어와 수학만 늘리고 인성교육은 도외시한채 입시교과만 잘 가르치겠다는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게다가 그대로 한다면 가르칠 교사도 부족하고 교과서도 없이 수업을 해야 합니다. 무리한 시행보다는 학생들이 실험대상이 되지 않도록 더 철저하게 연구하고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새로 취임한 교과부 장관이 현명하게 대처하였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