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기사에서 3학년 수학책이 아이들이나 교사, 학부모에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아보았다. "창의성을 높인다"면서 시간마다 어려운 문제를 내놓고 아이들에게 해결하라니 이건 수업이 아니라 고문이라는 이야기도 많다. 7차 교육과정부터 모든 교과에서 창의성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정작 교육현장에는 학습지만 나돌았을 뿐 창의성을 어떻게 기를 수 있는지에 대한 제대로 된 교육 이론이나 수업방법론, 교육환경, 가장 중요한 학급당 학생 수 조정은 없었고 교사, 학생들만 바쁘게 달려왔다. 이런 상황에서 수학책뿐만 아니라 인문환경이란 말로 대표되는 사회책도 수학 못지않게 어렵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3학년 교과서에 어려운 낱말 늘어놓고 뜻은 4-1학기에 알아라?

 2007개정교육과정에 따라 새로 만든 3-1학기 사회 교과서
 2007개정교육과정에 따라 새로 만든 3-1학기 사회 교과서
ⓒ 교과부

관련사진보기

3학년 1학기 사회 1단원 <고장의 모습>에서 눈에 띄는 낱말을 찾아보았다.

고장, 위치, 영향, 이해, 통계표, 도표, 아시아 대륙, 삼면, 들, 하천, 기후, 자연환경, 인문환경, 우주, 지구, 지구본, 육지, 인공위성, 산이나 하천이 맞닿아 있는, 지형, 고산 목장, 수상 가옥, 고원, 대평원, 건조 기후, 열대 기후, 한 대 기후, 기온, 강수량, 조화, 이용, 훼손, 풍요로운, 나침반, 방위(동, 서, 남, 북), 기호

대부분 아이들이 들으면 알만한 내용이라기보다는 학문적 개념이라 하나를 설명하는데 배경지식과 내용, 사례까지 들어줘야 할 내용들이 많다.

그런데 책을 보면 자세한 설명은 되어있지 않고 예만 늘어놓았다. 이 중 지형, 기후, 위치, 자연환경, 인문환경, 하천, 산, 섬, 바다 같은 개념의 뜻은 4학년 1학기에나 나와 있다. 기온은 날씨를 다루는 과학 4단원이라 여름에 배우게 된다. 이러니 아무리 책을 여러 번 읽어도 개념이 제대로 안 잡혀 결국은 외우는 방법밖에 없다. 교과서의 문제 때문에 교사가 일일이 해석해주고 답도 알려주고 해야 수업이 겨우 이루어진다. 다음은 3-1 사회 교과서에 나온 어려운 낱말들에 대한 교과서의 설명과 나오는 시기이다.

자연환경 : 산, 들, 하천, 바다, 기후(3-1, 8쪽)
인문환경 : 사람들이 만든 집, 학교, 도로, 논밭, 공장(3-1, 8쪽)
지형 : 땅의 모습(4-1, 16쪽)
기후 : 일정한 기간의 기온, 강수, 바람 등의 대기 상태(4-1, 16쪽)
기온 : 공기의 온도, 날씨가 춥고 더운 걸 알 수 있다(3-1, 과학 129쪽)

왼쪽은 우리 고장, 오른쪽은 세계 지형과 기후...글로벌 시대 초3의 생활?

교과서 '고장의 자연과 우리의 생활'로 들어가면 친구들이 보내준 엽서라면서 스위스의 고산목장, 캄보디아의 수상 가옥, 중국의 강과 다리를 보며 우리 고장의 생활모습을 알아보라는 내용이 나온다. 우주 사진과 지구본에서 시작해 우리 고장을 보더니 아직 단어 개념도 잡히지 않은 아이들에게 다른 나라 사진을 보고 우리 고장의 특징을 찾으라는 것이다. 그 다음 장에서도 내용은 마찬가지다.

 3-1 사회 16, 17쪽 내용입니다. 16쪽은 우리 고장의 자연환경을 지형과 기후로 나누라는데 여기에서 비, 눈, 바람, 해는 나눌지언정 어떻게 지형과 기후라고 나누라고 하는지 기가 막힙니다. 배우지도 않은 그림지도, 기상청의 통계 자료로 알아보라는 것도 웃깁니다. 17쪽은 바로 다른 나라로 넘어갑니다. 어떻게 3학년 교과서를 이렇게 만들 수 있을까요?
 3-1 사회 16, 17쪽 내용입니다. 16쪽은 우리 고장의 자연환경을 지형과 기후로 나누라는데 여기에서 비, 눈, 바람, 해는 나눌지언정 어떻게 지형과 기후라고 나누라고 하는지 기가 막힙니다. 배우지도 않은 그림지도, 기상청의 통계 자료로 알아보라는 것도 웃깁니다. 17쪽은 바로 다른 나라로 넘어갑니다. 어떻게 3학년 교과서를 이렇게 만들 수 있을까요?
ⓒ 교과부

관련사진보기


16쪽 우리 고장의 환경을 지형과 기후로 그림에서 찾아 표시해봅시다
(☞지형과 기후의 뜻도 아직 안나왔음, 기온, 비, 구름은 1학기 과학 마지막 단원임 )

17쪽 풀어보기 - 다른 나라 사람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 보며 그곳 지형과 사람들의 생활 모습 생각해보기
예시 : 티베트의 고원, 미국의 대평원, 네덜란드의 하천
(☞하천 뜻은 4-1학기에 나옴, 세계 여러 나라는 6학년에나 나옴)

18쪽 그림 지도 보고 지형의 특징과 생활 간의 관계 생각하기
(☞그림 지도 그리기와 기호는 아직 안나왔음. 35쪽부터 배움)

19쪽 : 다른 나라 사람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과 그림 보며 그곳 기후와 생활모습 생각하기 예시 : 건조 기후 지역, 열대 기후 지역, 한대 기후 지역
(☞2학년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특징은 공부하였으나 건조, 열대, 한대는 5, 6학년에도 안나옴, 중학교 1학년에 나옴)

20쪽 : 고장 계절 모습과 기온, 강수량 나타낸 그래프 보고 고장 기후와 우리 생활의 관계 알기(사계절 강수량 그래프, 사계절 기온 그래프)
(☞기온, 강수량의 뜻 아직 안 배웠음, 과학 4단원에 나옴)

아무리 요즘이 세계화 시대에 글로벌 인재 어쩌고 한다지만 이제 3학년이 된 아이들은 이제 막 나와 내 친구, 우리 가족을 벗어난 대상에 대해 관심을 가지려고 할 시기이다. 사실 고학년이 되어도 외갓집이나 휴가지 다녀온 곳의 지역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3학년에게 산, 들, 하천도 이해시키지 않은 채 우리 고장과 세계 지형, 기후를 오가며 공부하라는 건 아이들을 너무 몰아대는 것 아닐까? 주변 환경과 사회에 관심이 생기기는 커녕 지레 겁먹고 포기하라는 것처럼 느껴진다.

기온이나 강수량 같은 내용도 과학에서는 4단원이라 6월쯤 배우게 되므로 아이들은 사전지식 없이 기후에 대해 공부하게 된다. 날씨 뜻도 모르는데 강수량 그래프를 해석하고 세계기후까지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3-1 과학 129쪽에 처음으로 공기의 온도라는 기온의 뜻이 나옵니다. 과학 4단원은 날씨와 우리 생활로 기온, 바람, 구름, 비, 일기도 보는 법 등이 나옵니다.
 3-1 과학 129쪽에 처음으로 공기의 온도라는 기온의 뜻이 나옵니다. 과학 4단원은 날씨와 우리 생활로 기온, 바람, 구름, 비, 일기도 보는 법 등이 나옵니다.
ⓒ 한국과학창의재단자료 편집

관련사진보기


이렇게 사회 교과서에는 한 단원에서도 내용의 순서가 제멋대로이고, 교과 간에 단원 배치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내용이 들어있다. 혹자는 교사가 재구성해서 과학 4단원을 먼저 배우고 사회 1단원을 가르친다든지, 사회 1단원도 그림지도부터 시작해 거꾸로 지형과 기후로 나갈 수 있지 않냐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초등학교 현실을 보면 대부분 2월 말 담임 배정을 받아 교과서를 훑어볼 시간도 없이 아이들 이름 외우고 교실 정리하고 학교 업무 인수 받으며 정신없는 3월을 보내야 한다. 이런 현실은 수십년째 변하지 않고 있다.

5학년은 6시간, 3학년은 2시간만에 후딱... 아이들은 어떻게 이해 하나?

 우리 조상들이 주로 이용하던 산경도입니다. 교과서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정맥과 주요 하천, 산을 공부하면 아이들이 우리 나라 땅의 생김새를 잘 이해하는 편입니다. 직접 만들다 보면 지형이 저절로 익혀지는 효과도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주로 이용하던 산경도입니다. 교과서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정맥과 주요 하천, 산을 공부하면 아이들이 우리 나라 땅의 생김새를 잘 이해하는 편입니다. 직접 만들다 보면 지형이 저절로 익혀지는 효과도 있습니다.
ⓒ 신은희

관련사진보기

올해 3학년이 배운 지형과 기후 내용은 7차 교육과정에서는 5학년에 나오는 내용이다. 5학년 때에는 1단원에서 우리나라 지형과 기후를 7~8시간 동안 배운 뒤에 조상들이 자연환경의 특성을 이용해 주거와 음식, 세시 풍속을 어떻게 만들어왔는지, 도시는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배운다. 지형을 이해하기 위해 전에 다녀온 곳에 대해 다시 알아보고, 찰흙으로 백두대간이 나타난 산경도를 만들어보며 아이들은 지형을 이해하게 된다. 그래도 많은 선생님들이 5학년 아이들이 내용을 잘 이해 못한다고 걱정하는 상황이다.

5학년 2단원에서는 자연환경을 다시 도시와 촌락으로 나눠 각각의 특징과 장단점을 배운다. 3단원에서는 자연환경에 따라 생기는 자연재해나 환경문제를 공부한다. 학기 초에 배운 내용을 토대로 1학기 내내 우리가 사는 지형의 특징이나 지형이 옛날이나 요즘 시대에 어떤 영향을 주고, 당면한 재해와 개발, 환경 문제가 무엇인지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2007개정교육과정에서는 이 내용을 3, 4학년에 내려보내며 내용과 체계가 뒤죽박죽이 되었고 수업 시간도 줄어들었다. 예를 들어 5학년에서는 지형 3시간, 기후 3시간 공부하는데, 4학년에선 지형, 기후 합쳐 3시간(뜻과 쓰임새 설명 1시간), 3학년에선 뜻도 안 가르쳐주고 지형 1시간, 기후 1시간씩 배우게 된다. 여기에 우리 고장도 모르는데 세계 지형과 기후까지 나와 있다.

2009년 3학년이 배운 7차 교육과정 교과서와 비교해도 차이가 크다. 표를 보니 작년 1, 2 단원에 배운 것을 올해는 1단원으로 몰아서 배우고 있다. 이러다보니 10시간을 해도 부족한 그림지도를 2시간만에 주변 탐방도 못하고 그려야 하고, 1학기가 끝나도 아이들은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게 됐다.

 7차와 2007개정교과서에 따른 3학년 1학기 사회교과서 내용 목차입니다. 7차에 비해 1, 2단원이 합쳐져있습니다. 7차의 3단원은 2학기로 넘겨졌습니다. 이번 사회개정교과서는 이렇게 학년간 이동이 많아 학생과 교사들이 많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7차와 2007개정교과서에 따른 3학년 1학기 사회교과서 내용 목차입니다. 7차에 비해 1, 2단원이 합쳐져있습니다. 7차의 3단원은 2학기로 넘겨졌습니다. 이번 사회개정교과서는 이렇게 학년간 이동이 많아 학생과 교사들이 많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 신은희

관련사진보기


발달단계와 통합 원칙 무시한 내용 주고 받기

3학년 사회 1단원은 2학년에서 갓 올라온 아이들이 사회라는 교과를 처음 만나는 것으로 사회 교과의 특성이나 정체성을 알 수 있게 하는 단원이다. 그런데 첫 단원부터 왜 이렇게 알아야 할 내용도 많고 체계없이 뒤죽박죽이 되었을까? 그 이유가 이번에 초등학교에서도 사회교과를 사회문화, 지리, 역사 분과로 만들었기 때문은 아닐까? 

사회교과는 역사, 지리, 사회문화가 통합되어 있는 교과이다. 중·고등학교에서는 내용별로 따로 배우다가 7차 교육과정에 와서 통합을 추구하면서 한 교과로 묶었는데, 초등에서는 원래 통합적으로 접근을 하였다. 이에 따라 7차 사회 교과서는 학생발달수준에 맞춰 환경 확대법에 따라 내용을 구성하였다. 1, 2학년에서 우리 집, 학교에서 출발해 우리 고장, 지역, 우리 나라, 세계로 나아간다는 가정이다. 내용 영역도 6-1학기만 역사(인간과 시간) 영역일 뿐, 다른 학년은 모두 통합교과서였다.

그런데 당시 내용을 단순하게 합쳐만 놓아 정체성이 모호하고 교사들이 수업할 때 어렵다는 평가도 나왔다. 7차 교육과정에서 1단원에 마을을 탐방하고 그림지도를 그리는 데 상당히 힘들었다. 2002년도에 3학년 사회 수업을 한 달여 열심히 하고 난 뒤 쉬는 시간에 한 아이가 나와서 한 말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선생님, 대체 사회(교과)가 뭐예요?"

초등에서는 교육과정평가를 할 때마다 사회와 국어가 가장 어렵고 가르치기 힘들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교과부는 개정과정에서 이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제시하지 않고, 단순히 합쳐 문제가 됐던 지난번과 달리 이번에는 초등학교도 중등처럼 교과서를 분과별로 나눠버렸다.

 7차와 2007개정교과서에 따른 초등학교 교과서 내용 구성 방식 비교표
 7차와 2007개정교과서에 따른 초등학교 교과서 내용 구성 방식 비교표
ⓒ 신은희

관련사진보기


가장 큰 특징은 6학년에 배우던 역사가 5학년 1년으로 변한 것과 6학년 1학기 내용에 다른 학년에 있던 역사 내용을 다 합쳐놓은 것이다. 교사들은 6학년이 사춘기에 접어들어 자기세계관이 생기기 시작하는 나이라 역사 수업이 조금 어렵지만 그래도 할만하다고 하며, 이 때를 아이들이 최초로 사회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하는 시기로 보았다. 그런데 5학년으로 내려가면 해당 교육 내용이 도저히 초등학생에게 맞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지만 이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새 교과서를 보고 내용이 조금 체계적으로 변한 것도 있다고는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과정에서 5학년에서도 어렵다고 하던 지리와 경제 내용이 3, 4학년으로 원칙없이 퍼져나간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3, 4학년 1단원이다. 2004년부터 시작해 2007년 2월에 끝난 교육과정 개발 과정에서 나름대로 많은 고민을 통해 이뤄진 일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초등학생 발달단계와 여러 영역이나 교과를 통합해서 주제학습도 하는 초등교육의 성격을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일제고사로 학생과 교사는 이중부담

요즘 들어 일제고사가 부쩍 늘어나는 것도 사회 교과에는 큰 부담이다. 원래 사회는 사회교과서와 지역화교과서인 사회과 탐구가 학년별로 다르게 제시된다. 3학년은 시·군자료(우리 고장00), 4학년은 시·도자료(살기좋은 oooo)같은 방식이다. 교과서에서 큰 골격을 제시하고 지역화교과서를 통해 구체적인 사례를 공부하며 개념을 획득해가는 방식이다. 사회교과서보다 지역화교과서가 실제로는 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2007개정교육과정이 너무 어려워 지역화 교과서와 내용이 맞지 않게 되고, 일제고사 때문에 이제는 교과서에 있는 내용을 더 중요하게 보고 일일이 외워야 한다. 실제 아이들이 경험하고 이해해야 할 내용보다 시험에 나올 내용이 더 비중을 차지하게 되어 수업이 이상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이 때문에 교사들은 안되는 수업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이고, 학생들도 이중 부담으로 스트레스만 커지게 됐다.

수학이나 사회나 정말 3학년 수준으로는 제대로 이해하고 배우기가 어렵다. 이 내용을 소화하는 건 더욱 어렵다. 대체 교과부는 3학년 아이들 수준을 어떻게 보고 교육과정과 교과서를 만든 것일까? 대한민국 초3으로 살아가는 게 참 힘들어 보인다.

덧붙이는 글 | 이렇게 어려운 교과서가 나온 것은 해방 이후 50년이 지났지만 초등학생의 발달단계나 탐구 수준에 대한 체계적인 자료나 교과서에 대한 제대로 된 분석물 하나 나와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들 때마다 맨주먹으로 주먹구구 교과서를 만들다보니 결국 학생들만 피해를 봅니다. 다음 기사에서는 초등학교 교과서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초3사회#2007개정교육과정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