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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에 띄기 쉬운 색상으로 제작된 환경미화원 하늘색 유니폼
 눈에 띄기 쉬운 색상으로 제작된 환경미화원 하늘색 유니폼
ⓒ 송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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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으로 가는 지하철은 한산했다. 맞은편 의자에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 다섯이 옹기종기 앉아 있다. 다섯 색깔 '쪼리'와 알록달록한 캐리어 가방이 그들의 목적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머리를 모아 질끈 묶고 쿠션이 좋은 겨울 운동화를 골라 신은 내 모습이 차창에 비쳤다.

지난 20일 '출근'한 인천공항의 여객터미널 면적은 50만㎡, 축구장 60개 규모다. 여기에 탑승동 17만㎡가 추가된다. 외관을 장식하는 유리만 63빌딩의 네 배인 5만 2천장, 화장실 468개가 있다. 지하 2층에서 지상 4층까지 551명이 청소한다. 이들은 모두 용역업체에 고용된 비정규직이다.

양복을 입은 정규직 직원이 청소복을 건넸다. 그는 업무를 보던 부하 직원 네 명을 내쫓고 사무실을 통째로 비운 뒤, 청소복으로 갈아입도록 도왔다. 숨 막히는 배려였다. 유니폼 왼쪽 가슴에 인천공항 로고가 커다랗게 새겨져 있었다.

 각 층에서 나온 쓰레기를 한데 모아 한 시간마다 지하로 내려보낸다. 두 시간 동안 모은 쓰레기만도 큰 냉장고 두 개쯤 됐다.
 각 층에서 나온 쓰레기를 한데 모아 한 시간마다 지하로 내려보낸다. 두 시간 동안 모은 쓰레기만도 큰 냉장고 두 개쯤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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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은 넓었다. 청소복을 입고 본 공항은 더 넓었다. 정장을 입은 두 직원이 나를 쫓아왔다. 청소 복장을 한 50대 파트장 아줌마가 바닥에 떨어진 휴지 조각을 주우며 뒤따랐다.

인천공항 청소는 크게 건물 외부 청소와 실내 화장실, 바닥 청소로 나뉜다. 세부적으로 대합실, 출발/도착지역, 화장실, 천장, 유리창, 주차장, 지붕 등을 쓸고 닦는 일과 실외 쓰레기, 실내 쓰레기, 화장실 쓰레기를 비우고 모으고 쌓아서 지하로 보내는 일이 있다. 직원은 나를 위해 특별한 청소 시간표를 내놓았다. 건물 외부 청소, 화장실 청소, 쓰레기 처리 과정 체험코스였다. 공항의 핵심 청소라고 했다. 몇 시간 만에 가능하다는 말이 어떤 전문 지식이나 기술, 능력은 필요 없다는 뜻 같았다.

35℃ 폭염주의보 속에 등에 땀 차도록 쓰레기 주워 

 필자가 건물 외부 쓰레기통을 비우고 있다.
 필자가 건물 외부 쓰레기통을 비우고 있다.
ⓒ 송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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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나를 50대 조장 아줌마에게 인계했다. 조장은 사원들을 감독한다. 건물 외부 중앙 게이트에서 서쪽 게이트 끝까지 50m마다 설치된 쓰레기통을 비우는 일이었다. "한 번만 시범 보이면 되지 뭐." 올해 쉰일곱이라는 사원 김씨(가명) 아저씨는 조장 아줌마 감독 아래, 모래 안에 박힌 담배꽁초들을 쓸어냈다. 손을 뻗어 물병이나 페트병 같은 자잘한 쓰레기를 꺼내 끌고 다니는 청소카트에 모았다. 인천공항에서 요긴한 일이었지만 인천공항이 아니어도 되는 일이었다.

 청소차
 청소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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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낫네!" 쓰레기통 하나를 비우자마자 칭찬을 들었다. 그날은 35℃,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날 오후 1시였다.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쓰레기통을 비울수록 등에 땀이 찼다. 쓰레기통은 포일에 쌓인 뜯지 않은 김밥과 아저씨 시급보다 비싼 브랜드 커피도 담고 있었다. 괜히 쓰레기통이 야속했다.

김씨 아저씨는 아침 7시부터 오후 3시 반까지 쓰레기를 주웠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중앙에서 서쪽으로 한 시간, 서쪽에서 중앙으로 한 시간, 매일 8시간씩 4년 동안 담배꽁초를 치웠다. 학생으로 보이는 10대, 20대들도 담배를 피우고 꽁초를 아무렇게 버렸지만, 그 가운데 김씨 아저씨가 피운 담배는 하나도 없었다.

화장실, '막 청소 끝낸 듯한 상태' 유지하려고 닦고 또 닦고 

 화장실 청소
 화장실 청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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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가명) 아줌마는 입국장 동편에 있는 여자 화장실 두 개를 청소한다. 딱히 힘든 일은 없지만 모든 일이 신경 쓰인다. 시도 때도 없이 들르는 고객들에게 언제나 '막 청소를 끝낸 상태'로 느껴지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계 초일류 공항을 지향하는 딱 그만큼 화장실 청결에 대한 압박이 있었다.

세면대에도 물기가 없어야 한다. 핸드 타올과 휴지 구비는 기본이다. 화장실 바닥, 카펫은 걸레로 닦고 먼지를 턴다. 제일 중요한 것은 역시 변기다. 자칫 냄새가 번져 화장실을 오염시키면 고객들이 미화원을 보는 눈빛부터 달라진다. 변기는 세제를 풀어 솔방망이로 문지른다. 팔뚝의 힘과 손목의 스냅을 이용해 수세미로 닦는다. 젖은 걸레, 마른 걸레로 한번씩 훔친다. 단, 변기를 한번 닦은 걸레는 다음 변기를 닦을 때 꼭 빨아 써야 한다.

청소도구함 화장실 광을 내기 위해서는 많은 제품이 필요하다.
▲ 청소도구함 화장실 광을 내기 위해서는 많은 제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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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을 모두 한 시간 동안 화장실 두 곳을 10분씩 왕복하며 진행한다. 한 쪽 화장실에 오래 있으면 다른 쪽이 더러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씨 아줌마는 1시에 출근해 9시 30분에 퇴근한다. 직장에서 일하는 8시간 동안 10분씩 두 화장실을 번갈아가며 청소한다.

화장실에는 각국에서 온 사람, 각국으로 나갈 사람이 섞여 있다. 세면대를 닦는 중이었다. 내 또래로 보이는 한 여성이 세면대 거울을 보고 화장을 고치며 전화를 했다. "미국서 지금 막 왔어." 한눈에 보기에도 시원한 여름 원피스였다.

나는 눈에 띄는 하늘색 유니폼을 입었다. 거울을 닦아야 하는데, 고개를 들 수 없을 것 같았다. "비행기 타 본 적 있어요?" 내가 아줌마에게 물었다. 정씨 아줌마 기본급은 94만 원이다. 비행기삯은 대체로 아줌마 월급보다 비싸다. 정씨 아줌마는 비행기를 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휴가철은 공항 사람들이 가장 바쁜 때다. 남들 쉬는 휴가철과 토, 일요일은 쉴 수 없다. 주말을 제외하고 평일에 돌아가며 하루를 쉰다. 연차 15일을 이용하면 사나흘 정도 휴가는 다녀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정씨 아줌마는 요새 단체 해외여행 다녀오는 중년 여성들이 부럽다.

그러나 아줌마의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 1시 출근을 위해 11시에 차를 탄다. 12시 20분 도착해 옷을 갈아입고 숨을 돌리면 곧 일을 시작해야 한다. 아줌마는 내게 청소 시범을 보이며 말했다. "고객님들이 불편하시면 안 되니까… 고객님들이 친절하게 말씀해 주시면 기분도 좋고 위로가 돼." 나는 잘 이해가 안 됐다.

주40시간 넘게 일해도 시간외수당은 언감생심

 화장실 바닥도 일일이 손으로 걸레질을 한다.
 화장실 바닥도 일일이 손으로 걸레질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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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용역업체가 바뀌어도 정씨 아줌마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고용승계가 됐다. 늙고, 기술 없고, 돈 없는 사람들은 갈 데도 없고, 바랄 것도 없다. 다행이라고 했다. 그러나 승진은 정씨 아줌마의 일이 아니다. 아줌마가 100년을 더 일해도 정식직원이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6년 전, 90만 원을 받은 아줌마는 이것저것 합해서 지금 100만 원 조금 넘는 돈을 손에 쥔다.

요새 공항 분위기가 좋지 않다. 환경미화 노동자 대다수가 휴일근무수당과 시간외수당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노동시간은 주 40시간을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간외수당을 지급하도록 되어 있다. 환경미화 노동자들 중 40시간만 일하는 사람은 없다. 적정 수당을 받는 사람도 없다.

 각 층에서 배달된 쓰레기가 지하에서 분리수거 되고 있다. 왼쪽에 있는 쓰레기 수거 더미가 한 층에서, 한 시간동안 모인 양이다.
 각 층에서 배달된 쓰레기가 지하에서 분리수거 되고 있다. 왼쪽에 있는 쓰레기 수거 더미가 한 층에서, 한 시간동안 모인 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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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인천공항과 용역회사의 계약 내용을 모른다. 환경미화 노동자들을 고용한 것은 용역 파견 업체다. 근무 태도는 조장이나 파트장이 감독한다. 같은 비정규직이지만 조장과 파트장은 관리자다. "관리자는 사무실과 한편"이라는 말이 들렸다. 갈등은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게 더 심하게 전염되고 있었다.

뒷소식
지난 24일 전국공공서비스노동조합 인천공항지부는 인천공항에서 일하는 환경미화 노동자들의 임금 10억원이 수년 동안 체불됐다고 폭로했다.

인천공항지부는 인천국제공항공사가 하청을 준 환경미화 용역업체가 원청인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 임금 명목으로 받는 돈 중 시간외근무수당, 야간근무수당, 휴일근무수당 등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인천공항은 세계 정상급이다. 그런데 환경미화 노동자의 급여는 정산되지 않고 있다. 김씨 아저씨와 정씨 아줌마는 '자랑스러운' 일터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기자 앞에서 입조심하라는 말이 슬며시 들렸다.

'동료'들과 제대로 된 인사도 없이 헤어지고 사무실에 들러 양복 입은 직원을 만났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는 웃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공항을 나오는 순간, 허탈했다. 사람이 쏟아져 나오는 입국장 위로 '5년 연속 공항서비스 세계 1위'라는 플래카드가 높다랗게 걸려 있었다.


#인천공항#체험기사#노동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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