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서(鐵鼠)는 일본의 전설에 등장하는 것으로, 강철 같은 이빨에 돌 같은 몸을 가진 쥐를 가리킨다.
11세기 초반, 일본의 천태종 승려 라이고가 원성사에 계단을 만들 수 있도록 해달라고 천황에게 요청했고 천황은 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경쟁관계에 있던 절 연력사에서 즉시 이에 반대하는 상소를 조정에 올리고 절의 문을 닫아버리는 등의 항의를 시작했다. 그러자 조정에서도 어쩔 수 없이 라이고 승려의 요청을 취소했다.
라이고는 천황과 연력사를 원망하며 모든 곡기를 끊고 죽었다. 그후 라이고의 망령은 팔만사천 마리의 쥐로 변해서 연력사에 침입, 연력사의 불상과 경전을 갉아 먹었다.
연력사는 할 수 없이 사당을 짓고 그 안에 라이고를 신으로 모셔서 그 원념을 진정시켰다고 한다.
죽고나서 극락왕생해야할 승려가 원념에 사로잡혀 축생으로 변할 정도였으니 국가와 연력사에 대한 증오가 얼마나 컸을까. 아무리 불법(佛法)으로 마음을 다스리고 수행하더라도 승려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인가 보다.
산 속의 절에서 죽어나가는 승려들교고쿠 나츠히코의 1996년 작품 <철서의 우리>에서도 이렇게 증오에 사로잡힌 승려가 등장한다. 작품의 무대는 1950년대의 일본, 도쿄 인근 하코네의 한 여관에 잡지사 기자들이 머물게 된다. 기자들의 목적은 하코네 산 속에 있는 수수께끼의 사찰 명혜사를 취재하기 위한 것이다.
동시에 주인공과 그의 친구 교고쿠도 역시 다른 목적으로 하코네를 방문한다. 그리고 승려를 대상으로 한 연쇄살인이 시작된다. 연쇄살인의 방식도 기묘하다. 첫 번째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된 승려는 여관 마당에 있는 커다란 거목 아래에 결가부좌를 한 자세로 발견된다.
문제는 여관에 머물고 있는 손님들이나 여관 직원 중에서 아무도 그 승려가 나타나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승려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갑자기 좌선을 하는 듯한 자세로 죽은 채 나타난 것이다. 그 승려가 명혜사의 승려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경찰의 수사 대상은 명혜사로 좁혀진다.
경찰은 여관의 손님과 명혜사의 승려들을 대상으로 탐문수사에 들어가지만 좀처럼 실마리를 찾지 못한다. 그러던 도중에 명혜사의 다른 승려가 또다시 기괴한 자세의 시체로 발견된다. 범인은 분명히 명혜사의 승려 가운데에 있다. 누가 무슨 목적으로 연쇄살인을 저지르고 있는 것일까?
괴담과 사건을 뒤섞는 '교고쿠도 시리즈'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이는 '묻지마 살인'이 아닌, 이런 식의 기묘한 연쇄살인에는 범인의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경우가 많다.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들은 그 메시지를 빨리 포착하는 것이 여러 가지로 유리할 것이다. 다음 살인을 예측할 수도 있고 범인을 그만큼 빨리 검거할 수도 있는 것이다.
<철서의 우리>의 형사들은 그 대신 우왕좌왕한다. 그럴만도 한 것이, 승려들은 적극적으로 수사에 협조하지 않고 형사의 질문에도 선문답 같은 대답을 한다. 연쇄살인이 벌어졌는데도 사찰의 일상을 계속 유지하려고 한다. 절 안에는 시계가 없기 때문에 승려들의 행동을 시간별로 파악하는 것도 어렵다.
사건의 진상을 꿰뚫어보는 것은 탐정 역할을 하는 교고쿠도다. '교고쿠도 시리즈'에 단골로 등장하는 그는 나카노에서 고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면서 사람에게 들러붙은 요괴를 떼어내는 해괴한 일도 함께 하고 있다. 그런만큼 일본의 각종 괴담과 기담에 정통해있고 불교를 포함한 종교의 역사에도 해박하다.
교고쿠도는 <철서의 우리>에서도 풍부한 지식과 날카로운 직감을 발휘한다. '교고쿠도 시리즈'의 특징은 일본의 괴담과 현실의 사건을 한데 뒤섞는 데 있다. <철서의 우리>에서도 사람들은 도저히 현실적이지 못한 기이한 현상들을 목격한다.
하지만 역시 흥미로운 것은 승려들이다. 승려도 희노애락의 감정을 느낄테고 분노가 깊어지면 살인같은 범죄를 연달아 저지를지 모른다. 승려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다. 이 작품을 읽다보면 그걸 더욱 느끼게 된다.
덧붙이는 글 | <철서의 우리> 상, 중, 하. 교고쿠 나츠히코 지음 / 김소연 옮김. 손안의책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