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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는 작년부터 2007개정교육과정에 따라 만든 교과서로 공부를 하고 있다. 새 교과서를 보고 새롭다, 학습자료가 많다고 하는 평가도 있지만, 대체로 너무 어렵다는 게 교사나 학부모의 공통된 평가이다. 그 중에서도 저학년 국어, 특히 1학년 국어가 어렵다고 한다.

1학년 국어는 모국어인 한글을 토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단순한 교과의 의미를 벗어난다. 우리 나라 말이니 태어나서부터 배우고 익히긴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한글에 대해 배우고 익히는 첫 번째 관문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우리 말글의 구조뿐 아니라 여러 기본적인 문법, 어휘, 특징에 대해 평생 쓸 내용을 배우는 셈이다.

한글 배워와도 어려운 1학년, 문제는 교육과정

그런데 요즘 1학년 국어책을 본 교사나 학부모는 깜짝 놀란다.
"왜 이렇게 어렵지? 요즘 애들은 한글 다 배워서 가야겠네!"

 최근에 아이들이 배운 1학년 1학기 교과서입니다. 위는 2007개정교과서로 작년부터 쓰였고, 아래는 7차교육과정 교과서로 2000년부터 9년간 쓰인 교과서입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분석에 따르면 7차교육과정 읽기 교과서에는 기초문식성 교육이 딱 6시간 배정되어 있었습니다. 두 교과서 모두 아이들에게는 너무 어렵다는 것이 공통적인 평가입니다.
 최근에 아이들이 배운 1학년 1학기 교과서입니다. 위는 2007개정교과서로 작년부터 쓰였고, 아래는 7차교육과정 교과서로 2000년부터 9년간 쓰인 교과서입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분석에 따르면 7차교육과정 읽기 교과서에는 기초문식성 교육이 딱 6시간 배정되어 있었습니다. 두 교과서 모두 아이들에게는 너무 어렵다는 것이 공통적인 평가입니다.
ⓒ 신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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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우리나라는 초등학교 1학년에 들어가 한글을 체계적으로 배워서 실력을 키워나가는 게 아니라, 유치원 때 한글을 배워서 가야 겨우 1학년 교육과정을 따라갈 수 있다. 아니, 한글을 미리 알고 와도 이해하기 어려운 교육과정이다. 대체 왜 그럴까?

첫째, 낱말, 낱자를 배울 체계적으로 배울 시간이 부족하고 문장쓰기 훈련 시간도 매우 부족하다. 국어교과에서는 이를 기초문식성 교육이라 부른다. 국어교과서를 보면 나, 너, 우리에서 시작해 몇 가지 낱말을 배우다가 글자의 짜임, 자음, 모음 몇 번 공부하고 받침 있는 글자, 띄어 읽고 쓰기, 틀린 글자 고치기, 문장부호 배우기로 들어간다.

아이들이 이 시간 만으로 한글의 원리를 충분히 이해하고 읽고 쓰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 여기에 한 줄 쓰기도 제대로 되지 않았는데 바로 그림일기를 쓰고 줄글을 줄줄 쓰고 글의 형식까지 고려해 완성해야 한다. 결국 한글을 안배우고 온 아이들은 1학년부터 부진아 대열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기능은 안 가르치고 성과만 뽑아내라?

둘째, 기초문식성 교육시간이 부족한 것은 1, 2학년 국어교육과정 성취수준이 너무 높고 교육과정 설계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7차교육과정까지는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영역별로 기초기능을 익혀서 학생들이 체계적으로 국어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채택했다. 학년에서 반복하면서 가르칠 수 있는 내용도 있었다. 그래도 중등연구자가 만든 내용이라 너무 어렵고, 아이들이 쓰지 않는 추상어와 한자말이 많아 내용을 이해하는 것조차 벅찼다.

 지금은 종영된 교육방송의 <부모의 시간>이란 프로그램에서 2003년 6월 6일 초등학교 1학년 국어에 대한 토론이 있었습니다. 1학년 국어교과서가 너무 어렵다는 학부모들의 원성이 자자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김자영 아나운서가 교육부에서 나온 장학관에게 "한글을 배워와야 하나요?" 하고 묻자 7차 국어교과서의 경우 한글을 안 배우고 들어와도 4주만 지나면 기초적인 내용은 익힐 수 있다는 대답을 하였습니다.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말입니다.
 지금은 종영된 교육방송의 <부모의 시간>이란 프로그램에서 2003년 6월 6일 초등학교 1학년 국어에 대한 토론이 있었습니다. 1학년 국어교과서가 너무 어렵다는 학부모들의 원성이 자자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김자영 아나운서가 교육부에서 나온 장학관에게 "한글을 배워와야 하나요?" 하고 묻자 7차 국어교과서의 경우 한글을 안 배우고 들어와도 4주만 지나면 기초적인 내용은 익힐 수 있다는 대답을 하였습니다.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말입니다.
ⓒ EBS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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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개정교육과정은 텍스트(담화, 글)중심주의를 내세워서 기초적인 기본기능을 익히기보다 학생들이 완성된 텍스트를 가지고 국어 교육의 기능을 획득하고 실생활에서 활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텍스트 종류는 1학년은 낱말과 문장, 일기, 동화,  2학년은 글, 이야기, 편지 등인데, 텍스트의 성격까지 인상적인 내용이 담긴 것, 감정을 표현하는 것으로 제시되어 있어 교과서에서 학생 발달 수준을 고려할 여지가 거의 없다. 단원별로 텍스트 종류가 계속 달라져 교사들은 진도 나가기 급급하고 아이들과 충분히 소통하기가 어렵다.

결국 가, 나, 다, 라부터 배워 같은 글자로 시작되는 말을 찾고 확장해가는 과정, 아이들이 말하는 것을 글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기쁨을 느낄 시간, 소리 나는 대로 쓰다가 점차 문법을 따져 쓰는 과정 등이 실제 수업시간에는 생략되어 버린다. 여기에 형식적으로 완성된 글을 읽고 쓰게 하려니 교사들이나 아이들이나 국어 시간이 너무 버겁다. 오죽하면 1학년 1학기 국어책이 제일 어렵다는 소리까지 나올까? 이런 책을 본 학부모들은 두말할 것도 없이 사교육시장으로 아이를 맡기고 일기쓰기, 독서장쓰기까지 훈련시켜야 아이를 안심하고 보내게 된다.

부족한 한글교육 채워준 우리들은 1학년, 내년부터 사라질 위기

이런 사정을 아는 교사들은 입학 초기 적응과정인 <우리들은 1학년>을 하는 동안 꾸준히 한글교육 기초를 닦아 나갔다. <우리들은 1학년>은 입학식을 하고 80시간 동안 하는 교과인데, 유치원과 초등학교 생활의 가교 역할을 해왔다.

우리들은 1학년 내용
17. 재미있는 글자 공부 학습 지도 계획 (6시간)
- 낱자 익히기 -

숨은 낱자 찾기(1) - 낱자 모양 그려보기, 자음자의 모양을 알고 만들어 보기
숨은 낱자 찾기(2) - 모음자의 모양을 알고 만들어 보기, 낱자 찾아 색칠하기
글자 나라(1) - 자음자의 쓰는 순서와 방법 익히기, 자음자를 필순에 맞게 쓰기
글자 나라(2) - 모음자의 쓰는 순서와 방법 익히기, 모음자를 필순에 맞게 쓰기,
                    내 이름과 학교 이름을 바르게 쓰기

특히 이 시간은 공교육의 시작 단계에서 아이들간의 격차를 조정하는 역할을 해왔다. 공립유치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우리 나라 상황에서 어린이집, 사립유치원, 공립유치원의 격차, 한글을 배우고 안 배운 격차, 가정에서 언어학습이 충분하고 불충분한 격차가 매우 크다. 그래서 많은 교사들이 이 기간에 선그리기부터 시작해 낱자쓰기, 낱말놀이, 수 놀이 등을 통해 아이들간의 격차를 줄이고 학습의 기초를 닦는 시간으로 활용해왔다. 특히 2007개정교육과정에서는 한글교육 시간을 6시간 배정하여 이런 활동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초등학교에서 1, 2학년이 배우는 교과와 시간수를 나타낸 편제표입니다. 2007개정교육과정에서는 우리들은 1학년이 정식 교과이지만, 2009개정교육과정에서는 교과수를 줄여 학습부담을 줄인다는 명분으로 편제표에서 사라졌습니다. 대신 창의적체험활동에 집어넣어 학교장 재량으로 실시하라고 하였습니다.
 초등학교에서 1, 2학년이 배우는 교과와 시간수를 나타낸 편제표입니다. 2007개정교육과정에서는 우리들은 1학년이 정식 교과이지만, 2009개정교육과정에서는 교과수를 줄여 학습부담을 줄인다는 명분으로 편제표에서 사라졌습니다. 대신 창의적체험활동에 집어넣어 학교장 재량으로 실시하라고 하였습니다.
ⓒ 신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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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내년부터는 시행되는 2009개정교육과정 때문에 이 시간마저 확보하기가 어려워졌다. <우리들은 1학년 내용>이 다른 통합교과와 중복된다며 교과지위를 박탈하고, 창의적 체험활동시간에 학교별로 알아서 편성하라고 한 것이다. 이는 국가가 유치원과 초등교육의 연계성을 스스로 부정한 것일 뿐만 아니라 입학적응 활동 기간의 중요성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만약 학교에서 이 시간을 운영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한글을 배우고 익히는 시간도 더 줄어드니 사교육을 받지 않는 아이들은 더 힘들어지게 생겼다. 4학년까지 나온 교과서를 보면 내용이 너무 어려워 국어를 더 잘 배워야 할텐데 오히려 거꾸로이다.

내년부터 국어책 2권으로 통합, 내용 믿어도 되나요?

내년에는 듣기․말하기, 읽기, 쓰기 3권이던 국어책이 2권으로 변하는 것도 큰 변수이다. 올해 3학년 국어를 내용 편집없이 두 권을 붙여서 책만 두껍고 수업하는 데 방해가 되었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1, 2학년은 교과서 내용까지 합쳐서 만든다고 한다.

 올해 나온 3학년 듣기말하기쓰기교과서는 겉으로는 1권이지만, 속을 펼쳐보면 앞은 듣기 말하기, 주황색 표지를 두고 쓰기를 묶어 책만 300여쪽으로 두꺼워졌습니다. 국어교육과정을 손보지 않은 채 교과서만 2권으로 묶어 졸속행정의 표본으로 불릴 정도입니다.
 올해 나온 3학년 듣기말하기쓰기교과서는 겉으로는 1권이지만, 속을 펼쳐보면 앞은 듣기 말하기, 주황색 표지를 두고 쓰기를 묶어 책만 300여쪽으로 두꺼워졌습니다. 국어교육과정을 손보지 않은 채 교과서만 2권으로 묶어 졸속행정의 표본으로 불릴 정도입니다.
ⓒ 신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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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국어교육과정 자체가 저학년 발달수준이나 한글 교육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만들어져 있고 3권으로 나뉘어 개발된 교과서를 2권으로 합친다고 과연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었을지 의문이 든다. 무리하게 합치려다 교과서 내용이 기형적으로 변해 학생들 수업만 더 어려워지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된다. 

2009개정교육과정 총론
 ⑴ 학교는 1학년 학생들의 입학 초기 적응 교육을 위해 창의적 체험활동의 시수를 활용하여 자율적으로 입학 초기 적응 프로그램 등을 편성․운영할 수 있다.
⑶ 각 교과의 기초적, 기본적 요소들이 체계적으로 학습되도록 계획하고, 정확한 국어사용 능력을 신장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특히, 기초적 국어사용 능력과 수리력이 부족한 학생들을 위해 별도의 프로그램을 편성․운영할 수 있다.
( 초등학교 교육과정 편성 운영 중점 중에서)

이렇게 국가교육과정대로만 배우면 거의 모든 아이들이 부진아가 되게 생겼는데, 교과부는 기초교육을 제대로 할 생각은 하지 않고 국어, 수학 부진아프로그램을 운영하라고 학교에 책임을 돌린다. 결국 입학초부터 아이를 부진아로 만들지 않으려면 학부모가 전적으로 한글교육을 책임져야 할 상황이다. 그래놓고도 교과부는 2009개정교육과정이 창의적이고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만족도를 높여준다고 홍보하고 있다. 기본적인 한글교육도 제대로 못해주면서 대체 무얼 만족시킨다는 것일까?

덧붙이는 글 | 우리들은 1학년은 시도교육청별로 교재를 만드는 데 내용수준도 문제지만 풀칠도 제대로 못해 뜯어지기도 하는 등 지역별로 편차가 컸습니다. 국가가 입학적응기 활동이나 기초문식성 교육에 대해 기본적인 원칙이나 지원책도 없이 무리하게 학교에 책임을 떠넘기는 건 아닌지 우려가 됩니다. 2009개정교육과정이 학생들의 학습결손이나 사교육비 증가로 이어지지 않도록 무리한 개정작업을 중단하고, 제대로 된 정책연구부터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초등교과서#한글교육#우리들은 1학년#2009개정교육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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