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음흉하게 꿈꾸는 덱스터> 겉표지
<음흉하게 꿈꾸는 덱스터>겉표지 ⓒ 비채
'연쇄살인이 무조건 나쁘기만 할까?'

작가 제프 린제이는 어느날 대화 도중에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이런 물음에는 뭐라고 대답하면 좋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인은 나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냥 살인도 아니고 '연쇄살인이 나쁠까'라고 질문을 던지다니. 어찌보면 참신한 생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시쳇말로 홀딱 깨는 이야기다.

하지만 상상력이 풍부한 작가라면 이런 발상에서 일련의 흥미로운 연쇄살인, 그리고 색다른 개성의 연쇄살인범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제프 린제이는 자신의 첫번째 작품 <음흉하게 꿈꾸는 덱스터>에서 이런 연쇄살인범을 창조한다.

주인공인 덱스터 모건은 마이애미 경찰서에서 혈흔분석가로 근무하고 있다. 그는 범죄현장에서 발견되는 혈흔으로 범인을 추적하면서,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연쇄살인범으로 돌변한다.

하이드로 변해버린 지킬박사, 보름달이 뜨면 늑대인간으로 변하던 '나자리노'처럼 덱스터도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덱스터와 다른 연쇄살인범들 사이에는 차이점이 있다. 덱스터는 법으로 처벌받지 않은 연쇄살인범들을 노린다는 점이다. 그들을 정식으로 체포해서 법정에 세우기보다는 자신이 직접 제거하기로 결정한 모양이다. 덱스터에게 그 연쇄살인범들은 죽어 마땅한 사람들인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덱스터가 불타오르는 정의감만으로 살인을 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연쇄살인범들이 그렇듯이 덱스터도 살인 그 자체를 즐기는 면이 있다. 이런 점들이 기존 연쇄살인범과 덱스터의 공통점과 차이점이다. 연쇄살인범을 사냥하는 연쇄살인범이 주인공인 범죄소설, 제프 린제이는 연쇄살인범이 등장하는 소설의 패턴을 과감하고도 신선하게 뒤집어 버린 것이다.

매춘부들을 대상으로 발생한 연쇄살인

경찰서에서 근무하지만 덱스터는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어떤 상관은 대놓고 덱스터를 가리켜서 정신나간 사람 취급한다. 덱스터는 어린 시절부터 주위와 잘 어울리지 못했다. 애완동물도 그를 싫어해서 강아지나 거북이조차도 기를 수가 없었다. 사람이 살면서 꼭 강아지, 거북이와 잘 어울릴 필요는 없겠지만 이런 일화는 덱스터의 내면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소중한 뭔가가 결여됐거나 왜곡돼버린 내면을.

덱스터는 아주 어렸을 때 양부모에게 입양되었고 지금 그 양부모는 모두 돌아갔다. 결혼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족이라고는 양부모의 친딸, 그러니까 피가 다른 여동생 데보라 모건 뿐이다. 데보라도 덱스터와 같은 경찰서에서 근무 중이다. 피를 나눈 진정한 혈육은 아니지만 데보라와 덱스터는 서로를 아끼고 사랑한다.

데보라는 살인계 형사가 되려고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그녀의 빼어난 외모 때문인지, 데보라는 매춘 담당 비밀수사를 하고 있다. 말이 좋아서 비밀수사지 하는 일이라고는 함정수사의 미끼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 데보라에게 승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찾아온다. 관할구역 안에서 매춘부들을 상대로 연쇄살인이 시작된 것이다. 살인범은 희생자를 죽여서 시체를 토막낸 후에 깨끗하게 포장해서 쓰레기봉투 안에 담아둔다. 특이하게도 이 시신에는 혈흔이 하나도 없다. 덱스터도 현장에 도착하지만 혈흔이 없기 때문에 할 일이 없어진다.

대신에 살인계로 발령받고 싶은 데보라가 덱스터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덱스터는 비록 형사가 아니지만 연쇄살인을 해결하는데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 왔다. 데보라는 그 능력을 이용해서 승진하려고 하는 것이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데보라는 수사를 지휘하는 미모의 여성상관에게 계속 무시당하고, 덱스터는 연쇄살인 속에서 자신의 어두운 내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연쇄살인범과 덱스터는 어떤 관계일까

치밀한 계획을 세운 뒤의 살인이든 우발적이고 충동적인 살인이든,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연쇄살인은 말할 것도 없겠다. 죽이는 것도 어려운데 그 뒤에 시체를 토막내고 혈흔을 모두 제거해서 쓰레기 봉투에 담는 것은 제정신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닐 것이다.

덱스터는 사건을 수사하면서 악몽을 꾼다. 자신이 범죄현장에 있는 듯한 꿈이다. 꿈에서 깨고 새롭게 발견된 현장으로 달려가면 마치 자신이 저지른 범행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몽유병 환자가 자면서 걸어다니는 것이 가능하다면, 자면서 살인을 하고 시신을 처리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덱스터는 '내가 미쳤는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기억을 더듬어 과거로 과거로 내려간다. 완벽한 경관이었던 양아버지, 그와 단 둘이 캠핑을 가서 눈부시게 빛나는 별들을 바라보며 나누었던 이야기. 어쩌면 덱스터의 운명은 그때 결정되었을지도 모른다.

심리학자들은 연쇄살인범들에게 어린시절의 트라우마가 있다고 말한다. 부모에게 학대당하거나 또는 부모가 학대당하는 모습을 주기적으로 보며 성장한다. 친구나 주위사람들에게 집단 따돌림을 당하기도 한다. 유형 또는 무형의 폭력을 계속 접하며 자라온 것이다. 연쇄살인범들은 어린 시절의 어두운 기억을 부정하려고 하지만 그 기억은 내면 한쪽에 자리잡은채 조금씩 힘을 키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연쇄살인이라는 끔찍한 방법으로 세상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어린 시절의 피해자는 세월이 지나면 힘을 키워서 가해자로 돌변한다. 덱스터도 자신의 과거와 마주한다. 25년 동안 자신의 안에서 숨죽이며 기다리던 폭풍이 드디어 울부짖기 시작한 것이다. <음흉하게 꿈꾸는 덱스터>는 '덱스터 시리즈'의 첫번째 편이다. 덱스터가 과연 과거의 트라우마를 어떻게 벗어날지 궁금해진다. 어린 시절의 깊은 상처는 성인이 되서도 좀처럼 아물지 않는 법이다.

덧붙이는 글 | <음흉하게 꿈꾸는 덱스터> 제프 린제이 지음 / 최필원 옮김. 비채 펴냄.



음흉하게 꿈꾸는 덱스터

제프 린제이 지음, 최필원 옮김, 비채(2006)


#덱스터#연쇄살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