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친구로 보이는 떠꺼머리총각들이 나무를 한 후 아직 오지 않은 친구를 기다리며 둘러 앉아 놀이를 하는 모습을 그린 '고누놀이'란 제목의 풍속도다.
김홍도의 <단원풍속도첩>(보물 제 527호)에 실려 있다. <단원풍속도첩>에 수록된 풍속도는 모두 25점, 화첩 속 그림들은 서민들의 생활을 잘 표현하고 있어서 당시 시대상을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외에도 '씨름', '서당', '새참' 등이 수록되어 있다.
다리를 모아 쥐고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은 총각은 이미 한판을 이기고 구경꾼으로 물러난 것 같다. 구경꾼의 여유가 느껴지니 말이다. 소매를 벗어 허리까지 내린 총각과 앞섶을 풀어헤친 총각, 옷을 벗으려는데 제 차례가 되어 마저 벗지도 못하고 손을 모아 막 무언가를 던진 것 같은 총각의 얼굴에 놀이를 하는 즐거움이 가득해 보인다.
반면, 이제 막 도착하기 직전인, 나뭇짐을 지고 모퉁이를 돌고 있는 총각은 좀 힘들어 보인다. '아마도 가장 늦었기 때문 아닐까? 어서 빨리 지게를 부리고 놀고 싶은데, 나무가 무거워 걸음이 쉽지 않기 때문에 그런 걸까?' 그냥 스치듯 볼 때와 이처럼 찬찬하게 뜯어볼 때 그림은 많이 달라 보인다. 놀이를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생생해 그림을 보는 것이 즐겁다.
이 그림에는 '고누놀이'란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누가 이름을 붙였을까요? 물론 김홍도는 아닙니다. 김홍도가 그림을 그릴 당시에는 제목이 없었거든요. 일제강점기에 '무라야마 지준'이라는 일본 학자가 쓴 <조선의 향토오락>이라는 책에서 '고누놀이'란 제목으로 소개된 것이 처음입니다. 이 책은 1936년에 발간되었는데 당시 우리나라에 있던 놀이, 민간신앙, 민속예술, 풍속 등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소개된 놀이는 모두 6400여 가지인데 그중 1300가지는 놀이방법까지 설명해 놓았습니다. 여기에 이 그림이 제목과 함께 나와 있어서 이후 '고누놀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책에서이 책을 읽기 전까지 '고누놀이'란 제목이 붙어있으니 총각들이 하고 있는 것은 당연히 고누놀이려니 싶었다. 그런데 사실 고누놀이보다 윷놀이로 보였었다. 때문에 아주 잠깐, 윷놀이와 고누놀이의 연관성을 궁금해 한 적도 있다. 이 그림은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고누놀이'란 제목으로 실려 있다. 때문에 많이 유명하다. 아마 나처럼 이 그림을 보며 고누놀이가 아닌 윷놀이 같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하지만 제목을 그리 붙여놨으니 마지못해 그런가보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으리라. 하지만 이처럼 그림을 그린 김홍도가 제목을 붙인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제목을 그리 정한 거라면 김홍도가 그린 것은 고누놀이가 아니라 윷놀이 아닐까?
고누는 판위의 말을 움직여 상대방을 꼼짝 못하게 가두면 이기는 놀이이다. 땅바닥에 판을 그린 후 돌멩이나 나뭇가지를 주워 말로 쓰고 놀만큼 간단한 놀이라 윷놀이와 함께 옛날 사람들이 좋아했단다. 이처럼 지게를 부려놓고 아직 오지 않은 친구를 기다리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땀을 식히며 부담 없이 놀 수 있을 정도로 즐겼던 놀이란다.
우물고누, 곤질고누, 네줄고누, 밭고누, 왕고누, 참고누, 사발고무....이처럼 종류도 많다. 아무 모양이나 본떠 놀이판을 그린 후 이름을 붙이면 고누가 되었기 때문이다.
위는 진짜 우물고누판이고, 아래는 우리들에게도 낯익은 윷판이다. 어쨌거나 한눈에 봐도 '고누놀이'란 그림 속 놀이판은 윷판에 가깝다. 고누놀이는 5개의 목(目) 중 4개의 목에 색깔이 다른 말 2개씩이 각각 놓여 있다. 하지만 그림 속 놀이판에는 원안에 작은 조각 4개가 있을 뿐, 언뜻 20~30개는 될 것 같은 목에는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오른쪽 위에 '늇뛰고'라고 쓴 이 그림은 김홍도보다 100년 뒤에 살았던 김준근의 윷놀이 풍경이다. 김준근은 당시 사람들의 생활과 풍속을 잘 알 수 수많은 그림들을 그려 이처럼 그림마다 이름을 모두 붙여놨는데, 이 그림의 '늇뛰고'는 '늇뛰기'와 함께 당시 윷놀이를 부르던 말이란다. 참고로, 김준근의 이와 같은 풍속도는 현재 1000점 넘게 남아 있단다.
여하간 김홍도의 그림 속 놀이판과 김준군의 늇뛰고 그림 속 놀이판, 우리에게도 낯익은 윷판은 거의 같아 보인다. 그러니 그동안 몇몇 학자들이 "고누놀이가 아니라 윷놀이다. 그러니 이제라도 일본 학자가 붙인 이름을 생각 없이 그대로 쓸 것이 아니라 '윷놀이'라고 바꿔 불러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누놀이로 불리고 있음이 아쉽다. 이제라도 윷놀이로 바꿔 불러야 하지 않을까.
혹자들은, 고루놀이란 그림의 놀이판 안의 작은 것들이 윷가락으로 보이기도 하나 오늘날의 윷가락에 비해 너무나 작아 윷이 아닐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단다. 그런데 예전에는 작은 고동껍데기로도 윷가락을 만들어 놀았단다. 이처럼 작은 윷을 밤윷이라 했는데, 콩 조각으로도 윷놀이를 했다나. 콩으로 노는 윷은 콩윷이란다. 윷놀이가 얼마나 좋았으면 콩 조각으로까지 놀았을까?
그림 제목이 고누놀이니 당연히 고누놀이려니 하면서 그림을 스치듯 보다가, 책을 통해 이처럼 그림을 찬찬히 살펴보니 그림은 예전보다 훨씬 친근하고 생생하게 보인다. 이제 막 윷을 던진 듯 한 총각의 손 모양새가 훨씬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다음 차례는 앞섶을 풀어헤친 총각 아닐까? 그림은 예전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들려주고 있는 것 같다.
"알고 나면 우리 옛 그림만큼 재미있는 그림도 없습니다. 실감 나는 풍속화, 사진 같은 초상화, 사랑스런 동물화 등을 보면 볼수록 감탄이 절로 납니다. 게다가 알쏭달쏭한 수수께끼가 숨어있는 그림도 많습니다. 수수께끼? 그건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인도의 타지마할 같은 곳에만 있는 게 아니냐고요? 아닙니다. 우리 옛 그림에도 이에 버금가는 엄청난 수수께끼가 숨어 있습니다. 그 비밀을 알고 나면 우리 옛 그림의 매력에 또 한 번 푹 빠지게 될 것입니다."-저자의 말 중에서
<우리 옛 그림의 수수께끼>(아트 북스 펴냄)는 김홍도의 '고누놀이'나 윤두서의 '자화상, 신윤복의 '미인도'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우리 그림 속 숨겨진 이야기들이나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들려줌으로써 이처럼 우리 그림들을 훨씬 친근하고 쉽게 보게 하는 책이다.
김홍도의 풍속화 속 사람들의 어긋난 손 모양, 조영석이 자신의 화첩에 사향노루의 배꼽을 뜻하는 <사제첩>이라 이름 짓고 '절대로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말라'고 기록해 둔 사연, 드라마나 소설에서 여자로 그려진 신윤복의 진실, 초정밀 카메라만큼 정밀한 우리 초상화의 세계, 징그러운 쥐와 고슴도치 그림에 얽힌 수수께끼 등을 흥미진진하게 들려준다.
예전에 또 다른 책에서 만난 적이 있는 '폭탄도 비켜갈 만큼 신비로운 그림'인 김정희의 <세한도>에 얽힌 사연은 다시 읽어도 감동스럽다.
책을 통해 만나는 그림 대부분은 낯익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직접 본 그림 몇 점도 책에서 만났는데, 사실 이제까지 조상들이 남긴 흔적 혹은 문화재로만 만났던 그림들인지라 그다지 친근하게 와 닿지 못했었다.
하지만 책을 통해 다시 만나는 그림들은 훨씬 친근하고 흥미롭다. 그림들이 다시 보인다고 할까. 그리하여 책장을 쉽게 넘기지 못하고 그림 구석구석을 보고 또 봤다. 실제 크기의 그림들을 만나면 감동은 얼마나 크고 깊으랴. 조만간 시간을 내 그림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 그림들을 다시 만나보고 싶다. 이제까지 스치듯 봤던 그 그림들을 말이다.
이야기는 모두 열여덟 꼭지이다.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 청소년, 어른까지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내용들이다. 또 어떤 이야기들이 있을까?
▲천하의 김홍도도 실수를 했다?▲최북은 마흔 아홉 살에 죽지 않았다?▲신윤복이 그린 <미인도>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일까?▲우리나라에 없던 원숭이를 옛사람들이 많이 그린 이유는?▲왜 곰보자국과 뻐드렁니까지 그렸을까?▲폭탄도 비켜갈 만큼 신비스러운 그림이 있다?▲<이재 초상>과 <이채 초상>의 주인공은 한 사람이다? ▲<몽유도원도일까>?<몽도원도>일까? ▲김홍도는 왜 수학자가 되었을까? ▲조영석의 <사제첩>, 왜 남에게 보여주지 말라고 했을까?
덧붙이는 글 | <우리 옛 그림의 수수께끼>|최석조 (지은이)|아트북스|2010-10-08 |정가 : 11,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