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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가지라고 그냥 가져갔다는 큰 코 다친다.
무가지라고 그냥 가져갔다는 큰 코 다친다. ⓒ 구자민

공짜를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으랴. 출퇴근길 지하철 입구에 수북히 쌓여있는 무료 신문, 길거리서 나눠주는 휴지나 볼펜, 대형마트의 음식매장의 시식코너, 다 공짜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나. 무료 신문은 원하는만큼 가져가도 되는 걸까. 마트 시식코너에서 배가 부르도록 집어먹어도 될까. 판촉용 볼펜은 집어가도 절도죄가 되지 않을까. 그 답을 찾기 위해 형사 법정을 들여다봤다. 

절도죄로 법정에 선 무료 신문과 판촉물

[사례 1] 남안노(가명)씨는 아침 일찍 무료신문인 <개미신문>을 가져가려고 동네 가판대를 찾았다. 남씨는 가판대에서 두손으로 안 듯이 신문을 집어들었다. 보기에도 두툼한 신문의 총 부수는 25부였다. 이를 지켜보던 개미신문사의 직원이 기다렸다는 듯 남씨의 앞을 가로막았다.

"아저씨, 신문은 1부씩만 가져가셔야죠? 지난 번에도 분명히 경고했을 텐데요. 이건 도둑질이라고요."

남씨도 이에 질세라 목소리를 높였다.

"이봐요, 무료신문 가져가는데 1부건 10부건 당신이 무슨 상관이야. 이건 무료잖아."

두사람 사이의 다툼은 언쟁으로 끝나지 않았고 형사 법정까지 가게 되었다. 무료신문도 절도의 대상이 될까. 

남씨의 행위가 죄가 되는지 우선 조문을 따져봐야겠다. 절도죄의 조문이다.

형법 329조
타인의 재물을 절취한 자는 6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법을 적용하는 데 유의할 부분은 두가지다. 첫째 무료신문이 '타인의 재물'에 해당되는지다. 둘째 남씨가 신문을 가져간 행위를 '절취'(법률상 남의 물건을 점유자의 의사에 반하여 자기의 점유로 옮기는 것으로 해석)로 볼 수 있는지다.

여기에 더해 남씨의 의사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절도죄는, 주관적으로 남의 물건을 훔친다는 인식(고의)이나 남의 물건을 자기 것처럼 이용하고 처분할 의사(불법영득의 의사)가 있어야 성립한다는 것이 판례의 입장이다.

법원 "무료신문도 25부 가져갔다면 절도"

 무가지를 나눠주는 한 배포원 모습.
무가지를 나눠주는 한 배포원 모습. ⓒ 구자민

법원은 무료신문도 타인의 재물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무료신문이라도 신문사가 소유권을 포기하지는 않았다고 본 것이다. 법원은 ▲ 신문사가 광고수익 등 상업적 목적으로 비용을 들여 신문을 발행한 점 ▲ 구독자에게 1부씩 골고루 배포되도록 직접 관리한 점 ▲ 무료배포는 구독자가 정보취득 목적으로 최소한의 수량을 가져가는 것을 전제로 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남씨는 절도의 의사(고의)는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전에도 직원으로부터 제지를 받은 사실이 있는데도 다시 25부를 가져간 점에 비추어볼 때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범주를 넘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고 할 것이므로 고의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남씨에게 1, 2심 법원은 벌금 50만 원을 내렸고, 지난 2월 대법원도 같은 결론을 확정했다. 무료신문도 돈만 안 받을 뿐이지 완전 공짜는 아닌가 보다. 몇 부가 절도인지는 딱 잘라 말할 순 없겠으나 무료신문을 뭉텅이로 들고 가다간 불상사를 겪을 수도 있다.

[사례 2] "화장품 사시고, 선물 무료로 받아가세요."

A 화장품 판촉직원 도운미(여)씨는 한 매장앞에서 판촉용 화장솔 겸용 볼펜을 나눠주고 있었다. 탁자에는 볼펜이 잔뜩 쌓여 있었다. 길을 지나가던 우선조(가명. 50대 남)씨는 무료로 나눠주는 줄 알고 그 중 1개를 집어 들고 갔다.

그러자 도씨가 따라오면서 "그건 화장품 사는 사람에게만 주는 선물이니 돌려달라"고 따졌다. 우씨는 "나도 화장품 자주 사는 사람"이라고 했는데도 도씨는 막무가내였다. 자존심이 상하고 화가 난 우씨는 볼펜을 집어던지고선 도씨의 머리와 어깨를 주먹으로 때리고 말았다.       

도씨는 전치 2주의 진단서를 끊어서 우씨를 고소했다. 우씨는 상해죄 처벌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런데 검찰은 우씨를 절도죄까지 묶어 함께 기소했다. 졸지에 볼펜 절도범이 될 위기에 처한 우씨는 어찌 되었을까. 

법원의 판결은 엇갈렸다. 먼저 1심 법원(수원지법 평택지원)은 절도로 보지 않았다. 일반인의 입장에서 볼펜을 무료로 나눠주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고, 항의를 받은 우씨가 어쨌거나 볼펜을 돌려주었던 점을 볼 때 절도의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항소심인 수원지법은 다른 입장이었다. 수원지법은 "판촉물은 고객이 될 사람에게 선별적으로 나눠주는 게 보통이고 양해없이 가져가면 절도죄에 해당한다"며 "도씨의 양해없이 볼펜을 가져갈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상태였으며, 도씨가 바로 항의한 점 등을 종합해 보면 우씨에게 절도의 죄책을 묻기에 충분하다"고 판시했다.  

"판촉용 볼펜, 그냥 주는 줄 알았다니까"

우씨는 억울하다며 상고했다. 대법원은 다시 우씨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 탁자에 쌓아둔 볼펜 1개를 그냥 집어가도 괜찮다고 여겼을 가능성이 충분하고 ▲ 볼펜의 시가가 2천원에 불과하여 기업들이 통상 무료로 나눠주는 판촉물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점 ▲ 우씨로서는 자신이 잠재적 고객으로 가져갈 자격이 있다는 인식으로 집어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볼 때 절도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사건은 다시 항소심 심리를 거쳐 대법원으로 올라왔는데, 지난달 28일 대법원은 상해죄만 인정하고, 절도죄에 대해선 무죄를 확정했다.  
 
판결의 결론을 정리해보면 이렇다. '우씨는 가게 앞에 쌓여있는 볼펜을 보고 무료인 줄 알고 가져갔을 뿐 훔친 것이 아니고 훔칠 의사도 없었다.'

우씨는 가슴을 쓸어내렸을 것이다. 1년 반 동안 송사에 휘말리면서 어쩌면 다시는 판촉물엔 손을 대지 않겠다고 다짐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례 3] 공유(가명)씨는 자신이 좋아하는 B영화의 주제곡을 블로그에 올렸다. 블로그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게 파일 상태로 만들었다. 그는 돈을 받지도 않았고 단지 사람들과 자료를 공유하고 싶었을 뿐이다.

이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1년뒤 경찰서에서 출석통지서가 날라왔다. 놀란 가슴을 진정하고 전화해 보니 경찰은 "저작권법 위반으로 고소가 들어와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할 게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공씨는 지난달 법원으로부터 벌금 30만 원형을 선고받았다. 저작권법 136조 권리의 침해죄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이다. 무료로 나눠주는 것이 네티즌 사이에서는 선행일지 몰라도 저작권자에게는 권리 침해로 다가올 수 있는 것이다. 벌금형을 받은 후에도 또다시 손해배상을 해주는 경우도 생긴다.

참고로, 블로그나 인터넷 카페에 노래파일을 올리는 것뿐 아니라 스트리밍 방식으로 노래를 들려주거나 가사를 게시하는 것만으로도 분쟁에 휘말릴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좋아하는 노래 파일, 무료로 나눠줬다가

공짜가 법정으로 오게 된 몇가지 사례를 소개했는데 무료라고 무턱대고 좋아할 게 못된다는 말을 하고 싶다.

솔직히 자본주의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나. 무료신문은 돈만 내지 않을 뿐이지 엄청난 광고를 봐주는 방식으로 비용을 대신하고, 공짜폰은 사용 요금이나 의무 사용기간으로 대가를 치르는 셈이다. 마트 시식코너도 물건값에 다 포함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무료는 하나의 상술일 뿐이다.

여담인데 마트 시식코너에서 음식을 많이 집어먹었다고 재판을 받은 사람은 아직 못 봤다. 하지만 무료신문의 사례를 비춰 보면 이 경우도 절도죄가 될 소지가 다분하다. 불미스런 일을 겪지 않으려면 시식도 적당히 해야 하나.

덧붙이는 글 | 저작권과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기자가 쓴 책(<생활법률상식사전>, 위즈덤하우스)이나 기자의 <오마이뉴스>연재기사를 참고하기 바란다.

저작권 기사 1. 나는 오늘 저작권법 몇개나 어겼을까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213537&PAGE_CD=N0550
저작권 기사 2. 오세훈 나경원도 어길 수 밖에 없는 법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216299&PAGE_CD=N0550



#무료신문#공짜#저작권#판촉물#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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