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분열되면, 한반도 통일이 수월해질 것"이라면서 "중국이 혼란스러워지면, 한민족이 웅지를 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주변 지역이 분열되거나 혼란스러워지면, 한민족이 이득을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도리어 화가 될 수도 있다. KBS1 드라마 <근초고왕>에 등장하는 고구려 고국원왕의 사례에서 그런 메시지를 얻을 수 있다.
중국대륙의 분열, 한반도에 도움 됐을까광개토대왕의 할아버지인 고국원왕이 국정을 인수한 시점은 미천왕 32년 2월(양력 331.3.25~4.23)이었다. 5개의 서북방 유목민족들이 중국 내부에 마구 난입하여 총 16개의 국가를 세운 5호 16국 시대가 서기 304년에 개막됐으니, 그로부터 27년 뒤에 등극한 고국원왕은 중국대륙이 한창 분열의 소용돌이에 휩싸였을 때 왕위에 오른 셈이다.
고국원왕(재위 331~371년)이 국정을 운영한 기간은 무려 40년이다. 따라서 중국대륙이 5호 16국의 소용돌이에 휘말렸을 때 고구려의 상황이 어떠했느냐를 파악하는 데 있어, 고국원왕 시대는 아주 좋은 사례 중 하나가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주변 지역의 분열이나 혼란이 한민족에게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경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훌륭한 사례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중국대륙이 분열의 시대에 돌입한 이후에 일부 고구려인들은 오늘날의 일부 한국인들과 마찬가지로 "중국대륙의 분열이 고구려에게 득이 될 것"이라고들 말했을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중국대륙의 분열을 틈타 도리어 고구려를 삼키려고 하는 세력도 있었다는 점이다. 고국원왕 시대의 북중국에 그런 세력이 존재하고 있었다.
중국대륙의 분열을 틈타 북경을 포함한 북중국의 일부를 점유한 전연(前燕)은 고구려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었고, 전연과 고구려의 주변에는 우문씨(宇文氏)라는 정치세력이 활동하고 있었다. 전연은 북방 유목민족인 선비족이 세운 나라였다. 전연 임금인 모용황과 장군인 모용한의 대화를 들어보면, 중국의 분열을 틈타 도리어 고구려 점령을 꿈꾸는 기운도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의 대화 내용이 중국측 사료인 사마광의 <자치통감> 권97에 기록되어 있다. 대화가 오고간 시점은 고국원왕 12년 10월(342.11.14~12.13)이고, 장소는 전연의 도읍인 용성(지금의 요녕성 조양시)이었다.
장군 모용한 : "고구려만 빼앗으면, 우문씨를 빼앗는 것은 손을 뒤집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두 나라가 평정되면 동해의 끝에서까지 이익을 취하게 될 것이고, 나라는 부유하고 군사는 강해져서 배후를 의식할 필요가 없어질 것이니, 그런 다음에 중원을 도모해볼 수 있습니다."임금 모용황 : "훌륭한 말이오!"장군 모용한의 전략을 종합하면, 고구려를 빼앗으면 우문씨를 빼앗을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배후에서 뒤통수를 맞을 염려 없이 남쪽으로 내려가 중국 정복사업을 본격화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임금 모용황은 주저하지 않고 이 전략을 쾌히 수용했다. '중국대륙의 분열은 우리에게 이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일부 고구려인들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그들은 혼란을 틈타 도리어 고구려를 멸망시킬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중국 혼란 틈타 고구려 정복에 나선 모용황그들은 이런 생각을 즉각 실천에 옮겼다. <삼국사기> '고국원왕 본기'에 의하면, 이미 3년 전에도 고구려를 침공하여 사실상의 항복을 받아낸 바 있는 모용황은 위의 대화가 있은 직후인 고국원왕 12년 11월(342.12.14~343.1.12)에 4만의 정예 병력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공하여 수도 환도성을 점령하는 데에 성공했다.
전연의 군사들은 고국원왕의 아버지인 미천왕의 시신을 파내고 고국원왕의 어머니를 포함한 남녀 5만 명을 사로잡은 뒤에 왕궁을 불사르고 환도성을 헐어버린 뒤에 돌아갔다. 전쟁에서 참패한 고구려는 고국원왕 13년 2월(343.3.13~4.10)부터 전연과 사대관계를 맺고 전연을 상국으로 떠받들었다.
이에 만족하지 않고 전연은 재차 고구려를 침공했다. 고국원왕 15년 10월(345.11.11~12.10)에도 고구려를 침공해서 일정 정도의 승리를 거둔 뒤에 되돌아간 것이다. 고구려가 전연의 압박에서 벗어난 것은 그로부터 25년 뒤인 고국원왕 40년(370), 전진(前秦)이 전연을 멸망시킨 뒤였다.
중국대륙이 한창 분열에 휩싸인 5호 16국 시대에 등극한 고국원왕은 40년이라는 집권기간 내내 대륙으로 뻗어나가기는커녕 도리어 중국 쪽에게 계속해서 시달리는 데에 그쳤다. 아버지의 시신을 빼앗기고 어머니를 포함한 5만 명의 고구려인들까지 빼앗겼으니, 중국의 분열이 당시의 고구려인들에게는 도리어 화가 되었던 것이다.
중국의 분열을 틈타 북경 지역까지 장악한 선비족 국가가 고구려 쪽으로 창끝을 돌렸으니, 평소 "중국대륙의 분열은 우리에게 이익"이라고 이야기했을 일부 고구려인들에게 이것이 얼마나 참담한 체험이 되었을지 짐작할 수 있다.
훗날 광개토대왕·장수왕 시대에는 고구려가 대륙의 분열을 적극 활용해서 국력을 떨쳤지만, 고구려 역사에서 그런 시기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었다. 실상은 고구려가 '기회'를 '호기'로 활용하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았던 것이다. 고구려가 대륙의 분열을 100% 활용했다면, 고구려가 5호 16국 시대 내내 중원(중국 중심부)을 코앞에 두고도 결국 장악하지 못한 일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고구려가 한민족 최대의 영역을 확보하는 역사적 대업을 성취한 것은 사실이지만, 고구려 군주들은 이와 같이 대륙의 분열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드라마 <근초고왕>에서 아주 위협적인 이미지를 풍기고 있는 고국원왕 역시 실제로는 그런 군주 중 하나에 불과했다.
중국의 분열이나 혼란이 한민족에게 '호기'가 될 수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은, 비단 고국원왕의 사례뿐만 아니라 그 외의 역사적 실례들을 통해서도 충분히 입증될 수 있다.
황폐해진 대륙 싸움에 신난 건 여진족과 일본중국대륙이 원나라-명나라 교체의 혼란에 빠져든 탓에 요동이 무주공산이 된 14세기 말에 그 무주공산을 차지한 것은 한민족이 아니라 여진족 군소집단들이었다. 당시의 한민족은 요동 정복에 필요한 군사력은 충분했을지라도 정도전과 이방원의 내부분열로 인해 외부로 뻗어나갈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명나라의 통치시스템이 붕괴되어 중국대륙이 혼란스럽던 17세기 중반에 동아시아 최강으로 떠오른 것은 한민족이 아니라 여진족(만주족)이었다. 인조 쿠데타(인조반정)에서 나타나듯이, 당시의 한민족은 내부분열을 겪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선을 상국으로 떠받들던 여진족은 이런 틈을 놓치지 않고 세계 제일의 경제대국인 청나라(1644~1918년)를 건설했다.
경제사 분야에서 세계적 명성을 자랑하는 안드레 군더 프랑크의 <리오리엔트>에 의하면, 청나라는 1800년 이전까지의 백 수십 년 동안 세계 무역흑자의 44%(추정치)를 흡수할 정도의 경제 강국이었다. 한민족이 오랑캐라고 무시했던 여진족이 중국대륙의 분열을 가장 잘 활용하여 'G1'이 되었던 것이다.
서양열강의 압박으로 중국이 쇠약해진 19세기 중반 이후에 중국의 혼란을 가장 잘 활용한 것은 이웃나라 조선이 아니라 섬나라 일본이었다. 종래에 동아시아의 변방에 불과했던 일본은 중국대륙의 혼란을 놓치지 않았으며, 그 틈을 타서 청일전쟁(1894년) 이후에는 동아시아 최강을 넘어 세계 최강을 향해 달려갔다.
기회를 기다리는 자의 최고 예의는 '준비하는 것'
고국원왕의 케이스를 포함해서 역대 사례들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중국대륙의 분열이나 혼란이 한민족에게 반드시 이익이 된 것만은 아니었다. 물론 그런 '기회'를 '호기'를 활용하여 국력을 팽창한 시기도 있었지만, 그런 경우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었다. '기회'가 도리어 '위기'가 된 경우도 적지 않았던 것이다. 일부 한국인들은 '중국이 분열되면 한민족에게 이로울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품고 있지만, 막상 역사적 사례들을 검토해보면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한민족이 주변지역의 분열이나 혼란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본질적 이유는 각각의 시기에 준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국원왕 때도 그렇고 14세기도 그렇고 17세기도 그렇고 19세기도 그렇고 한민족이 번번이 기회를 놓친 것은, 주변지역의 분열을 기다리기만 했을 뿐 그것을 제대로 준비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준비가 갖춰진 상태에서 맞이하는 주변지역의 분열은 '호기'가 될 수도 있지만, 준비 없이 맞이하는 그것은 도리어 '위기'가 될 수 있다. 전연 모용황의 사례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통제되지 않은 주변지역의 에너지가 어디로 어떻게 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주변지역이 통일되어 있을 때는 그 에너지가 중앙정부에 의해 잘 관리될 수 있지만, 주변지역이 분열되면 그 에너지를 관리할 단일 주체가 부재하게 되어 그것이 어디로 어떻게 튀어나갈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가장 큰 화를 입는 쪽은 '준비 없이' 옆에 서 있던 민족들이다.
이 세상에 가장 준비가 안 된 사람은, '나'의 분열을 극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남'과의 대결에 나서는 사람이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서 가장 준비가 안 된 민족은, '내부'의 분열을 극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외세'와의 대결에 나서는 민족이다.
내부의 분단도 극복하지 못한 민족이 주변지역의 분열이나 기다리고 있다면, 이것이 과연 '기다리는 자'의 예의라고 할 수 있을까. 기다리는 자가 갖춰야 할 최대의 예의는 열심히 차근차근 준비하는 것이 아닐까.
준비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주변국의 분열이나 혼란을 기대하는 민족에게는 '기회'가 '호기'가 아니라 도리어 '위기'가 되고 만다. 남의 분열이나 혼란을 기대하기에 앞서 내적 준비부터 서둘러야 한다는 메시지를, 드라마 <근초고왕> 속의 고국원왕을 바라보면서 한 번쯤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