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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희정 네덜란드 틸버그대학교 사회과학대 연구원
정희정 네덜란드 틸버그대학교 사회과학대 연구원 ⓒ 조명신

"네덜란드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시간을 단축할 수도 있다"

- 네덜란드는 근무형태가 다양한 것 같은데, 풀타임 외에 어떤 근무형태들이 있나?
"근무시간과 계약에 따른 근무형태가 있다. 보통 비정규직은 근로계약에 따른 근무형태다. 네덜란드에도 파견근로와 임시직이 있긴 하지만 우리보다 훨씬 (비율이) 낮다. 네덜란드 노동시장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은 파트타임이다. 네덜란드의 평균근로시간은 주 36시간이다. 36시간 미만이면 파트타임이다. 다른 국가는 36시간(풀타임) 외에 22시간 등으로 근로시간이 딱 정해져 있는데, 네덜란드에서는 30시간, 32시간, 34시간 등 상당히 유연화돼 있다."

- 파트타임이 크게 늘어난 이유는 무엇인가?
"정책적으로는 여성의 노동참여를 들 수 있다. 네덜란드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네덜란드병'을 앓았다. 질병급여, 조기퇴직 등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노동시장에서 벗어나 실업률이 높은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서도 임금상승이 상당히 높았다. 그러다 1982년 임금 동결과 노동시간 단축 등을 핵심으로 하는 바세나르협약이 이루어졌다. 이후 노동시간이 단축되는 추세를 보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1980년대부터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가 급격하게 늘어나는 추세를 보였다.

1980년대 네덜란드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여성고용률)은 35%였는데, 지금은 75%로 높아졌다. 덴마크나 스웨덴도 높지만 네덜란드는 유럽연합에서 최고 높은 나라 중 하나다. 네덜란드 여성들은 거의 대부분 파트타임으로 근무했다. 12시간 이하 근무하는 사람도 있고, 12~19시간, 20~27시간, 28~34시간 근무하는 여성이 늘었다. 네덜란드는 보수적인 국가이고, 다른 북유럽 국가들에 비해 보육시설 서비스가 충분하지 않다.

누군가는 집에 남아서 아이를 돌봐야 한다는 생각이 많은 편이다. 반면 여성들의 교육수준이 높아지면서 일하고 싶은 욕망도 늘어났다. 이런 두 가지 요구를 채울 수 있었던 것이 파트타임이다. 남성도 다시 대학원에 들어가 공부하면서 남성의 파트타임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젊은 연령층에서 그렇다. 여성은 4분의 3 정도가 파트타임이고, 남성은 10% 정도가 파트타임이다."

- 한국의 시각으로 보면 파트타임 증가는 고용의 질이 악화된 것으로 이해된다.
"한국은 악조건에다 저숙련·저임금 산업분야에만 파트타임이 적용되고 있다. 반면 네덜란드의 파트타임은 거의 모든 산업과 직능분야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은행 컨설팅에도 파트타임이 가능한 분위기다. 또 2000년부터는 '노동시간 권리법'이 시행됐다. 이 법에 의하면, 회사에 큰 악영향을 주지 않는 이상 모든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물론 실태조사를 해보면 남성이나 특정산업분야에서는 그런 요구를 하기 힘들다고 얘기한다. 그래도 다른 나라들에 비해 사용자가 파트타임 근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 노조쪽에서는 어떤 생각에서 파트타임을 받아들인 것인가?
"노조에서는 파트타임이 여성의 고용증가율을 높였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네덜란드 최대 노총인 FNV 청년 부문에서는 남성들도 4일간 일하고 하루는 아이를 돌보자는 것을 권리화하자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지금은 조금 잦아들었지만 1~2년 전에 그런 움직임이 크게 있었다."

- 파트타임이라는 유연한 근무형태가 노조에도 필요했던 것 같은데. 
"바세나르협약 때 노사는 임금동결과 노동시간 단축을 교환했다. 특별히 노사가 요구했다기보다 노동자들의 필요에 의해 파트타임이 발달됐다. 노동자들이 개인적으로 파트타임을 요구했다."

- 회사쪽에서는 관리 등의 문제 때문에 파트타임이 부담스럽지 않나?
"사례연구 결과를 보면, 주 3일 이하 근무하는 사람을 여러 명 관리하기는 힘들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주 3일 이상 근무하면 상당한 생산성 향상을 보게 된다고 한다. 주 3.5일, 4일 일하는 것이 5일 일하는 것보다 시간당 생산성이 훨씬 높아져 사용자가 큰 부담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 2일 이하 근무하는 사람들을 여러 명 관리하면 관리비용이 늘어나 그것은 꺼린다. 고숙련 남성 위주의 산업분야나 회사에서는 특히 일이 많을 때는 파트타임 근무를 꺼리고 있다.

네덜란드 노동시장의 실업률은 4%대에서 올라가지 않았다. 물론 지난 금융위기 때 6~7%까지 올라가긴 했지만, 2006년과 2007년에는 실업률이 4% 정도로 구조적 실업밖에 없었다. 거의 인력난 수준이었다. 고숙련 기술자가 부족한 상황에서 그런 기술자가 파트타임을 요구하면 사용자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 노동자쪽에서는 적게 일하고 적게 받아간다는 것에 동의하고, 사용자쪽에서는 파트타임이 특별한 비용 증가를 유발하지 않아서 동의한 것인가?
"그렇다. 파트타임이 가능하게 됨으로써 사용자쪽에서는 노동시장에 여러 근무형태의 노동자가 존재하면 더 좋은 것이다. 그래서 사용자가 파트타임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 여성 고급인력들이 노동시장에 참여할 수 있게 됐으니까. 좀 더 나아가 금융위기 때문에 네덜란드와 독일에서 시행한 제도가 있다. (풀타임 노동자를) 임시로 파트타임으로 근무하게 하고 나머지(풀타임 급여-파트타임 급여) 부분은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게 하는 '임시파트타임 실업급여제도'가 그것이다. 금융위기로 인해 경제위기를 경험한 회사에 한해서 실업기금을 사용해서 노동자를 해고하지 않고 고용계약을 유지하는 대신 파트타임으로 실업급여를 받는 제도다.

(2008년) 금융위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은 엄청나게 높은 실업률이 형성됐는데, 네덜란드와 독일은 상당히 조절한 편이다. 그래서 실업률의 큰 증가는 없었다. 임시파트타임 실업급여제도는 2008년과 2009년에 많이 시행됐다. 지금은 많이 줄었을 것이다."

"파트타임 증가로 국가가 보육의 질 높일 필요성 사라져"

ⓒ 조명신
- 파트타임 증가가 네덜란드 고용시장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여성의 노동시장 참가가 증가했다는 것은 확실하다. 네덜란드의 노동규범을 바꿨다고 할까. 연구 결과를 보면, 파트타임은 어머니들이 많이 사용한 제도인데, 이제는 젊은 청년들이 자식 유무와 상관없이 사용하는 제도가 되어가고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 네덜란드 1인당 GNP는 4만 달러가 조금 넘을 정도로 상당히 높은데다가 누진적인 세금제도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1일을 더 일한다고 해서 얻는 실질소득이 늘어나지 않는다. 소득은 어느 정도 수준에 있기 때문에 차라리 하루 덜 일하고 취미생활, 교육 등 하고 싶은 일을 추구하는 경우가 많다."

- 노동시장의 변화는 세대차이에서도 비롯됐다는 느낌이 든다.
"맞다. 지금 50대, 60대만 해도 여성은 집에 있고, 남성이 풀타임으로 근무하는 것이 주형태였다. 이제는 남녀가 모두 일하되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다. FNV와 여성학자들은 2.4제도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잇다. 둘이서 4일 근무하고 나머지는 아동보육과 가사노동을 하는 데 써야 한다는 것이다."

- 그러면 국가가 굳이 보육의 질을 높이려고 하지 않겠다.
"그게 네덜란드에서 큰 문제다. 지난 6월 아주 보수적인 정부를 뽑았는데, 그 정부가 보육시설 지원금을 줄이려고 한다. 부모들에게 보육을 국가에서 제공하는 게 아니라 보육시설을 사용할 때 그 비용의 일부를 정부가 지원하는데, 그 지원금을 많이 줄이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아이들이 부모와 있는 것이 더 좋다고 얘기한다. 그래서 녹색당이 이번 선거 이후 지지율이 높아지고 있는데, 이 정당이 보육시설 지원금 삭감 반대 캠페인을 엄청나게 벌이고 있다.

네덜란드는 보육시설이 광범위하게 지원되는 국가가 아니다. 스웨덴이나 노르웨이 등은 80~90% 이상의 좋은 보육시설을 가지고 있다. 이들 국가는 아이들이 집에 있는 것보다 보육시설에 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보육시설에 일찍 보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네덜란드에서는 최대한 집에 있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보육시설도 썩 좋지 않다. 0세부터 3세까지 다니는 보육시설율이 아동수에 비하면 16%밖에 안 된다.

게다가 아이를 주 5일 맡길 수 있는 보육시설이 없다. 그런데도 경쟁이 부모쪽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국가가 나서서 보육시설의 질을 높일 필요성이 없다. 그래서 더 큰 문제가 되고 있다. 파트타임이 정말 자기 필요에 의해 하는 것인지, 어쩔 수 없는 보육 의무 때문에 파트타임이 필요한 것인지는 두고 봐야 한다."

- 보육문제 때문에 파트타임을 선호하게 된 것인가, 아니면 파트타임을 선호하다 보니 국가가 보육시설에 투자를 안 하는 것인가?
"재정적자를 20~30% 줄이라고 하기 때문에 수많은 정책 중에서 문화와 보육분야에서 예산을 많이 줄이고 있다. 연금이나 의료는 정치적으로 삭감하기 어려워서 보육 등에서 삭감하려고 하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손쉬운 분야라서 그렇다."

- 네덜란드에서는 풀타임과 파트타임 간에 차별이 없다고 들었다. 
"시간당 임금, 부가급여, 휴가, 훈련 등에서 차별이 없도록 법으로 제정되어 있다. 다만 파트타임이기 때문에 풀타임만큼 임금이 늘어나기는 어렵다. 관리자급으로 일하기 힘든 경우도 있다. 연구결과를 보면, 파트타임은 저임금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물론 다른 국가에 비하면 네덜란드는 상대적으로 파트타임의 임금이 낮은 수준은 아니다. 산업별·직업별로 봤을 때 파트타임이 균등하게 분포돼 있기 때문에 현격한 차이가 보이지는 않지만, 조금 차이가 있긴 하다.

특히 장기적인 차원에서 볼 때 약간의 차이가 있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파트타임이기 때문에 풀타임으로 일하는 사람보다 먼저 진급할 수는 없을 것 아니냐? 그런 정도의 차별은 받고 있다."

- '정규직 파트타이머'라는 용어가 있을 법하다. 
"거의 모든 파트타임은 정규직이다. 영구계약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네덜란드에서는 파트타임을 임시직과 같은 근무형태로 보는 것에 상당히 반대하고 있다. 파트타임은 비정규직이 아니라 정규직이다. 특히 자발적으로 풀타임과는 다른 근무형태를 선택한 사람들이다."

- 한국에서는 파트타임을 비정규직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한국과 네덜란드의 파트타임은 전혀 다르다. 한국은 저임금·저숙련이고, 임금 등에서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건 비정규적으로 보는 게 맞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파트타임을 늘리려고 하는 것 같다."

- 하지만 네덜란드처럼 풀타임에 가까운 파트타임이 될지 의문이다.
"한국은 노동시간을 정상화하는 게 우선적인 과제다. 노동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는 시간당 임금이 상승해야 한다. 그래야 노동자들이 부가급여를 받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주당 노동시간이 줄어들면 생산성이 높아진다. 40~50대의 수많은 질병퇴직은 과도한 노동시간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파트타임을 도입하는 전에 우선 노동시간을 정상화해야 한다."

"하루의 자유가 더 매력 있다고 생각해 파트타임 선호"

- 네덜란드에서는 파트타임의 증가가 고용불안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나?
"그렇다고 볼 수 없다. 많은 경우 영구직이고, 여성들은 자발적인 파트타임이기 때문이다. 고용불안으로 문제가 된 적은 없다. 문제가 되는 것은 고용불안보다 관계불안이다. 남성에게 재정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고, 특히 이혼이나 배우자 사망시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네덜란드 여성들이 일하는 시간을 더 늘려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다."

- 네덜란드 노사는 여성의 파트타임 노동시간 증가에 동의하고 있더라.
"특이한 점은 국민들, 특히 여성들의 지지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여성들이 장시간 파트타임으로 근무하면 세금도 많이 들어오고, 고령화 추세에 따른 인력부족현상도 해결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사용자쪽도 여성들의 노동시간을 증가시켜야 한다는 목적의식이 있다. 그런데 네덜란드 국민들은 국가가 개입하는 것에 반대하는 경향이 있다. 바세나르협약은 정부가 정책이나 법으로 개입하려고 한 것에 대응한 결과물이다.

네덜란드 노사는 '우리끼리 협약해서 해결하면 국가가 개입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해서 협약을 맺어왔다. 다른 세력이 왈가왈부하지 못하도록 노사가 먼저 협약을 하는 것이다. 그런 관계였기 때문에 '국가에서 왜 개인의 노동시간을 줄이고 늘리는 것에 개입하려고 하느냐'며 상당히 반대하고 있다. 그래서 국가에서 여성 노동시간 증가와 관련해 문화적인 캠페인에 가장 힘을 쏟고 있다. (앞서 언급한) 그런 의식을 바꾸기 위해 캠페인을 많이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 파트타임의 대부분은 여성들이고, 남성 중에서도 저숙련·저학력 노동자들아 파트타임으로 근무하지 않나?
"꼭 그렇지 않다. 남성은 저숙련이라기보다 35세 이하 젊은 층에서 파트타임을 많이 선택하고 있다."

- 나이와 상관이 있지만, 숙련도나 학력수준과는 상관없나?
"그렇다."

- 그런데 파트타임으로 근무해도 생활을 제대로 유지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꿈도 생활도 아주 소박하다. 국회의원이나 대학의 정교수도 다 낡아빠진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그게 효과적이기 때문인데, 네덜란드 사람들은 효과에 예민하다. 차 타고 주차할 시간에 자전거 타고 가면 금방 가니까 자전거를 타는 것이다. 거리에서 크고 고급스런 차를 봤나? 그리고 네덜란드의 임금 수준 자체가 상당히 높다. 1980~90년대에 임금이 동결된 해가 많긴 했지만 임금 수준은 상당히 높다. 그리고 파트타임을 권리화하면서 임금 수준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그로 인해 주어지는 하루의 자유가 더 매력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파트타임을 많이 선호한다.

틸버그대 사회학과장이 50세가 조금 넘었다. 결혼을 늦게 해서 서너 살의 아이를 두고 있는데, 그분은 주4일 근무한다. 그중 하루는 집에서 근무한다. 하지만 1년에 10개의 논문을 저널에 발표하는 등 생산성이 높다. 불이익 등이 없기 때문에 주 4일 일하는 게 나쁘지 않다. 한국에서 주 4일 근무하는 것과 비교하면 안 된다. 주 3일, 4일 근무하는 것을 적용하기에는 두 나라의 격차가 너무 크다. 그래서 주 5일 근무라도 제대로 적용되어야 한다. 그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 네덜란드식 파트타임이라면 우리도 근무하고 싶을 텐데, 이것은 어느 정도 먹고살 만하니까 가능한 것 아닌가?
"그런 측면이 있다. 네덜란드 사람들 중에 '남자는 4~5일, 여자는 1~2일 근무하는 것은 남녀불평등이다, 여성의 남성 의존도를 높이고 여성 인적 자원을 버리는 것이다, 왜 여자는 집에 있어야 하나'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네덜란드 남녀관계를 보면 여성이 우세하다. 이런 우스갯소리도 있다. '여성들이 남성들을 5일 근무하게 만든다.' 여성들이 자신은 집에서 느긋하게 애 키우며 살기 위해 남편은 5일간 일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 파트타임으로 인해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이 높아졌다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것인가?
"그것은 컵이 반쯤 비었다고 볼 것인지, 반이나 차 있다고 볼 것인지의 문제와 같다. 1980년대에는 여성들의 노동시장 참여가 거의 없었다. 미혼여성이 참여하거나, 이혼하거나 배우자가 사망했들 때 선택하는 길이었다. 그런데 30년간 75%까지 여성 고용율이 높아졌다는 것은 엄청난 성과다. 이런 여성 고용율 증가를 보인 나라는 없다. 반면 '풀타임이 아니라 파트타임이기 때문에 실패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받아들일 만한 정책인가? 그런데 기본적인 조건이 다르다. 네덜란드는 세계에서 평균노동시간이 가장 짧은 나라이고, 한국은 제일 높은 나라다. 네덜란드에서는 올해부터 '뉴 워크'(New Work)라고 해서 노동시간 자율성과 재택근무 자율성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새로운 근로형태를 자기가 알아서 선택해 일을 한다는 것이다. 필요하면 늦게 출근하고 일찍 퇴근할 수 있다. 노동자와 사용자의 시각을 바꾸기 위한 것이다."

- 보수정부가 들어선 지금도 '뉴 워크' 캠페인이 펼쳐지고 있나?
"그렇다. 물론 그 전부터 위원회가 설립되는 등 움직임이 있었다. 이런 정책은 우파든 좌파든 큰 변화가 없다. 네덜란드에는 한 도시에 근무하면서 다른 도시에 사는 경우가 많다. 교통체증, 공기오염 등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환경부에서도 이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다. 연구결과를 보더라도 재택근무가 특별히 악효과가 있다고 나오지 않았다. 스트레스를 줄이면 생산성이 높아진다고 할 수 있다. (파트타임과 재택근무 등은)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똑똑한 경영자라면 유한킴벌리 사례 등을 보고 생각 바꾸어야"

ⓒ 조명신

- 파트타임이 일과 가정의 양립을 가능하게 하는 대안인가?
"그렇다. 보육시설이 부족하고, 문화적으로 부모가 돌봐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네덜란드에서는 더욱 그렇다."

- 그렇다면 파트타임이 저출산 고령화사회의 대안 근무형태도 될 수 있나?
"그렇다. 하지만 한국의 첫 과제는 남녀 모두 노동시간의 정상화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공공부문 여성들에게 아주 좁은 파트타임을 실행하려고 하고 있다. 이것이 마치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정책인 것처럼 말이다. 만약 노동시간을 정상화하지 않고 소수 몇 명의 정책으로 빠지게 되면 파트타임과 풀타임의 불평등(격차)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들의 노동시간을 정상화하지 않은 상태에서 몇 명만 파트타임을 쓰게 되면 그들만 불이익을 받는다. 추가인력을 쓰지 않으면 풀타임이 추가로 일을 하게 된다. 이것은 노동자들을 이간질하기 좋은 방법이다.

특정 부분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정책을 실행하기보다는 모든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정상화하고 추가인력이 필요하면 추가인력을 고용해야 한다. 그 다음에 파트타임을 남녀 불문하고 전 산업분야에 일시에 적용하는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앞의 두 단계를 빠뜨리고 셋째 단계만 하려 한다면 당연히 실패한다."

- 정부나 사용자측에서는 적은 노동시간이 생산성을 저하시킨다고 볼 수도 있는데.
"우선 적은 노동시간의 정의가 무엇인지 봐야 한다. 한국의 노동시간은 아주 길다. 생산성이 떨어지는 시간이 많다. 사용자쪽에서는 그만큼 노동비용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 사용자는 시간당 얼마의 생산성을 낼 수 있는지 잘 계산해야 한다. 공장을 24시간 운영하는 것이 생산적인지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 결국 한국에서는 과도한 노동시간을 줄여서 일자리를 창출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는 얘기인가?
"노동시간을 줄이는 전제조건은 시간당 임금의 상승이다.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임금을 상승시켜줘도 사용자가 부담하는 임금수준 자체에는 변화가 없다. 특히 노동시간을 단축하게 되면 과제중심계약(task-base contract)이 되어야 한다. 주 50시간 하던 일을 주 30시간에 끝낼 수 있다면 사용자는 그 사람에게 보너스를 줘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문화는 과장이 퇴근하기 전에 집에 못 가는 것이다. 그 시간에 인터넷으로 주식을 하거나 게임을 하거나…. 결국 가족들에게 사용하는 시간은 줄어들게 된다."

- 시간당 임금을 높이려면 사용자쪽에서 노동시간을 단축해도 생산성이 유지되거나 생산성이 향상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물론 그것이 있어야 한다. 개인기업 차원에서라도 노사가 협약을 맺어야 한다. '우리는 너에게 이만큼 자율성을 줄 테니 노동자들도 그만큼 성과을 보여 달라'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시행하고 재평가하는 방식을 거치면 된다. 처음에는 손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문화는 정책 등보다 훨씬 느리게 변한다. 특히 구시대 근로형태에 익숙해진 분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외국기업도 많이 들어오면서 조금씩 변하고 있긴 하다.

이것을 확실하게 바꾸기 위한 계약, 합의, 협의가 필요하다. 노사정 차원의 합의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우리는 기업노조 중심이고, 기업노사 간에 협약이 더 많이 이루어지지 때문에 기업차원에서 협약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유한킴벌리 등 사례가 있지 않나? 좋은 결과를 내고 있다고 들었다. 똑똑한 경영자라면 그런 것을 보고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 네덜란드 모델이 네덜란드의 역사나 문화 등이 생략된 채 전달되면, 한국적 노사관계에서는 사용자에게 유리한 부분만 부각될 수 있다. '한국의 노조는 왜 그렇게 강성이냐?'는 등의 얘기가 나올 것 같다. 
"한국과 네덜란드 노동운동의 역사나 역할을 보라. 한국에서는 1995년까지 노총이 불법이었다. 네덜란드 노총은 1980년대까지 힘이 셌다. 당시 30% 정도가 국가급여에 의존한 것이 네덜란드병이었다.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인데도 노동자 임금을 올렸다. 그래도 (노사 간) 협약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노동자들의 힘이 셌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노총이 제대로 힘을 써본 적이 없다.

게다가 사용자도 마찬가지지만 노조가 노동자를 대표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중소기업과 비정규직의 비율이 높은데, 노조는 대기업과 정규직 중심이다. 그러니 (중소기업과 비정규직은) 노사정 대타협을 해도 어떤 지원도 받을 수 없다. (노사정 대타협 전에) 노조 안 대타협을 이루어야 한다."

- 노사관계가 어느 정도 평등해야 사회협약도 가능해 보인다.
"네덜란드 노조가 강성했던 적이 있다. 1970~80년대 초반에 그랬다. 물론 프랑스나 독일의 노조에 비하면 덜 강성하다고 할 수 있지만 말이다. 네덜란드는 나라가 작기 때문에 노사협약이 없으면 국가가 강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국가가 강해지는 것에 국민이 반대하기 때문에 노사 협약 초기부터 노사가 파트너가 될 수 있었다.

또한 네덜란드에서 노조가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이유는 가장 큰 정당인 기독민주당과 노동당이 각각 기독노총과 FNV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독노총의 경우 유럽연합 차원에서도 세력이 세다. 그렇기 때문에 노조가 힘을 가질 수 있는 기반이 있다. 한국은 국가로부터 억압받는 상황에서 사용자와 대등하게 상의할 만큼 힘을 얻을 수 없었다. 산별노조 체제가 되어야 노총이 힘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기업별 노조의 힘을 줄이고 산별노조의 힘을 키워야 한다. 그래야 다른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지원할 수 있고, 진보정당들도 (그것을 기반으로) 정치적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유연안정성 모델의 핵심은 노사 간의 믿음"

- 사회적 협약이 잘되기 위해서라도 노동자 정당의 기반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본다. 정당과 노조가 연결돼 있다는 것은 엄청난 힘이다. (한국과 달리) 네덜란드에서는 기독민주당과 노동당이 내각을 구성할 수 있을 정도이고, 노조도 그 사회적 역할을 인정받고 있다."

- 네덜란드 노사는 정부의 깊숙한 개입 없이 서로 합의해왔다. 그렇다면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국가가 해야 할 몇 가지 일이 있다. 먼저 풀타임과 파트타임이 노동시간에 따른 차별을 받지 못하도록 법적으로 보호해야 한다. 노동자들은 '약한 관계'에 있기 때문에 보호해줘야 한다. 두 번째는 중소기업에서 제도를 시행할 때 추가되는 행정비용이나 컨설팅을 정부가 지원해줘야 한다. 현재 영국에서 이런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말로는 쉽지만, 출퇴근 시간만 변경해도 경영에 어려운 부분이 있다. 중소기업이 많은 한국에서 사용자가 혼자서 추가비용을 감당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컨설팅 지원 등을 구조화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제도들의 사례와 방법을 논의할 수 있는 워크숍을 꾸준히 열어야 한다."

- 네덜란드의 경우 유연안정성 모델이라고 할 수 있나?
"그렇게 볼 수 있다. 큰 틀에서는 노사가 유연성과 안정성을 교환하게 되면 유연안정성(flexicurity)이라고 볼 수 있다. 파트타임은 노동시간의 유연성이고, 재택근무는 노동자리(노동장소)의 유연성이다. 사용자쪽에서 보면 숙련되고 생산성 높은 노동자들 가질 수 있는데 이것이 안정성이다. (네덜란드에서는) 노사가 그런 안정성과 유연성을 서로 교환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고용보호법을 개정하고, 나머지 부분은 사회보장으로 해주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아주 좁은 의미의 유연성이다. 그런 식으로 유연안정성을 이해하면 반대가 있을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인) 임시직이 아닌 다양하고 유연한 근로형태와 교환할 수 있는 안정성이 필요하다. 특히 유연안정성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노사 간의 믿음, 협약이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기둥이다."

- 현재의 네덜란드 모델은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나?
"(파트타임은) 앞으로 계속 증가하고, 특히 남성도 파트타임으로 많이 근무할 것 같다. 그런 욕구가 있다."


#유러피언드림#네덜란드#정희정#파트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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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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