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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이명박 대통령의 후원자이자 40년 지기인 천신일(67) 세중나모여행 회장이 1일 검찰에 출석해 14시간에 걸쳐 조사를 받았다. 천 회장은 세무조사 무마와 대출금 출자금 전환 등의 대가로 이수우 임천공업 대표로부터 40여억 원을 받았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천 회장은 검찰조사에서 "이수우 대표와는 20년 가까이 알고 지내는 사이로 경영자문료를 받은 것일 뿐 로비 대가로 돈을 받은 것은 아니다"라며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검찰은 2일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한다는 방침이다. 박연차 게이트 때와 달리 법원도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천 회장이 구속되면 검찰로서는 추가수사를 통해 천 회장을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의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하는 일만 남게 된다. 그런데 검찰이 이후 그를 '제대로 된 혐의'로 '제대로' 기소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런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동안 검찰이 그에게 보여온 '봐주기' 수사행태 때문이다.

 

혐의 잡고도 도피성 외유 수수방관... 연평도 포격사건 틈타 전격 귀국

 

검찰은 이수우 임천공업 대표로부터 "천 회장에게 40여억 원의 금품을 건넸다"는 진술을 확보하고도 천 회장의 일본 출국을 수수방관했다. 천 회장은 검찰이 '40여억 원 금품 수수 의혹' 수사를 본격화하고 있었던 지난 8월 19일 일본으로 유유히 출국했다.

 

'도피성 외유'가 분명함에도, 검찰은 피의자 신분이 유력했던 천 회장에게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이후 천 회장은 일본과 미국 등에서 자유롭게 지내며 검찰수사를 관망하는 여유를 부렸다.

 

심지어 박영선 민주당 의원은 지난 10월 21일 법무부 국정감사에서 "천 회장이 밤마다 일본 도쿄의 중심가인 아카사카의 한 술집에 나타난다는 제보가 의원실에 접수됐다"고 '봐주기 수사'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주일 한국대사관에 검사와 경찰이 파견나가 있었음에도 검찰은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러한 검찰의 봐주기 수사는 천 회장의 '여유로운 버티기'의 버팀목이었다. 

 

그렇게 검찰이 봐주는 동안 천 회장은 자신의 신변을 정리하며 귀국시기를 주도면밀하게 저울질했다. 그는 고려대 교우회장직에서 물러났고(11월 25일), 미납 증여세 185억 원을 냈으며(11월 29일), 학군장교중앙회 회관 건립기금으로 자신의 주식 10만 주를 기부했다.

 

이러한 신변정리는 곧 귀국할 것이라는 '신호'였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물론 청와대와도 귀국시기를 조율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가 계속 귀국하지 않을 경우 후반기 국정운영에 부담될 수 있다고 판단한 청와대에서 '귀국하라'는 메시지를 보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천 회장의 귀국 시기는 그야말로 절묘했다. 석 달이 넘도록 '도피성 외유'를 해오던 그는 11월 30일 일본에서 전격 귀국했다. 연평도 포격사건이 모든 이슈를 잠식하고 있을 때 들어온 셈이다. 자신의 비리도 다른 이슈처럼 연평도 포격사건에 묻힐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었을 것이다.

 

귀국 직후 체포영장 집행하지 않고 '병원행' 배려

 

검찰은 천 회장의 '계산된 귀국'에도 여전히 '봐주기'로 일관했다. 피의자가 '도피성 외유'를 하다가 귀국하면 바로 체포영장을 집행하는 것이 수사관행이다. 천 회장의 경우 석 달이 넘도록 장기간 해외도피 생활을 해왔고, 알선수재 혐의 규모도 40여억 원에 이른다.

 

그런데도 검찰은 귀국한 천 회장을 바로 체포하지 않았다. 그의 혐의 입증을 위한 주변조사를 다 마쳤는데도 말이다. 오히려 그가 서울 일원동 소재 삼성서울병원 20층 VIP 병동에 입원해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했다. 검찰이 그의 요구를 받아들인 결과다. 그에 따라 소환조사 일정도 하루 늦춰졌다.

 

검찰에서는 '10월 말까지 세 차례 소환통보 했고, 천 회장 사무실을 압수수색하지 않았느냐'고 항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 핵심 측근을 봐주고 있다는 여론이 거세지자 마지못해 쓴 카드들이었다.

 

게다가 천 회장은 신병치료 핑계를 대며 귀국을 거부했다. 이러한 천 회장의 버티기에 검찰 일각에서는 '강제조사안'이 나오긴 했지만, 실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소환통보나 사무실 압수수색의 진정성이 퇴색될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천 회장은 현재 대출을 알선해주고, 세무조사를 무마해주고, 기업 인사에 개입하고 거액을 받았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박연차 게이트에서도 봤듯이 그는 살아 있는 권력의 40년지기이자 후원자라는 점을 배경으로 '로비스트'의 역할을 해왔다.

 

로비스트는 수요자(청탁자)와 공급자(권력층)를 연결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런 점에서 검찰은 이수우 임천공업 대표로부터 받은 거액의 돈이 어디에 사용됐는지 밝혀야 한다. 돈의 사용처와 청탁받은 뒤 그의 행보도 쫓아야 한다. 그 결과에 따라 '권력형 비리'가 터져 나올 수도 있다.

 

그런데 검찰 안에서 '권력형 비리'로 번지는 것을 차단하고 '개인비리'로 축소하려는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천 회장 자체가 권력인데 권력층에 돈을 건네며 청탁을 했겠느냐?"는 여론이 있다는 것. 게다가 천 회장의 남상태 대우조선해양사장 연임 로비 의혹도 수사할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랬다가는 또다시 '견찰'이라는 모욕적인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그런 모욕을 당하지 않기 위해선 어떤 성역도 없이 검찰에 주어진 칼을 제대로 휘둘러야 한다.  


태그:#천신일, #임천공업, #이수우, #이명박,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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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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