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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유언장을 읽고 있는 코스모스님 ..
▲ 유언장을 읽고 있는 코스모스님 ..
ⓒ 정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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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남자를 잘못 만나 평생 고생하고 살았다. 너희들은 엄마처럼 살지 말고 가족들과 아내에게 잘해주어라. 엄마는 가진 것이 없어서 너희들에게 나누어줄 금액이 없어 정말 미안하구나. 만약 내가 병이 나서 아프면 병원에 데리고 가지 말고 고요하게 가게 해다오. 나는 죽으면 화장해서 '수목장'을 시켜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죽고 없어도 형제들과 자주만나고 우애 있게 지냈으면 좋겠다. 부탁한다. 엄마는 죽어서 하느님나라로 가니 너무 서러워 말아라." - 백합님의 유언장

강의를 하고 있는 벅태형호스피스 ..
▲ 강의를 하고 있는 벅태형호스피스 ..
ⓒ 정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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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마지막 주, 대야종합사회복지관에서 있었던 아름다운 이별학교가 진행되고 있는 강의실로 들어섰다. 박태형 호스피스 진행으로 임사체험(입관체험)이 있는 날이었다. 그 숙연한 분위기 속에 잔잔한 음악과 한 노인의 유언장이 낭독되고 있었다. 유언장을 낭독하는 것은 입관체험을 하기 위해 관에 들어가기 전 단계이다.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멈추어졌다.

시흥시 대야종합사회복지관 가족복지사업단에서는 지난 10월~11월 두 달 동안 노인죽음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아름다운 이별학교란 주제로 노년기를 맞고 있는 어른신을 대상으로 공포와 두려움으로 작용되는 노년기의 죽음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고, 심리적으로 안정화하여 건강하고 행복한 노년의 삶을 맞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수의와 준비되어 있는 관 ..
▲ 수의와 준비되어 있는 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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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를 입고 있는 체험자 ..
▲ 수의를 입고 있는 체험자 ..
ⓒ 정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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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은 죽음은 친구이며 인생의 노을이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일출만큼이나 아름다운 노을, 낙조이다. 그 아름다운 낙조를 더 아름답고 더 멋지게 장식을 할 수 있으려면 사전에 철저한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보통사람들에게 받아들이는 죽음에는 5단계 반응이 있다고 한다.

1, 충격, 부정 2, 분노 3, 타협 4, 절망, 우울5, 수용

죽음의 반응들을 보면서 상상해 보았다. 만약 내게 죽음이 다가온다면? 아마 나도 그런 반응들을 보였을 것이다. 괜스레 슬픔이 밀려왔다. 드디어 입관체험이 시작되었다.

입관체험순서
1. 임종예식(사망 경위, 사망 일시, 참석자와의 관계)
2, 유언장 낭독(수의 입고 낭독)
3, 입관예식(입관, 관 뚜껑 닫고 못 질,핵심피드백)
4, 장례예식(묵상 및 묵념, 유언장 핵심단어 반복)
5, 부활예식(살아남을 선포, 축하박수 및 격려)
6, 소감발표(입관체험나누기, 제2의 인생을 위한 각오)

한 명 한 명 심오한 마음가짐으로 수의를 입고 입관예절에 들어갔다. 수의를 갖추어 입고 자신이 직접 작성한 유언장을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읽고 관속으로 들어간다. 수의를 입으면서, 유언장을 읽으면서, 그동안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스치고 지났을 것이다. 그리곤 못 질을 한다. 깜깜한 관속에서 2~3분 동안 누워 있는다. 입관체험을 위해 수의를 입고 관속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오래 전 했던 입관체험의 경험이 생각났다.

묵주를 들고 입관한 백합님 ..
▲ 묵주를 들고 입관한 백합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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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질을 하고 ...
▲ 못 질을 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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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어 놓은 신발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
▲ 벗어 놓은 신발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
ⓒ 정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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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전쯤 내 나이 30대 중반 때였다. 성당에서 안양에 있는 성나자로마을로 피정을 갔었다. 사순절(부활절축제전에 절제된 생활과 참회의 시간) 기간의 피정이라 숙연하고 조심스러운 시간이었다. 사순절피정의 특성상 피정도 색달랐다. 그때 처음으로 접해보는 입관체험이 있었다. 준비된 관을 보니 왠지 모를 공포와 두려움이 밀려왔다. 아마도 젊은 나이에 나의 죽음이란 먼 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성전 안은 조금은 컴컴하고 잔잔한 사순절성가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날 피정에 참석한 신자들은 두 손을 모으고 입관체험을 위해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며 기도를 하고 있었다. 솔직히 나는 그 체험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여 줄도 서지 않고 자리에 앉은 채 입관체험을 하는 다른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나의 마음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내가 저 관속에 들어가면 어떤 기분일까?' 느끼고 싶어졌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맨 마지막으로 차례를 기다렸다. 점점 내 차례가 다가오고 있었다. 가까이에서 체험을 하고 나오는 교우들을 보니 우는 사람, 편안함을 느끼는 등 다양한 반응들을 볼 수 있었다. 그 당시 입관체험에서는 수의를 입지 않고 했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컴컴한 관속에 들어가서 누웠다. 관 밖에서 들려오는 성가도 내 귓전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만 사람은 죽으면 이렇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과 슬프고 편안하기보다는 고요 속에 무아지경에 빠지는 것 같았다. 1분 정도 관속에 있다 밖으로 나왔다. 아주 순간적으로 살아있음이 감사하다는 생각과 갑자기 가족들이 보고 싶어졌다. 뒤늦게 입관체험을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끝까지 체험을 하지 않았더라면 잠깐이지만 나의 주변에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소중함을 덜 느꼈을 것이다.

함께했던 친구가 죽음을 맞이하자 슬퍼하는 친구들 ..
▲ 함께했던 친구가 죽음을 맞이하자 슬퍼하는 친구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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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입관체험을 했던 모든 분들이 관속에서 나왔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많이 숙연해 하고 눈물도 그렁그렁 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한 분이 끝까지 체험을 하지 않았다. 아마도 노년이란 나이가 더욱 버거웠고 불안하게 만들었으리라. 그 마음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조금은 아쉬움도 남았다. 2~3분만 참으면 되는데 하는.

체험을 마치고 나온 사람들의 소감발표가 있었다.

입관 체험을 마친 코스모스님(70세, 그곳에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별칭을 부른다)은 "그날이 언제 일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가는구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이제는 못 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 가족들을 더 많이 사랑할 거예요"라고 말했다.

백합(67세)님은 "마음이 아주 편했어요. 앞으로는 행복하고 사이좋게, 말 한마디라도 친절하게 하면서 살 겁니다"라고 말했다.

죽음은 늘 우리 옆에 친구처럼 있지만 두려움의 존재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평소 건강할 때 이런 연습을 자주 한다면 죽음이 코앞에 와도 연습을 하지 않은 것보다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취재를 하면서 순간순간 나도 나의 삶에 대한 정리를 해보았고, 오래 전 입관체험의 시간도 뒤돌아보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어떻게 살아왔으며 남은 삶은 어찌 살 것 인지를. 소중한 체험을 마치고 돌아가는 노인들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였고, 미소가 한결 아름다워 보였다.


#아름다운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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