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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유러피언 드림> 다섯 번째 이야기는 교육 강국 핀란드에 관한 이야기다. 인구 530만 명의 핀란드는 수준 높은 복지와 교육제도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핀란드는 1960년대부터 40년 동안 꾸준히 '누구에게나 질 좋은 교육을'이라는 목표를 실현시켜 왔다. 그 결과는 2000년부터 국제학력평가시스템(PISA) 4번 연속 최상위권 기록으로 나타났다. 경쟁과 획일적인 시험이 거의 없지만, 높은 수준의 교육을 제공하고 있는 핀란드. 그들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복지제도와 삶의 모습을 들여다봤다. [편집자말]
글 : 윤정현 기자
공동취재 : <오마이뉴스> '유러피언 드림 핀란드편' 특별취재팀

"사랑하는 데 국적은 중요하지 않죠"  독일인 소피(26, 핀란드 투르쿠 대학 석사과정 재학)와 남자친구 오스카리(26, 핀란드 헬싱키 공대 졸업)는 국적은 다르지만, 핀란드에서 함께 살고 있다.
"사랑하는 데 국적은 중요하지 않죠" 독일인 소피(26, 핀란드 투르쿠 대학 석사과정 재학)와 남자친구 오스카리(26, 핀란드 헬싱키 공대 졸업)는 국적은 다르지만, 핀란드에서 함께 살고 있다. ⓒ 임정훈

민족국가의 범주를 넘어서는 초국가적 체제 EU. EU 헌법이 제정되고, EU 대통령이 선출되었으며, 유로화가 거의 모든 회원국가에서 단일통화로 통용되는 등 정치, 경제 부분에서 많은 변화를 이끌었다. 또한, 볼로냐 협정은 EU국가 대학 간의 학제를 단일화하고 학점 교류를 수월하게 만들었다. 이와 함께 에라스무스 교환학생 제도를 통해 유럽의 대학생들이 다른 유럽 나라에서 대학 생활을 경험하는 건 이제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과연 EU 시민들은 이런 변화를 실생활에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제러미 리프킨이 그의 저서 <유러피언 드림>에서 역설한 협력, 다문화 존중, 삶의 질 향상 등과 같은 가치는 유럽인들의 삶 속에서 어떻게 실현되고 있을까? 이러한 궁금증을 안고, EU의 부추김과 지원 속에서 사랑을 키워나가고 있는 EU 커플을 만나보기로 했다.

기자가 평소 알고 지내던 독일인 소피(26, 핀란드 투르크 대학 석사과정 재학)와 남자친구 오스카리(26, 핀란드 헬싱키 공대 졸업)를 눈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던 12월 어느 날 헬싱키에 위치한 한국 식당 '한국관'에서 만났다.

다른 EU국가에서도 의료보험 혜택 누려

 독일인 소피는 현재 학업을 목적으로 핀란드에서 장기 체류중이지만, 비자 신청이 필요하지 않다.
독일인 소피는 현재 학업을 목적으로 핀란드에서 장기 체류중이지만, 비자 신청이 필요하지 않다. ⓒ 임정훈
이 두 사람은 10대 시절부터 외국 생활을 해서 그런지 다문화에 익숙하다. '옆집 사는 외국 여자와도 눈을 맞추는데 1년이 넘게 걸린다'는 보통의 핀란드 남자들과는 달리 오스카리는 낯선 외국인들 앞에서 전혀 쑥스러움을 타지 않는다.

웃음소리는 오히려 능글맞기까지 하니 핀란드 남자가 맞나 싶을 정도다. 둘 다 영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소피는 영국에서, 오스카리는 핀란드에서 대학 생활을 하느라 떨어져 지냈다. 그 기간 동안 유럽의 저가항공인 이지젯과 라이언 에어가 이들의 장거리 연애를 전폭적으로 도와주었다.

그 후에는? 소피가 아예 보따리를 싸들고 핀란드로 건너 와서 직업을 구하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녀가 핀란드에서 취업과 학업을 목적으로 장기 체류하는 동안에도 비자는 필요가 없었다. EU국가의 시민은 다른 EU국가에서 장기 체류를 할 때 체류를 신청하는 게 아니라 통보한다.

또한 비 EU국가에서 온 유학생의 경우 개인 질병 보험을 따로 들어야 비자가 나오지만, EU국가 유학생의 경우 본국의 국가의료보험을 적용한 수준의 저렴한 비용으로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소피의 설명을 들어보자. 

"EU시스템을 생활에서 경험하고 있다. 쉥겐조약(국경개방조약) 국가는(영국, 아일랜드를 제외한 모든 EU회원국은 쉥겐조약에 가입 돼 있다) 여행을 할 때 바로 국경(공항, 항구 등)을  통과할 수 있어 참 편리하다. 그리고 핀란드에서 장기 체류를 하고 있는 동안에도, 예를 들어 은행 업무를 볼 때 여권을 들고 다닐 필요 없이 내 독일 신분증을 사용해서 신분 증명을 하면 된다."

소피의 경우 핀란드 국적이 아니지만 대학원 진학 전에 핀란드 영어유치원에서 교사로 일하면서 세금을 냈고, 오스카리와 동거 상태인 것도 인정받아 핀란드인인 오스카리와 거의 비슷한 수준인 400유로(약 60만원) 정도의 학생 수당을 받는다고 했다. 소피는 핀란드인들이 제공 받는 종합복지시스템인 켈라(KELA)의 지원을 전폭적으로 받고 있는 셈이다.

 소피의 독일 신분증. EU회원국 국민들은 대부분의 다른 EU국가에서 자국 신분증을 사용할 수 있다.
소피의 독일 신분증. EU회원국 국민들은 대부분의 다른 EU국가에서 자국 신분증을 사용할 수 있다. ⓒ 임정훈

그렇다면, 이들은 <유러피언 드림> 이 제시하는 협력과 포용의 가치를 얼마나 가슴 속으로 받아들이고 있을까. 대다수 국민들이 자신들을 단일 민족, 단일 문화권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유럽의 변두리라고도 볼 수 있는 핀란드에 최근 10년간 이주민이 급증하고 있다. 2009년을 기준으로 헬싱키, 반타, 에스포 시 인근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비율이 6.3%에 이른다.  EU국가 뿐만 아니라 동유럽,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 소위 저개발 국가에서 넘어오는 이주민 혹은 난민에 대한 거부감은 없을까.

핀란드인들은 아직까지 이주민에게 우호적이며 관용적이라는 것이 오스카리의 설명이다. 노키아 본사에 근무하며 헬싱키 인근 에스포 시에서 3년째 살고 있는 한국인 장원철씨 역시 "핀란드 사람들이 속마음은 어떨지 몰라도 적어도 겉으로는 유색 인종이나 난민들을 전혀 차별 없이 대한다"면서 "그 점이 이전에 직장 생활을 했던 영국 사회와 크게 다른 점"이라고 말했다. 

 핀란드 헬싱키 인근의 에스포시 타흐티엔종합학교 학생들의 체육시간 모습. 최근 들어 헬싱키 시 주변 지역에 이주민들이 증가하고 있다.
핀란드 헬싱키 인근의 에스포시 타흐티엔종합학교 학생들의 체육시간 모습. 최근 들어 헬싱키 시 주변 지역에 이주민들이 증가하고 있다. ⓒ 임정훈

좀 더 나아가서,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 노동자들이 이들에게 과연 친한 친구나 가족 구성원이 될 수 있을까? 약간은 짓궂은 질문에 소피는 "일상생활에서 사실 이주민이나 난민들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지만 그런 기회가 있다면 당연히 친한 친구 사이도 가능하다"며 "지금 10대들은 이주 노동자들의 자녀들과 함께 학교를 다니는 세대이기 때문에 그들과 친구가 될 기회가 훨씬 잦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핀란드인 남편과 결혼하여 핀란드에서 가이드로 일하고 있는 교민 이아무개씨 역시 "핀란드인 가정의 딸이 아프리카계 남자친구를 사귀다가 임신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런 경우에도 대부분의 핀란드인들은 유색인종 외국인들을 배척하지 않고 새로운 가족 구성원으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물론 핀란드 사회가 다른 서유럽 국가에 비하면 아직은 이주민 유입 초기 단계에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좀 더 지켜볼 일이다.

"엄청난 혜택을 누렸으니 세금 내는 건 당연"

사회적 약자층 혹은 가난한 나라에서 온 이주노동자 모두를 챙기면서 함께 나아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역시 세금이 필요하다. 오스카리와 소피 뿐만 아니라 취재팀이 만난 핀란드 젊은이들은 이렇게 말했다.

"학생 시절 다른 이들의 세금으로 무상 교육을 비롯한 엄청난 혜택을 누렸고, 독립해 살았기 때문에 수입의 일부를 세금으로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당연하다."

"저도 혜택을 많이 받았으니까 세금을 당연히 내야죠"  오스카리는 핀란드 남자답지 않게, 넉살이 좋다.
"저도 혜택을 많이 받았으니까 세금을 당연히 내야죠" 오스카리는 핀란드 남자답지 않게, 넉살이 좋다. ⓒ 임정훈
핀란드는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동거 커플에게도 부부들이 누릴 수 있는 각종 사회보장 제도 혜택을 동등하게 부여하고 있다. 동거 후 결혼을 하기도 하지만 중, 장년층이 되어서도 동거 관계로 계속 지내는 커플들도 적지 않다. 오스카리와 소피도 학생 아파트에서 동거를 해왔다.

이렇게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정부가 지급하는 각종 수당과 아르바이트를 통해 18세가 되면 독립을 하고, 연인과 동거를 통해 일상을 공유하며 서로를 알아갈 시간과 기회를 충분히 가지면서 어른이 돼 간다.

오스카리는 결혼이 가지는 상징적 의미와 결속력은 동거와는 또 다른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가까운 미래에 결혼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동거는 연애 관계에서 권장할 만한 경험"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에게 있어 연애나 결혼을 할 때 고려해야 할 기준은 서로가 지닌 경제력이나 학벌이 아니라 서로가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들을 얼마나 많이 공유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 젊은 연인들이 함께 사는 데에는 많은 돈과 번듯한 집이 필요치 않다. 오스카리와 소피 뿐만 아니라 기자가 취재한 대학원생 엄마 사라, 기자의 예전 플랫메이트(기숙사 아파트를 함께 나누어 쓰는 친구) 역시 동거나 신혼 생활을 학생 아파트에서 시작했다.

한국의 88만원 세대들에게 사랑이나 동거 같은 단어는 사치일지도 모른다. <88만원 세대>에서 밝히고 있듯이 심각한 취업난과 비정규직이라는 굴레 속에서 성인이 되었으나 정신적, 경제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연애와 섹스마저도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시험 준비 인생 속에서 지체 시킬 수밖에 없는 한국의 20대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참고로 소피는 지난 부활절 휴가 때 오스카리의 한국 출장길에 함께 했다가 서울에서 프로포즈를 받게 돼 한국과 인연이 남다르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둘은 한국음식을 무척 좋아한다. 이 젊은 EU 커플이 앞으로도 사랑을 비롯한 삶의 소중한 가치들을 오롯이 가꿔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유러피언드림> 핀란드편' 특별취재팀 : 박수원 기자(팀장), 임정훈 시민기자, 윤정현 해외통신원.


#유러피언드림#핀란드#동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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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사람을 만나면서 조금씩 성장해 가는 중입니다. 딸들의 나라, 공교육의 천국이라고 하는 핀란드에서 바라보는 세상 이야기,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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