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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편지> 겉표지
<살인자의 편지>겉표지 ⓒ 자음과모음
연쇄살인범들은 왜 사람을 죽일까. 개중에는 나름대로의 명분을 가지고 있는 살인범도 있다. 더럽혀진 세상을 정화한다거나 신의 계시를 받았다거나 하는 명분을 내세우며 살인을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연쇄살인범들은 그냥 사람을 죽이는 것을 좋아해서 죽인다. 끝내 잡히지 않았던 미국의 연쇄살인범 조디악(Zodiac)은 '나는 사람 죽이는 것을 좋아한다, 즐거우니까'라고 쓴 편지를 공개적으로 보내오지 않았던가.

그들의 몸 속에는 뒤틀린 욕망이 자리 잡고 있다. 죽여야만 벗어날 수 있는 쾌락의 감옥이다. 희생자가 자신의 손 아래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희생자의 눈빛이 공포로 물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그들은 쾌감을 느낀다.

그 쾌감은 마약보다도 더한 중독으로 그들에게 다가간다. 그 중독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기에 그들은 연쇄살인범으로 변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살인에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서 정당화하려고 한다.

약자의 복수를 내세우는 연쇄살인범

<살인자의 편지>의 연쇄살인범은 자신의 살인을 가리켜서 '사적 처형'이라고 부른다. 사람을 죽이긴 죽이지만, 이 사회에 있어서는 안될 인간쓰레기를 자신이 직접 처형한다는 것이다. 법으로도 단죄할 수 없는, 법의 그물을 교묘하게 빠져나간 죄인을 자신이 심판하는 것이다.

살인범은 그렇게 연속으로 사람을 죽이면서 공개적으로 편지를 보내온다. 그 편지에는 발신자 주소도 없고 지문도 없다. 편지에서 살인범은 자신만의 논리를 늘어놓는다. 법은 사형을 통해서 주기적으로 약자들을 제거한다. 법은 약자의 폭력만을 단죄한다. 강자는 결코사형을 당하지 않는다. 때문에 약자도 생존이라는 거대한 사명 아래 강자를 파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언뜻보면 대충 말이 되는 이야기같다. 하지만 살인범은 이런 논리를 가지고 자신의 살인충동을 정당화하려고 또는 감추려고 한다. 대부분의 연쇄살인범이 그렇듯이 <살인자의 편지>의 살인범도 자신만의 패턴이 있다.

살인범은 시장에서 구입할 수 있는 빨랫줄로 마치 교수형을 집행하듯이 희생자를 목매달아 죽인다. 그전에 마취제를 이용해서 희생자를 무력화시킨다. 그리고 공중에 매달려서 죽어가는 희생자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다. 현장에는 아무런 단서도 없다. 지문도 없고 살인범의 정체를 알게 해줄 미량증거물도 거의 없다.

수사팀이 꾸려지고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되지만 살인현장은 의문투성이다. 희생자는 왜 아무런 저항없이 마취제를 맞았을까. 범인과 희생자는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범인은 어떻게 희생자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을까.

작가가 묘사하는 연쇄살인범의 내면

범인은 편지를 통해서 '어서 나를 찾아라'라고 말한다. 조디악이 '제발 나를 도와주세요'라고 호소했던 것처럼. 약자의 복수는 정당하다고 주장하지만, 어쩌면 범인도 자신의 살인행각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두려웠을 것이다.

작품 속에서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는 말한다. 범인에게 거창한 명분이 있더라도 그것은 오직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세상을 바꾸어놓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살인범도 그 사실을 안다. 살인이 거듭될수록 살인범은 혼란에 빠져든다. 범인은 편지를 통해서 '이 세상에 확실하게 존재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슬프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만들어낸 부조리극을 끝내려고 하는 것이다. 자수가 아닌 다른 방법을 통해서. 어쩌면 모든 연쇄살인범들은 이렇게 스스로 무너지는 것인지 모른다. 아무리 사람을 죽이는 것을 좋아해서 살인을 한다 하더라도, 그런 살인이 거듭되다 보면 쾌감 대신에 허무함만이 남는다.

그러다보면 자기안에 들어있는 괴물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온갖 이유를 대며 살인을 정당화했지만, 결국은 자기안의 괴물을 직시하게 된다. 연쇄살인범들은 그냥 죽이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더욱 두렵다.

덧붙이는 글 | <살인자의 편지> 유현산 지음. 자음과모음 펴냄.



살인자의 편지 - 제2회 네오픽션상 수상작

유현산 지음, 자음과모음(이룸)(2010)


#살인자의 편지#유현산#연쇄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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