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가는데 비닐장갑은 왜 끼지요?""아~ 이거요, 요즘 날씨가 너무 추워서 장갑 껴도 손 시리잖아요? 이렇게 비닐장갑을 먼저 끼고, 그 위에 방한장갑을 끼면 손이 안 시립니다."지난 주 수락산 등산을 가는 길에 지하철 안에서 만난 등산객의 말이다. 산이 가까워지자 남녀 등산객 몇 사람이 모두 손에 부엌에서 요리할 때나 사용하는 얇은 비닐장갑을 끼는 것이 아닌가. 등산객이 얇은 비닐장갑을 끼다니···.
그날 수락산 등산길에서는 손이 몹시 시렸다. 낮 기온이 영하 3도였으니 산 위의 기온은 더 낮았을 것이다. 제법 두툼한 방한장갑을 꼈지만 그래도 손이 시린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시린 손을 호호 불며 내려온 일행들은 이번 주 춘천에 있는 검봉산 등산길에서는 모두 비닐장갑을 끼고 그 위에 방한장갑을 꼈다. 기온은 비슷했다.
1월 12일, 경춘선 전철을 타고 가다가 백양리역에서 내려 골짜기를 따라서 검봉산을 향했다. 차가운 바람결에 얼굴이 따갑다. 골짜기 안쪽에서 능선으로 오르는 길로 접어들었다. 능선길은 바람결이 더욱 차가웠다.
"어~ 정말 손이 안 시린데. 귀는 얼얼하게 시려오는데 손이 정말 안 시리네.""어~ 나도 그러네, 비닐장갑이 효과가 있긴 있는 걸""효과가 있는 정도가 아니라, 이 정도면 효과가 매우 좋은 것 같은데"차가운 바람 속을 한 시간 정도 올라 잠간 쉬며 일행들이 놀랍다는 반응이다. 지난 주 등산 가는 길에 지하철 안에서 만난 사람들로부터 비닐장갑을 끼면 손 시릴 때 효과가 좋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반신반의 했었다. 그렇지만 어느 집에나 부엌에 비치되어 있는 비닐장갑이어서 실험 삼아 한 번 사용해봤는데 결과가 매우 좋은 것이 정말 놀라웠던 것.
검봉산 정상에 올라서자 멀고 가까운 산들이 새하얀 모습이다. 얼마 전부터 내린 눈이 계속된 추위에 녹지 않아 그대로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검봉산 정상에서 점심을 먹었다. 밥을 먹을 때도 비닐장갑은 유용했다. 맨손 보다는 비닐장갑을 끼고 먹으면 돼 손이 시리지않았다.
검봉산 정상에서 구곡폭포위의 오지마을인 문배마을은 2,3 킬로미터 거리에 있었다. 주말과 공휴일에는 많은 등산객들과 관광객들로 와글거리는 문배마을이었지만 날씨 추운 평일이어서인지 조용하기만 했다. 고즈넉한 문배마을을 둘러보고 고개를 넘어 구곡폭포로 내려갔다.
"우와~~ 저게 뭐야? 폭포가 온통 얼어붙어 빙벽이 됐잖아?"구곡폭포는 폭포가 아니라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돼 있었다. 골짜기 바닥에서부터 꼭대기까지 얼어붙은 빙벽에는 밧줄이 몇 가닥 늘어져 있고, 몇 명의 사람들이 그 밧줄을 의지해 빙벽을 오르내리고 있었다.
"어~ 저어기, 빨간 옷 입은 사람은 여자잖아?"밑에서 구경하던 여성들 몇이 놀랍다는 듯 탄성을 지른다. 까마득한 얼음 절벽을 오르는 사람들 중에 정말 빨간색 윗옷을 입은 사람이 보였다.
그런데 잠시 후 꼭대기까지 올랐던 그 사람이 주르륵주르륵 밧줄을 타고 가볍게 골짜기로 내려섰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정말 여성이었다. 힘들지 않느냐고 물으니 괜찮다고 한다. 몇 번이나 오르내렸느냐고 물으니 오늘은 사람들이 많아 두 번 밖에 오르지 못했다고 아쉬워한다.
빙벽타는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하산길로 나섰다. 해가 설핏 기울어져 그늘진 골짜기는 바람 끝이 더욱 뾰족하고 싸늘했다. 앞서 걷던 중년 여성들이 손이 시리다며 손을 입에 대고 호호 분다. 그런데 우리일행들은 비닐장갑을 낀 때문인지 손 시리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다음에 산에 올 때는 나처럼 이렇게 방한장갑 속에 비닐장갑을 껴 보세요. 훨씬 따뜻하고 손이 안 시립니다.""에게~~ 그까짓 얇은 비닐장갑이 뭐 얼마나 따뜻하겠어요?"내가 그녀들에게 가르쳐주자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믿기지 않는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들도 처음에는 그랬으니까. 그러나 그녀들도 다음 산행에선 분명히 비닐장갑을 끼고 올 것이다, 우리들처럼.
예전 같았으면 손이 시려 힘들었을 테지만 비닐장갑 덕분에 한결 따뜻하고 편하게 산행을 마칠 수 있었다. 추운 날 산행하는 사람들에게 비닐장갑을 권하고 싶다. 강촌역으로 내려오는 골짜기 입구에는 인공폭포에서 쏟아진 물이 멋진 형상으로 얼어붙어 오가는 등산객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