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미국 애리조나 주의 투산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으로 미국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6명의 사망자와 13명의 부상자를 낳은 이번 사건은 특히 무고한 9세 여자 어린이와 연방 판사의 사망, 그리고 공격의 직접 대상이 된 민주당 여성 의원의 중상으로 더욱 충격을 던져줬다.
범인인 22세의 제러드 리 러프너의 총격 배경을 놓고 차기 공화당 대통령 후보를 노리고 있는 새라 페일린의 선동적인 정치 공세가 범인을 자극했다는 비난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심심찮게 발생하는 총기 사건의 주역은 누가 뭐래도 '총'이다. 총을 구하기 쉽고 총이 가까이 있기 때문에 총이 화를 분출하고 공격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 중 하나로 보다 쉽게 선택되는 것이다.
외국인의 눈으로 보면 다른 나라들처럼 일반인들의 총기 소지를 금지하면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될 것 같다. 그러나 헌법에 보장된 총기 소지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강력한 로비와 이를 지지하는 정치인들 때문에 총기 규제를 강화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것이 미국사회의 현실이다.
모순적이게도 투산의 총격 사건은 오히려 사람들의 총기 구매 욕구를 높였다. 미연방수사국인 에프비아이(FBI)의 집계에 의하면 총격 사건 이틀 후인 지난 10일 애리조나의 하루 총기 매출액은 60% 급증했고 오하이오 주 65%, 뉴욕 주 33%, 일리노이 주 38% 등 다른 주에서의 매출도 높아졌다. 황당하게도 가장 많이 팔린 총 중 하나는 이번 총격 사건의 범인이 사용한 '글록 19'였다. 전문가들은 총기 구입이 급증한 이유는 구매자들이 이번 총격 사건으로 총기 규제가 강화되면 총을 구매하기가 힘들어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총기 소지와 공공안전의 상관관계는?투산의 총격 사건 일 주일 후 미국 언론들의 관심은 일제히 투산에서 해마다 열리는 총기 박람회로 쏠렸다. 현지 시간으로 지난 주말인 15~16일 양일간 열린 총기 박람회에는 일 주일 전의 비극적인 사건에도 불구하고 수천 명이 몰렸다.
박람회 주관 회사의 대표인 밥 템플튼은 엘에이 타임스(LA Times) 기자에게 박람회 연기를 고려했지만 예정대로 여는 것이 적절하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이번 총격 사건은 합법적인 총기나 총 박람회에 오는 사람들과는 상관이 없고 정신이 이상한 사람의 소행일 뿐이다. 지각 있는 사람들은 이번 사건과 합법적 총기 소지를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3억 명 중 한 명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모든 총기 소지자를 처벌할 수는 없다."박람회에서 부품을 팔고 있는 버트 스미스는 합법적 총기 소지가 오히려 공공 안전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총격 사건 당시 주변에 총을 가진 용기 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범인은 한발만 쏘고 끝났을 것이다."그러나 총기 규제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총격 사건 일 주일 후 박람회를 여는 것은 부적절하고 지각없는 일이라고 비난하고 비슷한 사건을 피하기 위해서는 총 구매를 규제하는 보다 강력한 법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총기 소지 찬성자들은 총기 규제는 헌법에 보장된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며 이번 사건의 범인인 러프너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근본원인은 총 자체가 아니라 그런 사람들을 잘 관리하지 못한 제도적 허점이라고 말한다. 또한 이들은 그런 사람들로부터 개인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총기 소지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총기난사 사건에도 총기규제는 제자리, 왜?
그러나 그간 일어났던 총격 사건의 희생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에게는 이런 주장이 무의미하다. 정신적 문제 유무에 상관없이 범인들은 총을 소지하고 있었고, 사건은 발생했으며, 희생자들은 이유도 모른 채 순식간에 총알받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설사 그들이 총을 가지고 있었다 해도 범인의 무차별 공격을 피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1999년 4월 20일, 콜로라도 주의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는 두 명의 학생이 총을 난사해 12명의 학생과 1명의 교사가 사망했고 24명의 학생이 부상 당했다. 2007년 버지니아 주의 버지니아 테크에서는 한국계 학생의 총 난사로 32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해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겨줬다.
2010년 한 해만도 몇 건의 사건이 발생했다. 6월 6일 마이애미 주의 한 식당에서는 한 남자가 식당에서 일하던 자신의 부인과 동료들에게 총을 난사해 4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당했으며 자신도 자살했다. 8월 3일 코네티컷 주에서 발생한 사건에서는 범인이 직장 동료들에게 총을 난사해 9명의 사망자와 2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11월 9일 켄터키 주에서는 부인에게 화가 난 남자의 총격으로 범인의 아내와 조카, 그리고 이웃 등 5명이 사망했다. 범인들 모두 자신의 화와 불만을 쏟아내기 위한 방법으로 총을 들었으며 대부분의 희생자들은 사건이 일어난 시간에 우연히 그 장소에 있었기 때문에 억울하게 총격을 당했다.
대형 총기 난사 사건 외에도 거리에서는 총격이 빈번하게 발생하며 미국인들조차 자신들의 폭력과 총기 문화가 위험 수준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총기 소지 찬성 단체들의 강력한 로비로 의원들조차 총기 규제 강화에 적극적이지 않다. 특히 공화당 의원들은 총기 규제보다는 여전히 총기의 올바른 사용과 정신적 문제가 있는 사람들의 철저한 관리를 주장하고 있다.
총기 소지 찬성자들의 논리는 무기로 무기를 막을 수 있고, 무기로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오래된 군사 논리와 맥을 같이한다. 그러므로 총기 소지 금지가 아니라 총의 올바른 사용이 권장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런 주장은 상황에 따라 선한 또는 악한 목적으로 사용되는 다른 도구들과는 달리 총은 애초에 생명이 있는 목표물을 살상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라는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
미국은 세계에서 일반인들의 무장 수준이 가장 높은 나라, 총기로 인한 무고한 사람들의 희생이 가장 빈번한 나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총기 소지에 대한 개인의 자유와 권리라는 핑계로 개인의 안전과 행복의 추구라는 기본 권리가 무시되는 나라라는 오명을 안고 있다. 그러나 식민지 시대부터 뿌리내린 총기 문화와 군사 문화, 그리고 거대한 무기생산업계와 로비 단체들의 이권 때문에 무척 유감스럽게도 미국에서는 앞으로도 대형 총격 사건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