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킹은 아무래도 '고립'이라는 상황을 좋아하는 듯 하다. 스티븐 킹의 작품들 중 몇몇에는 주위로부터 고립되는 누군가 또는 무언가가 등장한다.
<캐리>에서는 미쳐버린 개에게 쫓기던 모녀가 망가진 승용차 안에 갇힌다. <샤이닝>에서는 폭설로 인해서 주위로부터 차단된 텅빈 호텔에 한 가족이 고립된다. <톰 고든을 사랑한 소녀>에서는 소풍 도중 가족을 잃은 9살 여자아이가 혼자 광활한 숲속을 헤맨다.
혼자건 여럿이건 주위로부터 고립되면 아무래도 그 사람의 본성이 나오기 마련일 것이다. 상황을 타개하려고 노력할 수도 있고 자포자기 상태가 되서 아무것도 안 할 수도 있다. 울면서 엄마를 찾거나 아니면 진짜로 미쳐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스티븐 킹은 사람들을 이렇게 극단적인 상황에 몰아넣고 그 인물들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가만히 지켜보는 것을 좋아한다. 등장인물들이 어떻게 변해갈지는 스티븐 킹도 모른다. 인물을 만든 것은 작가지만, 만들어진 다음부터는 그 인물들이 스스로 말하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돔 아래에서 벌어지는 욕망과 갈등
<언더 더 돔>에서도 고립이라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번에는 좀 더 스케일이 크다. 미국에 있는 한 마을 체스터스밀이 통째로 주변으로부터 차단된 것이다. 체스터스밀은 인구 천 명 정도의 작은 마을이다. 마을 주민 중에서 아시아계는 딱 한 명이고 흑인은 아예 없다.
마을에는 스타벅스커녕 맥도날드도 없고 하나 있던 극장은 문을 닫았다. 마을 주민들 상당수가 수십 년 동안 이곳을 떠나지 않고 있는 토박이들이다. 저녁이면 술집에 모여서 보스턴 레드삭스 야구팀을 응원하고 젊은 사람들 일부는 술과 함께 약물을 즐기기도 한다. 겉으로는 나름대로 평화로워 보이는 곳이다.
이 마을이 어느날 갑자기 투명한 돔에 갇힌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한 돔은 마을의 경계면을 따라서 빙 둘러져있고, 날아가는 비행기가 들이받아도 끄떡없을 만큼 단단하다. 이 투명장벽은 위아래로 길쭉하기 때문에 돔이라기 보다는 투명캡슐에 가깝다. 위아래가 꽉 막힌 원통형 락앤락에 한 마을이 갇혔다고 보면 된다.
마을의 주민들은 당연히 혼란스럽다. 그 혼란은 점점 두려움으로 변해간다. 어쩌면 평생동안 이 돔안에 갇혀서 살아야 할지 모른다. 아니 마을안에 보관된 식량과 물자가 한정되어 있으니 그것이 다 바닥나면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지도 난감하다.
이렇게 극단적인 상황에서 주민들이 서로 협조하고 뭉치면 그나마 위로가 되겠지만, 짓궂은 스티븐 킹이 만든 인물들은 그 반대로 행동한다. 마을의회 의장과 부의장 등 마을의 중심인물들은 이 와중에 자신들이 권력을 잡기 위해서 노력한다. 돔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돔이 사라질 때 까지는 외부사람이나 군대가 들어오지 못한다.
그때까지 체스터스밀은 권력과 경찰력을 가진 사람들의 독무대가 된다는 의미다. 법과 상식도 통하지 않고 최소한의 원칙도 없다. 돔에 의해서 보호(?)를 받는 이상 힘을 가진 사람이 곧 법이 되는 세상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 돔은 언제 어떻게 없어질까? 아니 돔이 없어지기 전에 체스터스밀에서는 어떤 일들이 발생할까?
작가가 보여주는 인간의 공포
스티븐 킹의 작품들 속에서는 선량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가혹한 대접을 받는 경우가 많다. 물론 마지막에는 그들이 승리를 거두지만, 그때까지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다. 뭔가를 바로잡으려는 사람들은 폭행당하고 협박받고 가진 것을 송두리째 잃는다. 그것도 부족해서 권력자들은 그런 사람들을 더욱 나락으로 떨어뜨리려고 한다.
하긴 선한 사람들의 인생이 처음부터 끝까지 잘 풀려나간다면 그것은 '세서미 스트리트'의 세계지 공포소설가의 무대는 아닐 것이다. 그렇더라도 작품속에 등장하는 평범한 주민들에게 감정을 이입시키고 읽다 보면 안타깝고 분한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어쩌면 그것도 작가의 노림수였을 것이다. 그래야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할테니까.
'평화롭던 일상이 갑자기 공포로 돌변하는 것', 이것은 스티븐 킹이 자주 사용하는 구도다. 작가는 독자들에게 하루하루의 일상이, 행복하지는 못하더라도 나름대로 안정적인 일상이 언제 파괴될지 모른다고 말을 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 '파괴되면 어떻게 할래?'라고 묻고 있다.
<언더 더 돔>도 마찬가지다. 이 작품에서 일상을 파괴하는 것은 정체불명의 돔이 아니라 인간이 가지고 있는 탐욕과 어두운 욕망이다. 역시 무서운 것은 귀신이나 괴물이 아니라 사람이다. <언더 더 돔>을 읽다 보면 이를 확실히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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