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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옌데 전 칠레 대통령의 사인에 대한 조사가 38년 만에 이뤄진다고 보도한 <알 자지라>. 사진은 대통령으로 당선된 1970년 당시의 모습이다.
 아옌데 전 칠레 대통령의 사인에 대한 조사가 38년 만에 이뤄진다고 보도한 <알 자지라>. 사진은 대통령으로 당선된 1970년 당시의 모습이다.
ⓒ <알 자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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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9월 11일, 칠레 산티아고의 라디오에서 이상한 방송이 나왔다.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는 내용이었다.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방송과 달리 날씨가 화창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이상한 방송은 사실 쿠데타군의 암호였다. 군 사령관 피노체트가 주도하고 미국이 지원한 이 쿠데타는 세계 최초로 선거를 통해 세워진 합법 사회주의 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었다.

1970년 좌파 인민연합 후보로 당선된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은 구리 광산을 국유화하고, 노동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사회적 기업을 늘려갔다. 그러자 칠레 우파는 물론 구리를 비롯한 칠레의 풍부한 천연자원을 사실상 통제하며 알맹이를 빼가던 미국 자본이 거세게 반발했다.

또한 라틴아메리카를 자신들의 앞마당으로 여기던 미국 정부는 칠레의 사회주의 정부를 노골적으로 견제했다. 헨리 키신저 미국 국무장관은 "칠레 유권자들이 스스로 결정하도록 내버려두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들이 있다"며 "그 사람들의 무책임으로 인해 칠레가 공산주의를 향해 나아가는 걸 우리가 지켜보고 있어야 하는 이유를 난 모르겠다"고 말했다.

결국 미국은 지켜보고만 있지 않았고, 미국을 등에 업은 쿠데타군은 아옌데 대통령이 머물던 모네다궁으로 밀려들었다. 그러나 아옌데 대통령은 쿠데타군에게 항복하지 않았다. 철모를 쓴 아옌데 대통령은 쿠바 지도자 카스트로가 선물한 기관총을 들고 쿠데타군에 맞서 싸웠다. 쿠데타군은 모네다궁과 국영 라디오 방송인 '라디오 마가야네스'를 폭격했다.

그리고 얼마 후, 아옌데 대통령은 모네다궁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총알이 머리를 관통한 모습이었다. 쿠데타 세력은 부검 결과 자살로 밝혀졌다고 발표했다.

몇몇 정치인들과 인권 단체에서는 쿠데타 세력의 발표에 대해 오랫동안 의문을 제기해왔다. 직접 기관총을 들고 쿠데타군에 맞서 싸운 아옌데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을 믿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아옌데가 그렇게 세상을 떠난 후, 피노체트는 수많은 사람들을 처형하며 칠레를 피로 물들였다. 피노체트는 1990년 3월 11일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났고, 그 이듬해인 1991년 칠레 진실위원회는 피노체트 독재 권력이 1973년부터 1990년까지 3797명을 죽였다고 보고했다. 그 후 피노체트 집권기에 벌어진 인권 침해와 관련해 수백 건의 고소가 이뤄졌다. 이 중 대부분은 이미 조사가 이뤄졌고, 그에 따라 약 600명의 군부 인사들과 소수의 시민사회 공범들이 법정에 서야 했다.

그러나 아옌데 대통령의 사인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의문은 계속됐고, 그렇게 38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역사의 진실 규명 작업에 차질 빚은 한국과 다른 모습 보이는 칠레

아옌데 대통령의 사인에 의문을 품었던 이들에게 단비 같은 결정이 내려졌다. 아랍 언론 <알 자지라>는 28일(현지 시각) 칠레에서 처음으로 아옌데 대통령의 사인에 대해 조사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조사는 1973년부터 1990년 사이에 인권 침해로 사망한 이들 중 지금까지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726명의 죽음의 진상을 규명하는 작업의 일환이다.

이 726명에 대한 조사는 마리오 카로자(Mario Carroza) 판사가 맡는다. 인권 침해 사건을 이미 수백 건 다룬 경험이 있는 카로자 판사는 이번 조사에 대해 "아주 중요하며, 어마어마한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아옌데 사회주의당' 당수인 오스발도 안드라데(Osvaldo Andrade)는 이번 결정을 환영했다. 안드라데는 "칠레에서 진실과 정의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남아 있으며, 진실을 밝히기 위해 취하는 모든 조치를 우리는 항상 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칠레에서는 1973년 당시 모네다궁 밖에서 쿠데타군에게 항복한 후 행방이 묘연해진 아옌데 동료들의 죽음에 대한 조사도 이뤄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과거사 진상 규명 작업이 차질을 빚은 한국과 달리, 칠레에서는 "당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최종적으로 규명하겠다"는 방침 아래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작업이 여전히 진행형이다.

한편 피노체트는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난 후인 1998년, 집권기에 에스파냐 국민을 살해한 혐의로 에스파냐 법원의 요청에 따라 영국에서 체포되기도 했다. 그러나 피노체트와 친분이 깊던 대처 전 영국 총리가 '피노체트 체포는 내정간섭'이라며 석방을 요구하고 피노체트의 건강이 지극히 악화된 것 같은 모습을 보이자, 영국은 피노체트를 칠레로 보냈다.

그 후 피노체트는 천수를 누리다 2006년에 사망했다. 피노체트에 대한 법적인 단죄는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아옌데#피노체트#9.11#쿠데타#과거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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