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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머니,  제가 참 못났어요. 집사람의 음식 솜씨가 어머니를 닮아서 딱히 밥투정
할 일도 없지만은 사실은 집사람 고생하는 게 안타까워 찬이 부실해도 말을 못하
지요. 오늘은 도시락을 싸오지 못해 점심 한 끼는 가래떡에 화천에서 올라온 조청
꾹 찍어 먹는 것으로 때웠어요. 그런데 말이지요, 가래떡에 듬뿍 찍은 조청을 보
면서 옛날 어머니 치마꼬리 잡고 다니던 어릴 적 생각이 나지 뭐예요.

가래떡. .
가래떡.. ⓒ 조상연

설이 지나고 나면 할머니는 시렁에 딱딱하게 굳어있는 가래떡을 꺼내어 화롯불에
구워주시고는 했지요. 그러면 어머니는 벽장에서 조청을 한 종지 소복하게 따라내
어 할머니의 눈치를 보며 제 무릎 밑으로 밀어놓으시고는 했지요. 그래도 할머니
는 아무말씀 안하셨어요. 아재가 그렇게 조청을 달라고 해도 눈을 부라리며 종 주
먹질만 하시고 내어주시지 않던 조청인데요. 저는 굵은 가래떡을 통째로 구워 조
청을 찍어먹는 게 당연했고 아재는 화로 속에서 달궈진 인두 밑바닥에 딱딱한 떡
을 밀면 종잇장처럼 일어나는 것을 떼어먹고는 했지요. 한번은 할머니 마실 가시
고 어머니 장에 가셨을 적에 아재랑 둘이서 벽장 속 조청을 꺼내려고 베게 위에
올라서서 꺼내다가 단지를 깨트려 할머니께는 어머니가 누명을 쓰시고 대신 혼나
셨지요.

그리고 어머니 원기소 아시지요? 영양제인데 먹으면 구수한 게 오줌이 샛노랗게
나오고는 했지요. 제 생각에 원기소는 떨어지지 않게 어머니가 사다주셨던 것 같
아요. 아무나 흔하게 먹는 것은 아니었는데 장날 상연이 원기소 떨어졌다고 하면
할머니가 광에서 쌀을 따로 퍼주시고는 했던 기억이 납니다. 언젠가 아재가 뒤란
에서 오줌을 싸는데 제 원기소를 얼마나 훔쳐 먹었는지 우물가 앵두나무 밑이 노
랗게 물들고는 했지요. 할머니 그것을 보시고는 "저놈새끼 우리 장손 원기소 훔쳐
먹었다" 하시며 지게 작대기 들고 쫓아다니시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가래떡과 조청 .
가래떡과 조청. ⓒ 조상연

어머니 오늘 아우가 다리 수술을 했습니다. 원기소 먹고 화롯불에 구운 가래떡 조
청 찍어먹으며 칭얼대던 아들들이 벌써 나이 오십이 넘고 병원을 들락거릴 만큼
세월이 흘렀습니다. 저는 그래도 천만다행인 것이 아직은 어머니 앞에 큰 병이 없
었고 어머니 보기 민망한 희끗한 머리 한 올 없다는 걸 나름대로 위안 삼습니다.
그런데 요즘 어머니가 저 때문에 걱정이 있으시다는 말을 큰 딸을 통해서 들었습
니다. 딸아이가 어머니께 놀러갔는데 어머니께서 "애비 요즘도 술 마시느냐?" 는
물음에 요즘은 많이 안 마신다니 어머니의 걱정이 대단하셨다는 얘기를 하더군요.
어머니 앞에서 항상 말술을 마시는 모습만 보여드렸기에 저의 건강을 술의 양으로
가늠을 하시는 것 같다는 큰애의 얘기를 듣고 그냥 웃고 말았습니다만 어머니가
걱정하실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어머니와 아들 삼형제. .
어머니와 아들 삼형제.. ⓒ 조상연

암튼 오늘 난로에 구운 가래떡에 조청을 찍어먹으며 어렸을 적 어머니와의 추억을
떠올려 봤습니다. 아우 녀석은 전화를 해보니 수술이 잘 되었답니다. 저는 그저
어머니 아버지 건강이 걱정 될 뿐이어요. 그리고 어머니, 평생 소원이던 예쁜 누
이가 하나 생겼습니다. 지난번 너무 예뻐 입기 아까우시다든 잠자리 날개 같은 어
머니의 옷을 사준 처자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아가씨지요. 경화엄마가 귀뜸은 해
드린 줄로 압니다만 만나 뵙고 자세히 말씀드리지요. 며칠 후 아우가 퇴원하걸랑
돼지고기 몇 근 끊고 까만 봉다리 소주 몇 병 흔들며 아우와 함께 찾아뵙겠습니다.
아우 퇴원하는 날까지 평안하시어요 어머니.

덧붙이는 글 | 난로위의 오랗게 익어가는 가래떡을 보다가 문득 어린시절이 생각나 어머니께 편지를 써보았습니다. 이 편지는 손으로 써서 어머니께 부칠 생각입니다. 제가 군에 있을 때 저에게 편지를 쓰시고자 한글을 배우신 어머니시지요.



#어머니#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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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단어로 짧고 쉽게 사는이야기를 쓰고자 합니다. http://blog.ohmynews.com/han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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