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를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
"중국판 마타하리라며?" "피식... 한국판 '색계'래."9일 낮 서울 세종로 외교통상부 건물 1층 직원식당. 점심을 먹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 속에서 직원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자리에 앉아서 식사를 하면서도 줄곧 '상하이'를 반찬으로 얘기하면서도, 주위 사람들이 들을까 봐 주위를 살피는 눈빛이 역력했다.
외교부의 한 직원은 "남의 얘기를 잘 하려 하지 않는 공무원들의 특성상 평소와 다름없이 일하고 있다"면서도 "신문에 난 사진에 모자이크를 했어도 언뜻 보니 누군지 다 알겠더라"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한 고위 관리도 "외교부가 터가 나쁜 건지 왜 자꾸 이런 일이... 그야말로 초상집이 따로 없다"고 말했다.
"고개를 못들 희한한 사건" "치욕적 사건"최고 엘리트들이 모인 곳으로 자부하는 외교통상부 직원들에 망신살이 뻗쳤다. 대한민국이 떠들썩한 '상하이녀 스캔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럴 만도 하다. 대한민국을 대표해 외국에 나가 국위를 선양해야 할 외교관들이 현지인 유부녀를 두고 쟁탈전을 벌이는가 하면, 미인계에 넘어가 외교관의 생명과도 같은 국가 기밀을 유출한 의혹에 휘말렸으니 말이다.
이날 김성환 외교장관은 오전 내내 국회에서 성난 의원들에 둘려싸여 추상 같은 질타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연신 "동의한다", "송구스럽다"며 고개를 숙여야 했다.
의원들은 "국민들에 고개를 못들 만큼 희한한 사건"(한나라당 구상찬 의원), "전 외무 공무원의 위신을 실추시키는 치욕적 사건"(민주당 박주선 의원), "외교부는 인사뿐 아니라 총체적 기강해이"(민주당 김동철 의원)라고 질타했다.
장관 딸 특채파동 이후 반 년만에 다시 위기사실 외교부로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6개월 전 외교부는 유명환 전 장관이 자신의 딸을 특채했던 사건으로 큰 홍역을 치러야 했다. 그것도 다른 지원자들이 자격미달이라며 전원 탈락시키고 모집절차를 다시 진행해 현직 장관의 딸을 뽑은 것이다.
유 장관의 낙마 후 새로 취임한 김성환 장관은 취임 일성으로 "공정한 인사제도와 과감한 조직 쇄신으로 특혜를 없애고 능력 위주의 인사를 시행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는 등 '공정한 외교통상부'를 모토를 내세우고 조직쇄신 작업을 벌였다.
그 열매로 지난 1월 고위직이 일방적으로 인사를 낙점하는 방식 대신 인사위원회를 통해 심의를 거쳐 확정하는 '드래프트제'를 적용한 인사를 발표하는 등 새로운 실험을 하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이런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했으니 외교부 입장에선 뼈아플 수밖에 없다. 한 고위 당국자는 기자들을 만나 "새로운 시스템으로 바꿔나가는 와중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며 아쉬워 했다.
게다가 한-EU FTA 협정문에 잘못된 번역이 수두룩하다는 보도까지 겹쳐 외교통상부는 낯을 들 수 없게 됐다.
"엄중히 인식" "철저한 반성"... 그러나"현 상황을 엄중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하고 외교부가 반성해야 할 부분에 대해서는 철저한 반성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조직이 거듭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2010년 9월 5일 특채파동 직후 외교부 긴급간부회의)"외교통상부 주요 간부들은 지금 상황을 아주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이를 계기로 외교통상부 전 직원들은 복무기강을 재확립하고 국민들의 신뢰를 다시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2011년 3월 9일 외교부 간부회의)6개월 전 장관 딸 특채 파동 때 발표한 것과 오늘 외교부 대변인을 통해 나온 내용이 마치 베껴놓은 듯 놀랍도록 똑같다.
이날 회의에서 외교부는 ▲ 상하이총영사관에 대한 총리실-외교부 합동감사 ▲ 전 재외공관업무 특별점검 ▲ 빠른 시일내 전 직원 연찬회 개최 복무교육 강화 ▲ FTA 협정문 오류 구체적 개선조치 별도 발표 등의 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간부들이 모여 애써 내놓은 대책들이 그리 믿음직스럽지 않은 건 기자만의 생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