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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이층에서 떨어져 골반에 3개의 나사를 박는 수술을 마치고 수술실에서 나오자마자 베시시 웃었던 송인상 녀석. 당분간은 휠체어 신세를 져야 하기 때문에 곰순이와 함께 바닷가에서 놀지 못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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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효 아빠! 큰일 났어, 빨리 와!"주소나 전화번호도 없이 광주에서 지도 하나만 달랑 들고 찾아온 손님과 함께 올해 들어 처음 갯바위 낚시를 나서는데 아내로부터 다급한 손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왜! 왜 그러는데 천천 말해봐!""인상이가 학교 이층에서 떨어졌대!""뭐라구? 에이참, 머리는 안 다쳤구?""머리는 괜찮은 거 같다는데 잘 모르겠어, 어떻게 해, 지금 병원으로 가고 있는 중이래!"껑충 껑충 갯바위를 뛰어넘는 두 다리에 힘이 쏙 빠져 나갔습니다. 허겁지겁 집으로 돌아와 대충 채비를 갖춰 아내와 함께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고흥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송인상 녀석은 엑스레이실에 들어가 있었고 그 앞에서 담임선생님이 긴장된 낯빛으로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인상이가 일어서지 못해 앰뷸런스를 불러왔습니다.""잘 하셨네요. 머리는 괜찮지요?""예, 옆으로 떨어져서 머리는 이상이 없는 거 같습니다.""천만다행이네요.""예. 천만다행지요""아이구 선생님, 걱정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병원 침대에 누워 엑스레이실에서 나온 녀석이 겸연쩍은 표정으로 옅은 미소를 내보였습니다.
"괜찮아?""응, 괜찮아.""많이 아프지?""아니 그냥, 엉덩이 쪽이 좀 아퍼."녀석의 머리를 비롯한 전신을 훌터 보니 외상은 전혀 없었습니다. 옆으로 떨어지면서 손을 짚는 바람에 오른쪽 손목이 뚱뚱 부어올라 있었습니다. 골절된 손목은 깁스를 하면 금방 아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허리가 문제였는데 정형외과 담당의가 엑스레이 사진을 보면서 다행히 허리도 이상이 없다고 합니다.
"손목은 크게 문제가 없는데 여기, 골반 뼈 보이시죠? 여기가 문젭니다. 골반이 골절 됐어요.""어떻게 해야 돼죠?""수술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이층에서 떨어지면서 그 충격으로 옆으로 튀어 나온 골반 뼈를 바로잡기 위해 3개의 나사를 박아놓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녀석의 어린 뼈 속에 나사를 박아 넣는다는 끔찍한 말에 정신이 아찔했습니다.
"성장 뼈에는 영향이 없습니까?" "다행히 크게 골절되지 않아 성장에 지장 없이 수술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후유증은 없나요?""후유증은 없고 어리기 때문에 쉽게 완치 될 것입니다. 나사를 박아 뼈를 고정시키는 아주 간단한 수술이니까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얼마나 걸립니까?""두 달 가까이 입원해서 당분간은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할 것 같네요. 손목 때문에 목발을 짚을 수가 없으니까요."사고가 난 시간으로 부터 서너 시간 만에 곧장 수술을 하기로 했습니다. 아빠 엄마의 불안한 표정 때문이었을까? 사고를 낸 것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의 뼈 속에 나사를 박아 넣는 수술에 대한 공포감 때문이었을까? 수술 시간을 기다리며 녀석은 질금질금 눈물을 보입니다.
"인상아 걱정하지 마, 금방 끝나는 수술이니까. 마취하고 나면 하나도 안 아퍼."수술실로 들어서는 녀석이 언제 울었냐는 표정으로 내게 불안한 미소를 흘려보냅니다. 걱정하지 말라는 표정 같기도 합니다. 아내는 방과 후 학습 지도 시간에 맞춰 병원을 떠났고 수술실 앞에 홀로 앉아 불안한 마음을 가다듬어 가며 길게길게 호흡을 해봅니다.
수술할 때 전신 마취가 아닌 하반신 마취만을 하기로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머릿속이 몽롱해지고 녀석의 골반 뼈에 나사가 박히는 느낌이 내 골반 뼈로 고스란히 전해져 옵니다. 한 시간 반이면 끝난다는 수술이었는데 두 시간이 넘어서도 녀석이 나오질 않습니다. 점점 불안감이 압박해 옵니다. 그럴수록 배꼽 아래에 마음을 모아 길게길게 호흡을 해봅니다.
아내가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도착할 무렵이 되어서야 수술실 문이 활짝 열였습니다. 수술실에 들어간 지 두 시간 반이 지나서였습니다. 녀석의 얼굴에 핏기가 없습니다. 그런데 녀석이 배시시 웃고 있습니다. 녀석의 미소에 목울대가 떨려옵니다. 눈가에 맺히는 물기를 꾹꾹 밀어 넣었습니다.
녀석 스스로 고통과 불안감을 감추려는 미소였는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수술실 밖에서 기다리는 지 애비 애미 걱정을 덜어 주려 했을지도 모릅니다. 간난아기 때에도 거져 키우다시피 했던 녀석입니다. 야밤에 일어나 보채지 않고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혼자서 놀았던 녀석이었습니다.
"인상아 괜찮아? 안 아퍼?""응, 재밌네 뭐."서너 살 무렵에는 예방접종 주사를 맞고도 끄떡없었던 녀석이었습니다. 큰 아이 인효 녀석은 간호사가 주사기만 들어도 울음보를 터뜨렸는데 인상이 녀석은 울음은 고사하고 엉덩이를 찌르는 주사바늘조차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습니다. 녀석의 엉덩이에 주사를 놓은 간호사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주사기를 다시 쳐다 볼 정도였습니다.
병실에 들어서도 녀석은 크게 고통스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마취가 풀려나가는 밤새 낑낑 거리는 고통의 소리조차 없이 곤히 잠들었습니다. 덕분에 나 역시 큰 근심 없이 잠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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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한창 기타에 재미 붙인 송인상. 오른족 손목 골절로 당분간 기타를 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녀석은 골반뼈에 쇠를 박는 고통조차 잘 이겨내고 있어 금새 기타를 칠 수 있을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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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일어서서 혼자 오줌을 눌 수 없어 작은 소변 통을 이용해 내 도움을 받아야 했습니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고추 보이기를 질색했던 녀석이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고추를 내밀어야 했습니다. 167센티미터의 키에 60킬로그램, 중학교 3학년 열여섯 살에 불과한 아직 어린 녀석이라 생각했는데 녀석은 어느새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다음날 아침부터 밥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녀석은 언제 수술했냐 싶게 상체를 일으켜 숟가락질이 힘든 왼손으로 우걱우걱 밥을 먹습니다. 반찬까지 말끔히 식기를 비워 냅니다.
녀석이 그 말 할 수 없는 고통을 그토록 대견스럽게 참아 낼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어려서부터 '밥돌이'로 불렸던 녀석이었듯이 밥의 힘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김치 하나로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워냈던 녀석입니다. 그 무엇보다도 밥을 좋아 했던 밥돌이 녀석에게 엄마 아빠는 가끔씩 장난삼아 묻곤 했습니다.
(오마이 뉴스 2003.02.11 기사 참조 '인상이가 밥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인상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아?""엄마.""왜?""밥 해주니까.""그 다음에는 누가 좋아?""아빠.""아빠는 왜 좋은데?""엄마 아프고, 또 어디 갔을 때, 엄마 대신 밥 해 줄 때도 있잖아."녀석의 성장기가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두 살 무렵부터 시골생활을 했던 녀석은 주변에 꼬물거리는 뭇 생명들을 친구삼아 늘 산에서 놀다시피 했습니다. 산에다가 학교를 지어달라고까지 했던 녀석이었습니다.
(오마이 뉴스 2003년 03.04 기사 참조 '산에다 학교 지어놓고 공부하면 안 돼?"') 따지고 보면 녀석이 자신에게 닥친 큰 시련과 고통을 이겨내고 있는 그 힘은 '밥심'으로 자연을 친구 삼아 성장했던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녀석은 충남 공주 시골에서 13년을 보내다가 중학교 2학년에 들어서면서 전남 고흥으로 이사 왔습니다. 사투리조차 낯선 중학교로 전학 온 첫날, 난생 처음 대하는 1, 2학년 아이들과 어울려 숨바꼭질 놀이를 했다는 송인상 녀석. 말수가 없으면서도 엉뚱하기로는 땡초 못지않은 밥돌이 녀석이 기운을 챙기는 모습을 보면서 내내 궁금했던 것을 물었습니다.
"수술하고 나와서 왜 재밌다고 한겨?""그냥."녀석은 늘 그랬듯이 짧게 대답만 합니다.
"너 수술할 때 하반신만 마취하기로 했으니께 수술하는 게 보였겠다 잉.""아니, 천으로 가려져서 안 보였어""그런데.""그냥, 수술하고 있는 게 재밌었어."아직 녀석에게 묻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녀석이 왜 무엇 때문에 이층에서 떨어졌는지, 고의적으로 뛰어 내리려 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했지만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이미 엎지러진 물, 그 이유를 꼬치꼬치 따져 무엇하겠습니까?
그 잘못은 그 누구보다 녀석이 뼈속깊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고 더 이상 이층에서 뛰어 내릴만한 무모한 모험을 감행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그 무모한 모험에 대한 고통은 녀석이 살아가면서 그 어떤 식으로든 큰 힘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그 힘으로 다른 사람의 고통까지 껴안을 수 있는 두려움 없는 세상을 살아가길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