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가득 쌓인 조그마한 수첩은 뭐랍니까?"
"외상장부예요, 인근 직장과 관공서 직원 60여 명이 대놓고 먹어요."계산대 위에 외상장부가 빼곡하게 놓여있다. 인근 직장과 관공서 직원 60여 명의 외상장부다. 이들은 아예 이집(밀알식당)에서 점심을 대놓고 먹는다. 이집은 날마다 먹어도 물리지 않는 맛을 내는 아주 특별함이 있기 때문이다. 이름 하여 맛집이다.
신용카드 보급 이후 사라진 줄 알았던 외상장부를 다시 보니 왠지 모를 애틋함과 그리움이 물결친다. 누구나 예전에 부모님 심부름을 하거나 직장 생활하면서 기록했던 외상장부에 대한 추억이 있을 것이다. 밥을 먹거나 물건을 구입한 후 외상값을 적어 두었던 자그마한 수첩 외상장부를. 이식당의 외상장부도 그 옛날처럼 한 달에 한 번씩 정리를 하곤 한다.
밥상은 아주 평범하다. 넘쳐나지도 화려하지도 않지만 진실함이 담겨있다. 어머니의 손맛이 오롯이 살아있다. 매일 우리가 집에서 먹는 집밥, 바로 그것이다. 인공조미료로 입맛을 속이지도 않는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세 끼니를 연속 먹은 후 다시 가려면 글쎄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헌데 날마다 대놓고 먹는다는 건 그만큼 음식이 신선하고 입맛을 사로잡는다는 반증일 게다.
착한 가격에 메뉴도 아주 다양하다. 국내산 재료만으로 조리한 김치찌개가 6천 원, 조기매운탕과 동태찌개, 된장찌개와 돌솥밥도 6천 원이다. 다양한 메뉴가 있어서 선택의 폭도 크고 한 끼니 때우기에는 그야말로 안성맞춤인 곳이다.
이집은 또한 주 5일 근무로 유별난 곳이다. 식당의 위치가 여수시청 옆이다. 그런 연유로 주 고객인 공무원들이 쉬는 주말에는 문을 열지 않는다.
"우리 식당도 주5일 근무입니다. 시청과 직장인들이 쉬는 날에는 찾는 사람이 없어요."
주문한 돌솥비빔밥이 나왔다. 달궈진 돌솥에서 정겨운 음악소리가 들려온다. 어떤 이는 이 소리를 빗소리에 비유하기도 한다. 부침개 지지는 소리와 아주 흡사하다.
찬은 아주 깔끔하다. 된장에 조물조물 무쳐낸 유채나물에서 봄내음이 물씬하다. 깍뚝 썰어 갖은양념에 무쳐낸 오이반찬, 쪽파와 함께 담아낸 겉절이 배추김치는 잃어버린 입맛까지 되살려낼 정도다.
무장아찌는 간이 제대로 배었는데도 자극적이지 않고 삼삼하니 좋다. 모든 반찬에서 맛의 깊이가 느껴진다.
돌솥 바닥에 담긴 밥은 꼬들꼬들하다. 계란 프라이와 나물을 쓱쓱 비벼 한술 뜨니 그 맛에 스스로 감탄한다. 어릴 적부터 먹어왔던 고향집의 밥상에서나 느껴볼 수 있는 순수함이 담겨있기 때문일 거다. 이런 게 진정한 행복밥상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이집의 단골이라는 신진희 아주머니는 "요집의 주방장님은 맨날 아침마다 식재료를 사서 맹근께 쌈빡하고 맛있어요"라고 말했다. 그렇다. 풋풋함이 살아있어 식재료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쌈빡한 싱그러움이다.
어머니의 손맛이 스며있는 음식은 이렇듯 먹을수록 행복하다는 것이다. 평범해 보이고 아주 작게 느껴지는 미묘한 차이지만 맛이 제대로다. 6천 원의 밥값을 지불하고 나서려는데 왠지 미안함에 머쓱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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