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두가 유행이라는 뉴스를 접하자마자, 딸아이의 몸에서 붉은 반점이 발견되었다. 설마~ 했으나, 시간이 지나니 이 반점은 곧 발진으로 변해 끝 부분에 물집이 잡히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집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삐뽀삐뽀 119'를 들쳐보니, 책에 나온 사진과 생긴 모습이 똑같았다.
우리 딸은 '삐뽀삐뽀 119'를 '아픈 책'이라고 칭하고 있고, 내가 이 책을 보고 있는 것을 너무 싫어한다. 자기가 몸 상태 좋지 않을 때 보는 책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예방접종은 맞은 상태이긴 하지만, 주위에 예방 접종과 상관없이 심하게 앓는 친구들을 많이 봤었기에 걱정이 되었다.
이런 엄마, 아빠의 걱정이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나보다. 아이는 울기 시작했고 병원을 싫어가는 아이는 '병원 안가'라고 소리쳤다. 책에서 나와 있는 수두 처방은 열이 있을 경우 해열제와 가려움을 덜어주는 칼라민 로션 정도라고 적혀 있었다.
이 정도 처방이라면 굳이 병원을 안 가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고, 아이에게도 물집을 손대지 않으면 병원 안 가도 된다고 안심시키고 재웠다.
다음날 아침, 물집의 수가 많이 늘어나 있었다. 수두라는 자가 진단이 확실하다 믿고 어린이집 대신 시댁에 아이를 맡기게 되었다. 병원 안 가도 되겠냐는 시부모님의 걱정에 '책에서 확인해보니 별 처방이 었다고 하더라'고 전한 후 출근했다.
몇몇 선생님들께 아이가 수두라 걱정된다는 속상한 마음을 털어 놓으니, 병원 가야 된다며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귀가 너무도 얇은 나는 흔들렸고 결국 약사인 회원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약사님의 답변은 너무도 명쾌했다. 병원 가봐야 처방전이 필요 없는 약만 처방해준다며 굳이 병원까지 갈 필요가 없다고 일축하였다. 너무 예민하게 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하시며, 때로는 항쟁제를 처방하기도 하는데 수두는 그렇게까지 치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시원한 대답에 위로를 받고, 병원에 보내지 않은 채 아이가 수두를 앓게 놔두었다. 너무 심하게 가려울 때는 춤까지 추면서 참는 아이를 보며 안타깝고 때로는 대견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렇게 우리 딸의 수두는 6일만에 가라앉았다.
딸이 회복될 때쯤 퇴근해보니 할머니와 우리 딸이 두손모아 이렇게 빌고 있었다. '삼신 할머니, 수두 상처 남지 않게 이쁘게 지나가게 도와 주세요'. 수두가 병원 신세 없이 가볍게 지나갈 수 있었던 건 할머니와 딸의 이쁜 기도 덕분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