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를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
[ 기사 수정 : 13일 오전 9시 40분] "오늘 우리는 이 방사능 비를 맞으면서 또 거리로 나가야죠. 이런 날이라고 빠지면 안 되요. 우산 쓰면 괜찮아요. 집에 있다고 방사능이 나만 피해가는 것도 아니고, 안 그래요?"일본 원전사고 이후 첫 번째 봄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유시민 국민참여당(참여당) 대표는 지난 7일 경기 분당을 이종웅 후보 사무실에 앉아 당직자들과 농담 섞인 대화를 이어갔다. 당 밖에서는 김해을 후보단일화 문제로 온갖 질타가 쏟아지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명랑하게 웃었다.
자당의 후보가 '민주당 손학규 지지선언'을 하면서 사퇴의사를 밝히던 날, 그는 덤덤하게 기자회견 후 점심을 먹고 곧바로 김해로 내려가 방사능 비 속에서 이봉수 후보 알리기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올인 전략에 부합하는 행동처럼 보였지만, 정말? 의심했다.
그런데 그는 정말 방사능 비에 흠뻑 젖었다. "야권단일후보 10일(일), 11일(월) 여론조사로 결정됩니다. 집 전화 꼭 받아주세요. 외출 시는 착신전환!"이라는 팻말을 목에 건 채로. 이 장면은 한 컷의 사진이 돼서 참여당 홈페이지 대문에 걸렸다. 이백만 대변인은 이 사진 한 장에 감동 받은 사람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물론, 이 한 장의 사진 때문에 김해시민들이 감동해서 4·27 재보선 야권단일후보로 이봉수 참여당 후보를 선택했을 리는 만무하다. 그러나 김해시민들은 날마다 창원터널 앞에서 출퇴근 인사를 건네며 눈도장 찍는 유시민 대표를 무심코 지나치지는 못했을 것이다. 비가 오나 맑은 날이나 출근길이나 퇴근길이나 참여당의 간판스타 유시민은 창원터널 앞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으므로.
참여당 간판은 '김해'로, 민주당 간판은 '분당'으로반대로 민주당의 간판은 경기 분당을 누비는 중이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장수가 뒤로 물러서는 법은 없다며 직접 분당을 선거에 뛰어들었다. 다른 지역 선거를 돌볼 틈이 없다. 자기 선거가 바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당 내부에서는 이번 김해을 구도를 '유시민 대 손학규'로 만들었어야 제대로 된 '간판대결'이 될 수 있었는데 그 점이 성사되지 못해 아쉽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손 대표가 자기 선거에 매몰되지 않고 다른 지역 선거에도 관여하는 방식으로 움직였다면 상황은 좀 달라졌을 수 있다는 얘기다.
김영춘 민주당 최고위원이 김해에서 민주당 곽진업 후보 선거대책본부를 맡아 지휘했지만 역부족이었다는 평가다. 그는 유력 야권대선주자도 아니고, 스타 반열에 오른 정치인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유시민 대표의 활약은 결국 여론조사 결과로 드러났다. 여론조사 방법의 유불리를 떠나 결과는 이봉수 참여당 후보가 곽진업 민주당 후보를 3.5%P 가량 앞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전체 표본이 1400 정도였던 것을 감안하면 근소한 차이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혼자서는 넘을 수 없는 벽이 같은 결과로 결국 이봉수 참여당 후보가 김해의 야권 승자가 됐다. 이 후보는 야권단일후보 당선소감을 통해 "저는 오늘부터 참여당의 후보가 아니라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과 시민사회 모두의 후보"라며 "힘과 뜻을 모아 김해에서 야권이 승리하는 역사를 함께 만들어가자"고 밝혔다.
또 그는 "4월 27일 김해와 분당, 순천, 강원도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야권의 승전보를 알리는 나팔이 울려 퍼질 것"이라며 "야권이 승리하는 역사적 과업을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이봉수 후보의 말처럼 그는 야권단일후보다. 본선에 진출했으니 이제 링에 올라 김태호 한나라당 후보와 맞붙어 최후의 1인이 돼야 한다. 승산이 있는 게임을 벌일 태세를 갖춰야 한다. 참여당의 홀로아리랑으로는 돌파할 수 없는 상황이다. 덧셈의 정치가 필요하다. 누가 김해에서 이봉수를 위해 뛰어줄 것인지 세력도 규합해야 한다.
그러나, 민주당의 한 전략관계자는 "지난 협상 과정에서 유시민 대표가 보여준 여러 태도 때문에 내부에 상처가 많이 났다"며 "진심으로 참여당의 승리를 위해 뛰어줄 사람이 누가 있을까 꼽아보는데 머릿속에 잘 떠오르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필두로 곽진업 후보에게 참여당의 제안 100% 여론조사를 수용하라고 설득한 민주당 친노 486 정치인들도 선뜻 나서는 분위기는 아니다.
다만 문재인 이사장은 12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김해를 포함해 야권단일화를 이룬 것은 협상이 참여한 4개의 시민단체"라며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 섭섭한 일, 갈등 또한 없지 않았지만 이제는 다 잊고 단일후보의 당선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것이냐 하는 점은 아직 얘기하기 이른 시점"이라며 "저희 쪽(노무현재단)은 야권단일후보의 당선을 위해 성원과 지지, 지원을 할 것"이라고 전했다. 구체적으로 공동선거대책본부 참여 문제 등은 공당인 참여당이 알아서 결정할 문제이지 그밖의 관계자들이 왈가왈부할 문제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현재까지 유시민 대표는 외부와 접촉하면서 도움을 요청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고향 김해가 갖는 상징성이 있기 때문에 '친노의 결집'을 주장할 법도 하나 그런 신호는 감지되지 않고 있다.
피 튀는 혈전 그 뒤엔?이와 관련, 친노 진영의 한 관계자는 "이쯤 되면 유 대표가 직접 문재인 이사장을 만나서 함께 하는 제스처를 취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 꼭 그런 것은 아닌 모양"이라며 "김해를 노무현 선거로 치르려면 분위기 전환용으로 친노 진영의 어른들 역할도 필요할텐데"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무엇보다 '범노무현진영' 가운데 민주당 친노486 등은 문재인 이사장의 출현으로 노무현정신의 진정성이 강조되면서 그것이 사실상 곽진업 후보 지지로 나타날 것을 기대했으나 전혀 의외의 결과가 나타남에 따라 다소 당혹해하는 분위기다.
친노 성향의 민주당 관계자는 "유시민의 정치가 또 통했다"며 "역시 정치에서는 착한 마음만으로는 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이번 경선결과가 참여당에게 기회인 것은 분명하지만, 유시민 대표가 위험한 정치 시험대에 올랐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야권연합이라는 형식에는 성공했지만 선거에서 패배한다면 반쪽짜리 성공에 불과하다는 것. 따라서 이번 선거를 야권단일후보의 승리 구도로 만들기 위해서는 참여당이 나홀로 방식보다는 더불어 함께 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친노 그룹의 한 관계자는 "핵심은 본선 경쟁력 아니겠느냐"며 "야권 내부의 피 튀는 혈전 끝에 단일후보로 결정됐지만 결국 당선되지 못한다면 그 책임은 참여당과 유시민 대표에게 몰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