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거기서 인쇄된 것 맞아? 그걸 어떻게 알았어?"

 

내가 쓴 기사(미국은 왜 <엄마를 부탁해>에 빠졌나)를 읽은 친구가 메일을 보내왔다. 기사 잘 읽었는데 궁금한 게 있어서란다. 기사 속 사진 설명 가운데 "<엄마를 부탁해>를 인쇄·제본한 인쇄소, RR Donnelley"라는 말이 나오던데 그거 진짜냐고, 어떻게 알았냐는 것이다. 

 

아니, 기자가 기사 쓰면서 그런 것조차 확인 안 하고 사진을 내보냈을까. 물론 친구가 물은 "진짜냐"는 말은 질문이라기보다 그걸 알아내 사진까지 찍었다는 게 신통해서였을 것이다. 이 글은 그 친구의 궁금증에 대한 답으로, 일종의 '취재 후기'다. 

 

<엄마를 부탁해>, 우리 동네에서 찍었잖아

 

영문판 <엄마를 부탁해>가 출간되고 하루가 지난 6일 오후, '반스앤노블' 서점에서 선 채로 이 책을 대충 훑어보았다. 이 소설이 처음 나온 2008년에 이미 읽었던 내용이라 어렵지 않게 페이지를 넘길 수 있었다(2008년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해이다. 갑작스러운 부음에 크게 놀란 나는 황망히 한국으로 떠나 슬픈 장례식을 치렀다. 이후 어머니 유품을 정리하다가 눈물이 나오면 <엄마를 부탁해>를 곁에 두고 읽으면서 어머니를 그리워했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니 맨 마지막 페이지에 이 책을 인쇄한 'RR 도넬리'의 주소가 나와 있었다. 그런데 그 주소를 보고 깜짝 놀랐다. 바로 내가 살고 있는 버지니아의 해리슨버그가 아닌가. '어, 우리 동네에서 찍었잖아?'

 

아, 횡재한 느낌이었다. 그 순간 머릿속에 여러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이곳을 직접 찾아가보는 거야. 영문판 <엄마를 부탁해>는 이미 초판 10만 권을 찍어냈다고 하니 그거 말고 뭐 또 새로운 정보가 있는지 취재해 보는 거야. 2쇄에 들어간다고 하는데 2쇄는 몇 권이나 찍어내는지, 또 3쇄 계획은 있는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뭐 대단한 특종이라도 건져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혼자서 김칫국을 마시고 있었다. 하지만 내 취재 계획은 '야무지게' 다음 단계로 발전하고 있었다.

 

'집에 있는 <엄마를 부탁해> 한국어판을 가져가서 그 사람들한테 보여주는 거야. 그리고 도넬리 관계자에게 두 권의 책을 들게 한 다음 사진도 찍고. 또 뭘 해야 하나?'

 

이러저런한 생각이 떠올라 가볍게 흥분이 되기까지 했다. 나는 RR 도넬리 상호를 적어 가지고 집으로 와서 전화번호부를 뒤졌다. 그런 다음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아내 지난 8일 금요일, 그곳을 찾았다.

 

간단한 질문이나 몇 개 하려고 왔는데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전화번호부에서 찾은 주소에는 RR 도넬리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길을 잘못 들어 헤매다가 나중에서야 발견한 돌 간판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규모가 큰 회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는데 수백 대의 차량이 주차되어 있었고 건물도 굉장히 컸다. 

 

나중에 알고 보니 RR 도넬리는 1864년에 세워졌고 나스닥에도 상장된 글로벌 기업이었다. 본부는 시카고에 있지만 북미와 라틴아메리카, 아시아, 유럽에 회사가 있고 작년 매출액만 하더라도 백억 달러가 넘는 큰 기업이었다. 종업원은 전 세계적으로  5만5천여 명. 이곳 해리슨버그에는 천 명 가량의 종업원이 있다고 했다. 

 

건물 입구에 다다르자 '총기 금지'라고 쓰인 경고문이 출입문에 붙어 있었다.

 

"종업원을 보호하기 위해 회사 내 총기 반입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더 강력한 경고문이 옆에 붙어 있었다. 

 

"회사는 모든 일터 내 공간을 점검하고 조사할 권한이 있습니다. 모든 짐과 도시락, 백팩과 가방은 안전팀이나 매니저에 의해 점검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입구의 무서운 경고문을 보는 순간, 내가 물어보려는 질문들에 답을 듣는 것이 쉽지 않을 거라는 짐작이 들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안내원이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묻는다.

 

"나는 한국에 있는 <오마이뉴스> 통신원인데 이번에 베스트셀러가 된 'Please Look After Mom(<엄마를 부탁해>의 영문판 제목)'을 취재하려고 왔다. 바로 이곳에서 인쇄, 제본이 되었는데 책과 관련하여 몇 가지를 질문하려고 한다."

 

안내원은 잠깐 기다리라고 하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기다리는 동안 안내원에게 회사 규모와 이곳에서 발행된 베스트셀러, 또는 화제의 책이 있는지를 물었다.

 

"말해줄 수 없다."

 

건물 로비에는 이곳에서 발행된 책 가운데 베스트셀러가 된 책을 진열하는 진열장이 있었다. 책은 한 권도 진열되어 있지 않았지만 "베스트셀러를 전시하는 책장"이라고 씌어져 있어 사진을 찍고 싶었다. 그런데 안내원은 차갑게 말했다. 

 

"안 돼요!"

 

바로 그 때, 두 명의 여성 관계자가 내 앞에 나타났다. 취재 목적을 설명하고 질문을 던지니 자신들은 대답할 위치에 있지 않다고 한다. 대신 회사의 언론 홍보 담당자 연락처를 줄 테니 그곳으로 연락을 해보라고 했다.

 

잠시 뒤 종이에 적어온 연락처는 시카고 본사에 있는 미디어 담당인 전무이사 덕 피츠제럴드(Doug Fitzgerald)의 것이었다. 그냥 간단하게 몇 가지 질문으로 끝내려고 했던 일이 복잡해지고 있었다.

 

그래도 이웃에 책 공장이 있는 게 낫지

 

결국 <엄마를 부탁해>를 찍어낸 이곳 해리슨버그에서 내가 계획한 일은 무산되었다. 하지만 발길을 돌리기 전, 나는 건물 입구에 세워진 "#1 베스트셀러"라는 입간판에 대해 물었다. 다소 까칠하게 대했던 그들이 이번에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뉴욕타임스> 선정 '베스트셀러' 가운데 이곳에서 인쇄된 책이 꽤 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읽고 있는 올리버 색스의 <뮤지코필리아(Musicophilia)>도 이곳에서 인쇄되었다. 이 책 역시 <워싱턴포스트>가 선정한 '2007 베스트북' 가운데 하나였다.

 

그날 오후, 나는 그들이 알려준 번호로 전화를 걸어 본사의 언론 담당인 피츠제럴드 전무이사와 통화를 했다. 결과는?

 

"우리는 당신에게 아무런 답을 줄 수 없다. 몇 권을 주문받았는지, 앞으로 몇 권이 더 나올 것인지, 출판 일정에 대해 말해줄 수 없다. 그 책에 대한 전권은 출판사인 '크노프'가 갖고 있다. 그러니 유감스럽지만 아무런 대답도 해줄 수 없다는 게 우리의 입장이다."

 

결국 <엄마를 부탁해>와 관련된 대답은 RR 도넬리에서 얻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해리슨버그의 RR 도넬리가 미국 전역에 배포되는 소설과 비소설을 출간하는 곳이라는 것을 새롭게 알았다. 그러니 <엄마를 부탁해>가 쇄를 거듭하면 이곳 해리슨버그의 RR 도넬리도 무척 바빠지게 되는 것이다. 

 

어쨌거나 내가 사는 동네에서 영문판 <엄마를 부탁해>가 나오고 미국 출판계를 주름 잡는 '베스트셀러'가 나온다고 하니 기분은 좋다. 물론 나와는 전혀 상관 없는 일이지만 기왕이면 내가 사는 동네에 총을 생산하는 무기공장이나 원자력 발전소보다 책을 만들어내는 책공장이 있는 게 훨씬 낫지 않겠는가.


#엄마를 부탁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