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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치지 마!"

친한 사람들 사이에도 쉽게 쓰는 말이다. 사기는 다른 사람을 속이는 행위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모두 서로가 어느 정도 속고 속이면서 살아간다는 걸 안다. 예를 들어 장사꾼이 밑지고 판다는 말은 애교에 속한다.

문제는 사기나 과장의 정도이다. 지나치면 법정에 서게 된다. 원산지를 속인 식당 주인, 정가를 다 받는 '변칙 세일'을 한 백화점 직원, 화대를 떼먹은 술집 손님이 법정에 섰다. 어떻게 되었을까. 어느 정도 사기를 쳐야 사기'죄'가 되는지 판례를 통해 알아보자.

"한우만 팝니다" 실제로는 수입소갈비 판매

[사례 1] '우리 집은 한우만 판매합니다.' 안국산(가명)씨는 <한우마을>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한 건물에서 식당과 정육점을 함께하고 있다. 그는 광고 선전판, 식단표 등에도 한우만을 취급한다고 적어놓았다.

하지만 그의 말은 절반만 진실이었다. 정육점에선 한우만 팔고 있었으나 식당에서는 수입 소갈비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식당 손님들은 당연히 한우라고 믿고 갈비를 먹어오다가 뒤늦게 수입이라는 사실을 알고 분개했다. 

안씨는 "<한우마을>이라는 간판은 식당 간판이 아닌 정육점 간판일 뿐이고 정육점에서만 한우를 판다는 뜻이었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손님들이 그 말을 믿기는 어려웠다. 법원도 마찬가지였다. 판례는 "상품의 광고에 다소의 과장, 허위가 수반되는 것은 어느 정도 인정된다"고 봤지만 이 정도는 안 된다고 했다. '거래의 중요한 사항에 관한 사실'인 고기의 원산지를 속였기 때문이었다.

법원은 "'한우만을 판매한다'는 취지의 광고가 음식점에서 쇠고기를 먹는 사람들에게 한우만을 판매하는 것으로 알게 하기에 충분하다"고 적시했다. 법원은 "진실규명이 가능한 구체적인 사실인 소갈비의 품질과 원산지에 관해 속인 것은 사술(속임수)의 정도가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상술의 정도를 넘는 것"이라며 안씨를 사기죄로 단죄했다. 

정가 다 받으면서 "50% 할인" 가짜 세일


[사례 2] 백화점 여성의류 매장에서 일하는 최세련(가명)씨는 대형 백화점의 난립과 과당경쟁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지 고심했다. 더구나 고객들이 할인 판매 제품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서 특별 대책을 세워야 했다.

최씨는 '1년 365일 세일 작전'에 돌입했다. 신상품을 원래의 정가에서 50% 가격으로 할인하는 것처럼 속여 가짜 세일을 벌이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원가 50만 원짜리 옷에 '100만 원→ 50만 원'과 같은 방식으로 가격표를 붙여 싸게 파는 것처럼 전시했다.

예상대로 옷은 날개 돋친 듯 팔렸고 최씨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최씨는 웃음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이것이 변칙 세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고객들의 항의에 부딪힌 것이다. 최씨는 법정에 서게 됐다. 

최씨도 할 말은 있었다.

"백화점 간 경쟁이 심해서 파격적인 판매 방식이 필요했어요. 다른 백화점들도 마찬가지였다고요. 실제 세일이 아닌 건 미안한 일이지만 정가에 팔았으니 고객들이 손해 본 것도 없잖아요."

하지만 법원은 이 사건에서도 "변칙 세일은 구체적 사실인 가격 조건에 관해 기망이 이루어진 경우로서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상술의 정도를 넘어선 것"이라고 판단했다.

고객 손해가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법원은 "변칙 할인 판매와 소비자들의 구매 간에 인과관계가 인정되는 이상 사기로 볼 수 있으며, 사기는 상대방에게 현실적으로 재산상 손해가 발생함을 요건으로 하지 않는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1990년대 이 판결 이후 한때 백화점에서 이와 유사한 변칙 세일은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요즘도 다양한 이름의 할인 행사 속에 소비자를 눈속임하는 일은 없는지 살펴볼 일이다.

첫 번째 사례의 원산지 표시와 마찬가지로 상품의 가격 역시 거래의 중요한 사항으로서 속여서는 안 된다. 같은 이유로 최근 법원이 과장 광고를 사기로 인정한 사례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 오리, 누에, 동충하초, 녹용 등을 혼합해 만든 제품이 성인병 치료에 특효가 있다는 허위 광고를 해 비싸게 판매한 행위
- 백화점 식품 매장에서 식품에 바코드 라벨을 다시 붙이는 방법으로 생산일자를 고친 행위
- 신생 수입브랜드의 시계를 마치 오랜 전통을 지닌 브랜드의 제품인 것처럼 허위 광고해 고가로 판매한 행위

화대를 떼먹은 것도 사기?

[사례 3] 노라조(가명)씨는 주색잡기가 특기였다. 노씨는 길거리에서 우연히 지갑을 주웠는데 그 안에 신용카드가 들어있었다. 그는 훔친 신용카드를 들고 주점을 찾아갔다. 술과 안주를 마음껏 먹은 노씨는 술집 여종업원에게 모텔에 가자고 꼬드겼다. 카드로 20만 원을 결제해주겠다고 속인 뒤 잠자리를 함께한 그는 돈을 떼먹었다.

노씨가 화대를 떼먹은 것은 죄가 될까 안 될까. 1심과 2심은 죄가 안 된다는 쪽이었다. 이유는 2가지다. 첫째, 여성의 정조는 재산권의 대상이 될 수 없고, 둘째, 화대는 법으로 보호받을 수 없는 경제적 이익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돈을 주겠다고 속여서 잠자리를 했더라도 적어도 사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일반적으로 성행위는 경제적으로 평가할 수 없고, 성매매 대가로 금품을 주기로 한 약속은 무효가 맞다. 그러나 사기죄의 객체가 되는 재산상 이익이 반드시 사법상 보호되는 경제적 이익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화대도 사기죄의 객체인 경제적 이익에 해당한다.

대법원은 여종업원을 속여 잠자리를 하고 화대를 떼먹은 것도 재산상 이익을 얻은 것으로 봤다.

"상대방 손해 없어도 고의 있다면 범죄 성립"

형법 347조 (사기)
①사람을 기망해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득을 취득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사기는 대표적인 재산 범죄이다. 사기란 사람을 속여서(기망해) 재산상의 이익을 얻는 것을 말한다. 흔히 빌린 돈을 갚지 않은 사람을 사기죄로 고소하는 사례가 많다. 하지만 애초에 갚을 능력도 없고 갚을 의사가 없었다는 점이 밝혀지지 않는 이상 사기의 고의가 인정되기는 어렵다. 민사로 해결해야 한다. (민사와 형사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연재
18번 '돈을 받으려고 경찰서에 고소했다고요' 기사를 참고하기 바란다.)

판례에 따르면 기망은 "재산상의 거래관계에서 서로 지켜야 할 신의와 성실의 의무를 저버리는 모든 적극적 및 소극적 행위로서 사람으로 하여금 착오를 일으키게 하는 것"을 말한다. 기억해야 할 점 하나.사기죄는 기망에 의해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는 것을 말하지만, 반드시 상대방에게 현실적으로 재산상 손해가 발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사기꾼으로 전락하기 쉬운 위험한 방법 한 가지가 있다. 인터넷 장터에서 물건을 팔겠다고 글을 올린 다음 구매자로부터 돈을 받고 연락을 끊거나 형편없는 물건을 보내는 것이다. 이걸 속어로 '먹튀'라고 하던가. 인터넷 장터 먹튀는 재미나 호기심 정도로 치부하기엔 너무 위험한, 법적으로 명백한 사기 행위다.


#사기#먹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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