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금요일(6일) 군산시 명산동에 자리한 '화교소학교'를 찾았다. 전남북 4곳의 화교 소학교 중 유일하게 외국인학교 인가를 받은 군산 화교소학교를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처음엔 취재에 실패했고, 두 번째 방문 때 형례용(여, 41세) 교사를 설득하여 허락을 받았다.
중·고등학교 시절 화교소학교 앞길로 등교하면서 화교 학생들과 매일 마주쳤으나 대화는 못했다. 말을 걸면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갔기 때문이었다. 학교 안으로 들어가 조금 열린 문틈으로 지켜보며 경계의 눈빛을 보내던 새카만 눈망울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화교 학생들이 좁은 운동장에서 아침조회 하는 광경, "이, 얼, 싼, 쓰··"를 복창하며 보건체조 하는 모습 등은 볼수록 신기했고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래서인지 오래전부터 마음에 두고 있었다.
한국 어린이만 보였던 화교 소학교
학교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3시. 교문을 들어서자 만개한 철쭉이 활짝 웃으며 반겨주었다. 흰색 페인트칠의 본관 건물에는 교훈 예의염치(禮義廉恥)가, 현관 중앙에는 중화민국을 상징하는 '청천백일기'가 새겨져 있었다.
운동장에서는 여남은 살 또래 남학생 서넛이 축구를 하고 있었다. 현관 양쪽 기둥에는 한자로 '한국 군산 화교소학', '한국 군산 화교협회'가 적힌 간판이 붙어 있어 화교협회 사무실과 함께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현관 오른쪽 서무실 책장 위에는 각종 상패와 우승컵이 진열되어 있었다. 특히 '소학변공실'(小學辨公室)이 적힌 사각 팻말과 벽에 걸린 장개석 총통의 젊은 시절 사진은 화교 학교에 왔음을 실감나게 했다.
계단을 올라 2층 교실을 보니 10여 명의 어린이가 수업을 받고 있었다. 선생님 설명에 귀를 세우고 공책에 뭔가를 열심히 적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한눈을 파는 아이도 있었다. 교실은 조금 소란스러우면서도 질서가 잡혀 있었다.
아이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구경하면서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리려고 뒤쪽 빈자리로 가서 앉았다. 한 학생이 엉덩이를 의자에 진득하니 붙이지 못하고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면서 나를 자꾸 쳐다보았다. 늙수그레한 내가 이상하게 보였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정작 이상한 것은 나였다. 수업이 한국어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국어(중국어) 시간이어서 기본 한자를 배우는 모양인데, 선생이 학생을 지적해서 뭔가 해보라고 시키거나 떠드는 학생에게 주의를 줄 때도 한국어였다.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학생들은 운동장으로 뛰어나갔다. 그런데 귀엽게 생긴 한 학생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뭔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어려운 한자를 책도 안 보고 써내려갔다. 외우고 있는 글귀를 노트에 정리하는 거라고 했다.
학생에게 중국어 공부가 재미있느냐고 물었더니 수줍어하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글쓰기에 열중하는 학생에게 이름 등을 물어보기가 그랬다. 해서 복습하는 차원에서 쓰고 있는 글의 뜻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느린 목소리로 또박또박 설명해나갔다.
"소(小), 심(心), 홍(紅), 록(綠), 등(燈)···을 반복해서 적고 있어요. 길을 건너갈 때는 신호등이 빨간불인지 파란불인지 잘 살피면서 조심하라는 뜻이에요···." 손가락에 힘을 주며 필기하는 학생의 집중력과 기억력이 부러웠다. 한자 실력도 나보다 나은 것 같아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곁에 있던 형 선생이 1학년(한국학교 2학년) 김시헌 학생이라며 그 정도 되면 웬만큼 쉬운 문장은 읽고 쓸 수 있다고 귀띔했다.
형 선생은 중국 학생들은 간자체(簡字體)를 배우고 대만 학생들은 번자체(繁字體)를 배운다며 중국도 원래는 번자체를 사용했는데 1960년대 문화혁명 이후 간자체를 배운다며 중국은 발음기호도 영어로 표기한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선생님에게 듣는 화교소학교 현실
학생들이 밖으로 나가고 형례용(邢禮龍) 선생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수업이 한국어로 이루어지는 걸 보고 놀랐다고 하자, 형 선생은 겸연쩍어하면서 전체 학생이 38명(남: 28명, 여: 9명)인데 부모가 모두 한국인이라고 말했다.
이웃에 살던 화교가 이사하거나 이민 갔다는 소식을 접하면서도 아이들 몇 명은 남아 있을 거라 믿고 있었다. 화교소학교가 폐교될 거라는 얘기를 듣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화교 자녀들의 수업 광경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왔는데 실망이었다. 그렇다고 질문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6학년까지 있다고 들었는데요. 전체 몇 학급인가요?"전체학생 38명을 세 학급(1·2학년, 3·4학년, 5·6학년)으로 나눠 3명(남 1명, 여 2명)의 교사가 담임을 맡고 있습니다."
-학생들 수업료는 어떻게 받나요?"매월 8만 원씩 받습니다. 일반 학원보다 비용이 적게 들고 대만에서 보내주는 교과서를 중심으로 공부를 체계적으로 가르치니까 한국 학부모들이 믿고 자녀를 입학시키는 것 같습니다."
-하루 수업 시간은 어떻게 짜여 있는지요?"중화민국 교육 내용을 중심으로 가르치는데 오후 수업만 합니다. 오전에 한국 학교에 갔다가 오후에 오면 1교시에 50분씩 하루에 두 시간 하지요. 영어, 웅변 등 다른 학원에도 가야 해서 수업을 길게 할 수가 없어요. 중간에 그만두는 학생이 많아 졸업장을 받는 학생이 드뭅니다. 끈기 있게 다니면 좋을 텐데···."
-그럼 올해 졸업하는 6학년은 몇 명인가요?"2010년에는 6명이었는데 올해(2011년) 졸업예정자는 4명입니다. 이곳은 9월에 새 학기가 시작되는데 학생 수가 해마다 줄어들어 안타까워요. 3년 전까지만 해도 봄가을에 소풍도 가고 중화민국 어린이날(4월 4일)과 쌍십절(10월 10일)에 운동회가 열렸거든요."
- 하나 있는 딸을 한국학교에 보내는 이유는?"지금은 세상이 달라져서 아이가 혼자 고립되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한국 역사도 배우고 한국 친구도 많이 사귀라고 입학시켰습니다. 중국어 교육은 집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니까요. 아마 다른 화교 학부모들도 저와 비슷한 생각일 것입니다."
-도나 시교육청에서 공문을 받아보나요?"공식적인 공문은 오지 않습니다. 지원이 없으니 공문이 필요 없겠지요. 그러나 학교 현황을 파악하는 질문서는 가끔 옵니다. 그래도 얼마 전에는 아이들 안전을 위해 시에서 신호등도 설치해주고 담도 쳐주었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 자료를 요청했더니 5년 전부터 근무하고 있어 잘은 모르지만, 두 차례의 화재로 보관하고 있는 자료가 없을 거라면서 미안한지 함께 찾아보자며 서무실로 안내했다. 그러나 아무리 뒤적여도 원하는 자료는 발견되지 않았다.
형 선생님처럼 한국 친구도 사귀고 한국에 대해 배우라고 자식을 한국학교에 보내는 이들이 많아졌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취재를 마치고 교문을 나서면서 기분이 그다지 상쾌하지는 않았다. 한국 국적의 학생들이 화교소학교 교실을 가득 메우고 있는 현실을 시대의 변화로만 보기에는 괴리가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