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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에 살면서 이렇게 불안한 날도 없었다. 이스라엘 내 시위에 관한 뉴스를 시간대별로 접하며 마치 전면전이라도 벌어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나크바데이(대재앙의 날) 시위는 매년 계속됐지만, 올해만큼 과격하고 전국적인 시위는 처음이었다.

15일(현지 시각) 이스라엘과 접한 팔레스타인의 마을 수십 곳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시위가 격렬하게 일어났고, 이스라엘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남쪽의 가자 지구 및 북쪽의 시리아와 레바논 국경에서도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 도중 국경 철망을 넘어 이스라엘 쪽으로 건너오던 시위대 중 10여 명이 이스라엘군 및 레바논군의 발포로 사망했다.

이스라엘 건국과 함께 시작된 팔레스타인 대재앙

 이스라엘 일간지 <마아리브> 5월 16일자 4면. 나크바데이를 맞아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시위가 벌어진 장소들.
이스라엘 일간지 <마아리브> 5월 16일자 4면. 나크바데이를 맞아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시위가 벌어진 장소들. ⓒ <마아리브>
나크바데이는 이스라엘 독립기념일(이스라엘은 1948년 5월 14일에 독립했지만 유대력에 따라 날짜가 매년 다르다. 올해는 5월 10일이다.)을 전후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대(對)이스라엘 항의시위를 벌이는 날이다.

이스라엘의 건국과 함께 시작된 나크바데이는 최근 들어 격렬해지고 있다. 올해에도 오는 9월 유엔총회에서 팔레스타인 국가 승인과 독립을 추진하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이스라엘 간의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그 분노가 나크바데이에 터질 것을 이미 예상하고 있던 터였다. 때마침 나크바데이 직전인 5월 13일에 예루살렘에서 시위를 하던 아랍 청년이 이스라엘군의 총탄을 맞고 사망하자 성난 군중이 격하게 변했다.

14일 아침 감람산으로 향하던 필자의 차량이 중무장한 이스라엘 경찰의 제지를 받았다. 성난 아랍인들이 외국인도 공격할 것을 우려해 아예 통행을 금지한 것이다. 순간 생각했다. '오늘(14일) 예루살렘을 찾은 관광객은 순례를 못하겠구나.' 예루살렘을 찾는 관광객의 대부분이 감람산에 오르는데, 그곳이 예루살렘을 내려다보는 최고의 전망대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며칠 전 예루살렘 동쪽의 이사위예라는 한 아랍 마을을 지나던 필자의 차량에 여러 개의 돌이 쌩하고 날아온 적이 있었다. 창밖을 내다보려던 순간, 돌멩이 하나가 필자의 얼굴 정면으로 날아왔다. 돌멩이는 마침 닫혀 있던 차 유리창에 강하게 딱 부딪쳤다. 차 유리가 아니었다면 내 얼굴을 때렸을 것이다. "와, 차 유리 정말 강하다"는 탄성이 나왔다. 이날 필자의 차량으로 날아온 돌멩이는 요즘 성난 팔레스타인의 민심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나크바데이 때 커다란 건물 열쇠를 들고 시위를 벌인다. 이 열쇠는 이스라엘에 빼앗겨 되찾을 수 없는 자신들의 집과 창고의 열쇠를 상징한다. 이스라엘 건국 때 예루살렘이나 욥바, 헤브론 등의 도시에서 쫓겨나 팔레스타인 내 곳곳에 세워진 난민촌에서 살고 있거나, 전쟁이 끝나면 돌아오리라는 생각으로 이웃 나라로 피난을 떠났다가 아직도 돌아가지 못하는 난민이 수백만 명이다. 이들은 여전히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

나크바데이는 바로 이러한 심정을 호소하는 시위다. 이날이 다가오면 고향이던 이스라엘 땅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요르단강 서안 곳곳에서 시위를 하는데, 이것이 점차 확대되어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살고 있는 터키, 레바논, 시리아, 요르단 등지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시위를 한다.

국경 넘은 팔레스타인 시위대... 이들 향한 발포로 10여 명 사망

 팔레스타인 일간지 <알꾸쯔> 5월 16일자 2면. 팔레스타인 시위대가 잃어버린 집과 창고의 열쇠를 상징하는 커다란 열쇠를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아직도 자신들이 돌아갈 집과 창고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
팔레스타인 일간지 <알꾸쯔> 5월 16일자 2면. 팔레스타인 시위대가 잃어버린 집과 창고의 열쇠를 상징하는 커다란 열쇠를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아직도 자신들이 돌아갈 집과 창고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 ⓒ <알꾸쯔>
그간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매년 산발적으로 시위를 했지만, 올해는 대대적으로 시위를 벌였다. 특히 이스라엘과 접하고 있는 레바논과 시리아에서 국경까지 몰려와 시위를 벌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스라엘 남부 가자 국경에서는 팔레스타인 사람 수백 명이 시위를 벌였고, 이스라엘 군은 공포탄과 가스탄을 쏘며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이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사람 1명이 중태에 빠졌고 수십 명이 다쳤다. 특히 이스라엘과 국경을 접한 시리아와 레바논 국경지대에서는 시위 중 국경을 넘는 일이 발생했고, 이 과정에서 10여 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스라엘은 이날 팔레스타인 마을 곳곳에서 시위대에 맞서야 했으며, 남쪽과 북쪽 국경 지대에서 동시에 넘어오는 시위대를 저지해야 했다. 이스라엘군으로서는 처음 맞는 일이었다.

서두에서도 말한 것처럼, 나크바데이를 맞아 이스라엘과 접한 시리아 국경에서는 수백 명이 시위를 벌이다 철조망을 넘어 이스라엘 쪽으로 넘어왔다. 이를 제지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군의 발포로 4명이 사망했다.

시리아 국경 지대에 모인 시위대 수백 명은 다양하게 구성됐다. 이스라엘 건국으로 땅을 잃은 팔레스타인 난민(시리아에서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난민은 현재 47만 명에 이른다) 뿐만 아니라 두르즈인과 시리아 청년들도 있었다. 두르즈인은 이스라엘과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국경 지대에 살던 소수민족으로 이스라엘 건국과 동시에 한 마을의 일부는 이스라엘로, 나머지 지역은 시리아로 편입되었다. 이들은 매년 이산의 아픔을 시위로 달랬는데, 이번에는 시리아에서 정치적 혼란 상태가 계속되자 이스라엘 쪽으로 넘어와서 살게 해달라는 시위를 벌인 것이다. 또 다른 시위자들은 1967년 '6일전쟁' 때 이스라엘에 뺏긴 골란고원을 되찾겠다는 시리아 청년들이다.

같은 시각 이스라엘과 접한 레바논 국경 지대에서도 올해 처음으로 수천 명의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레바논에서 시위를 벌이다 국경을 넘으려 했다. 이를 제지하는 레바논군과 반대쪽에서 이를 저지하던 이스라엘군이 공포탄을 쏘았고, 이 혼란의 와중에 레바논 국경 지역에서도 시위대 중 4명이 사망했다. 이날 사망자가 발생한 건 시위대의 국경 접근을 제지하던 레바논군의 발포 때문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알꾸쯔>

 이스라엘 일간지 <마아리브>와 팔레스타인 일간지 <알꾸쯔>의 5월 16일자 1면. 이 두 신문은 올해 처음으로 이스라엘과 접한 레바논과 시리아 국경에서 벌어진 시위 및 국경을 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자 이를 헤드라인으로 보도했다.
이스라엘 일간지 <마아리브>와 팔레스타인 일간지 <알꾸쯔>의 5월 16일자 1면. 이 두 신문은 올해 처음으로 이스라엘과 접한 레바논과 시리아 국경에서 벌어진 시위 및 국경을 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자 이를 헤드라인으로 보도했다. ⓒ <마아리브>

발포 정당성 논란... 시리아 음모론도 제기돼

올해 나크바데이는 이렇게 끝났지만 그 여파는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이날의 피는 헛되지 않을 것이라 평가했다.

한편 시리아 국경 지대에서 시위대가 이스라엘 쪽으로 넘어온 것과 시위대를 향해 발포한 것을 놓고 벌써부터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이스라엘의 좌파와 국제사회는 이스라엘군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한 것은 과잉대응이었다고 비난하고 있지만, 국경을 넘어오는 이들에게 발포한 정당방위였다고 반박하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아울러 국경의 군사지역에 민간인 시위대가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시리아 정부의 허가 혹은 묵인 없이 가능했겠느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시리아가 자국의 정치적 불안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이스라엘 쪽으로 돌리기 위해 모종의 공작을 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이스라엘#나크바#시리아#레바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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