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느덧 5월이 가버렸습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 5월 캘린더를 떼어내면서 이상한 '이별 체감' 같은 것을 맛보았습니다. 6월 달력을 보면서는 '30일 후에는 2011년도 절반이 꺾어지겠구나!' 공연한 생각을 했습니다.

시간의 빠름과 세월의 덧없음을 한편으로는 아쉬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것에서 위안도 얻게 되니, 이런 모순이 또 어디 있을까 싶습니다. 솔직히 말해 요즘은 내 나이와 상관없이 세월의 걸음을 재촉하는 심정입니다.

이제 633일 남았나요. 카운트다운이 진행 중인데요, MB의 잔여 임기를 초 단위까지 알려주는 시계화면을 보노라면 참 흥미롭습니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초침이, 숫자들의 율동이 마치 힘찬 군무(群舞)처럼 보이기도 하고, 내 심장 박동과 호흡을 잘 이끌어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성모의 밤' 행사에 참여한 신자들 대성당 앞 마당에 모여 성모상 앞에서의 예절을 마치고 성당 입장을 기다리는 신자들
▲ '성모의 밤' 행사에 참여한 신자들 대성당 앞 마당에 모여 성모상 앞에서의 예절을 마치고 성당 입장을 기다리는 신자들
ⓒ 지요하

관련사진보기


천주교 신자인 제가 적을 두고 있는 대전교구 태안성당에서는 어제(5월 31일) 저녁 '성모의 밤' 행사가 있었습니다. 전 세계 모든 가톨릭 성당들이 5월 중에 '성모의 밤' 행사를 갖는데, 5월 마지막 날에 행사를 갖는 성당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태안성당도 올해는 5월을 마무리하면서 마지막 날 밤에 행사를 가졌는데, 지난해는 29일(토) 저녁에 행사가 있었습니다. 같은 날 공주 공산성 안의 불교사찰 영은사에서는 4대종단(천주교‧불교‧원불교‧개신교)과 대전충남 문화예술인들이 함께 하는 4대강 공사 저지를 위한 '금강 지키기' 행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고심을 해야 했지요. 고심 끝에, 성당 '성모의 밤' 행사는 해마다 갖는 행사이고, 공주 공산성 영은사 '금강 지키기' 행사는 너무도 절박한 일이라서 결국 아내와 함께 공주행을 단행했지요.

우리 본당에는 또 한 분의 시인이 계신데요. 그 시인이 지난해 '성모의 밤' 헌시 낭송을 담당하게 돼서, 저는 좀 더 수월하게 공주 영은사 행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성모의 밤' 헌시 낭송이 제 담당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또 한 분의 시인과 제가 우리 본당 '성모의 밤' 헌시 낭송을 겨끔내기로 담당하는 셈입니다. 그래서 '성모의 밤' 헌시를 또 한 편 짓게 되었습니다.

조금 섭섭한 일도 있었습니다. 내게 '성모의 밤' 헌시를 부탁하신 본당 사목협의회의 간부 되는 분이 재미있는 말씀을 했습니다. 주임신부님의 강론이 너무 길어서 신자들이 '성모의 밤' 행사를 전체적으로 지루해할 수도 있으니 헌시를 짧게 지어달라는 부탁이었지요. A4 용지 2/1 정도로 지어달라는 분량 제시까지 하더군요.

편지 형식의 산문을 짓는 것도 아니고 운문을 짓는 것인데, A4 용지 2/1 정도라니 어이없기도 하고 불쾌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습니다. 운문에 대한 무지의 일단이기도 할 것 같고, 헌시 낭송을 요식의 하나로만 간주하는 태도일 것도 같고…….

대성당 입장 성모상 앞에서의 예절을 마치고 행렬을 지어 대성당으로 입장하는 신자들
▲ 대성당 입장 성모상 앞에서의 예절을 마치고 행렬을 지어 대성당으로 입장하는 신자들
ⓒ 지요하

관련사진보기


그래도 아무 말 없이 웃고 말았습니다. 알았다고 하고선 며칠 동안 내용을 생각했다가 하루 전에 작업을 했습니다. 짓고 보니 A4 용지 한 장이 넘어버렸지만, 그래도 짧은 구절들로 이루어지고 여러 개 연들로 나누어진 운문이니, 산문처럼 이어 붙여서 적으면 A4 용지 2/1 안으로 들어올 것도 같더군요. 낭송을 잘하면 오히려 짧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고…….
              
내용 때문에 고심을 하기도 했습니다. 성모 마리아님을 찬양하고 흠모하는 천편일률적인 내용에서 탈피하고 싶었습니다. 찬미보다는 참회와 절절한 기원을 표출하고 싶었습니다. 현실 문제들을 다루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시를 짓고 또 여러 번 손질을 한 다음 '성모의 밤' 행사에 참여하여 낭송을 하기 직전까지도 고민을 해야 했습니다.

헌시를 들으며 다소 보수적인 것 같은 주임신부님은 어찌 생각하실까? 혹 반감을 갖는 신자들은 없을까? 또 나같이 환갑을 훌쩍 넘어버린 사람이 시를 들고 앞에 나아가 낭송을 한다는 게 과연 어울리는 일일까? 젊은 사람이 시를 지어 낭송을 한다면 얼마나 보기 좋은 모습일까? 그런 생각들이 이상한 슬픔마저 안겨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최선을 다해 낭송을 했습니다. 대성당 안을 메운 신자들 모두 숙연한 모습이었습니다. 내 시를 귀담아 들으면서 내용에 공감한 나머지 작게 탄성을 발하는 신자들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성모의 밤' 전례가 끝난 후 내게 와서 악수를 청하는 이들도 있었지요.

나는 내 신앙심과 양심의 작용 속에서 소신껏 헌시를 지었고, 또 절절한 마음으로 정성껏 성모 마리아님께 드렸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또 마땅히 해야 하는 몫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다시 그런 마음을 추스르며 여기에 그 시를 소개합니다.

초와 꽃 봉헌 신자들은 한 손에는 촛불을 들고, 한 손에는 꽃송이를 들었다. 촛불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꽃송이는 성모 마리아를 상징한다. 모두 두 줄로 행렬을 지어 차례로 제대 앞으로 나아가 예수님과 성모님께 촛불과 꽃송이를 드렸다.
▲ 초와 꽃 봉헌 신자들은 한 손에는 촛불을 들고, 한 손에는 꽃송이를 들었다. 촛불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꽃송이는 성모 마리아를 상징한다. 모두 두 줄로 행렬을 지어 차례로 제대 앞으로 나아가 예수님과 성모님께 촛불과 꽃송이를 드렸다.
ⓒ 지요하

관련사진보기


          어머니, 죄송합니다

해마다 5월이면
풍만한 녹음과 갖가지 꽃들의 향연 속에서
어머니께 찬미와 공경을 드리는
'성모의 밤' 행사를 지내며
올해는 더욱 부끄럽고 죄송합니다

어머니께 찬미와 공경을 드리는 일이
그저 면구스럽기만 합니다
어머님께 떳떳이 드릴만한 것이 없습니다
김대건 신부님께서
서해바다의 거센 풍랑 속에서
우리 한국교회를 성모 마리아님께 봉헌한 이후
한국교회의 모든 성당들 앞에는
성모상이 모셔져 있을 정도로
한국교회의 성모님 공경은 세계에 자랑할 만한 일이지만
사실은 속빈 강정이나 다름없습니다

오늘 우리 한국사회는 참담한 상황입니다
저출산율과 이혼율과 자살율은 세계 1위를 달리고 있고
고위 공직자들의 부정과 불법은 기본이 되어 있으며
사회 전반의 가치관 혼돈은 극에 달해 있습니다
국민 대다수는
다른 것은 다 죽어도 경제만 살면 된다는
미혹에 빠져 살았고,
그리스도교 신자라는 위정자들은
예수님의 눈과 마음을 등진 채
남북관계를 험악하게 만들며 전쟁분위기를 고조시켰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지으시고 나서 "보시니 좋았다"하신 자연을
천문학적인 돈을 퍼부어 파괴와 훼손을 자행하면서
바벨탑을 쌓아가는 사람들도 그리스도교 신자들입니다

생각할 줄 아는 국민
하늘 우러르며 사는 국민들을 만들어 내기 위한
교육철학은 실종된 채
교육현장에서는 오늘도 실용만을 외치며
미래 세대들을 온통 경쟁으로만 몰아가고 있습니다
대다수 아이들이 동시 한 편 외울 여유조차 잃은 채
영어만을 외우고
자연과 벗하기보다는 방안에 틀어박혀
마구 죽이고 부수는 일에 열광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죽음의 문화가 날로 극대화되어 가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오늘도 찬란한 외양을 갖추고
성모님께 찬양과 공경을 드리고 있습니다

어머니, 부끄럽고 죄송스럽습니다 
오늘밤 저희들로 하여금
진심으로 어머니 앞에서 참회하게 하소서
어머니께 무엇을 드려야 할지 고민하게 하소서
하느님을 믿고 살아가는 저의 삶이
사회공동선을 위한 것이기보다는
나 자신만을 위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하소서

5월의 신록 속에서
어머니께 찬양의 노래와 꽃다발을 드리는
이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밤에
저로 하여금
속빈 강정과 빛 좋은 개살구를 면할 수 있는
새로운 마음과 절절한 열의,
지혜와 통찰의 눈을 갖게 하소서

어머니, 부족하고 죄 많은 저를
일깨워주시고 도와주소서!
참회의 눈물 안고
엎드려 간청 드리옵니다!   

덧붙이는 글 | *2011년 5월 31일, 태안성당 '성모의 밤' 행사 때 직접 헌송함.



#4대강 사업 #가톨릭교회#'천주교 태안성당#성모의 밤#헌시 낭송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