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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59%)에 훨씬 못 미치는 36%만이 '삶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한국인들은 OECD 평균(연 1739시간)보다 훨씬 많은 연 2256시간 일한다.""한국인들은 OECD 평균(69%)에 훨씬 못 미치는 44%만이 '전반적으로 건강한 상태'라고 답했다."OECD가 지난달 24일(현지시각)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발표한 행복지수(Better Life Index)의 세부 내용이다. OECD는 34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소득, 일, 건강, 삶에 대한 만족도 등 11개 부문을 수치화해 발표했다.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전반적으로 낮았다. 회원국 중 26번째다.
이뿐 아니다. 지난해 5월 OECD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21.5명(10만 명 당)으로, OECD 평균(11.7명)의 2배에 달했다. 방정환재단과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는 지난달 4일 "우리나라 어린이·청소년의 주관적 행복지수가 OECD 회원국 중 꼴찌"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잘 극복했다고 자평해왔다. 하지만 다수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악화됐을 터다. 최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야간노동 철폐"를 주장한 유성기업 노조원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반값 등록금 실현"을 외친 대학생들은 모두 경찰에 연행됐다. 반면, 재벌 대기업과 고소득층은 '부자 감세' 혜택으로 곳간에 돈을 쌓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행복경제학자'인 이정전(68)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명예교수는 이명박 정부를 향해 "경제 성장만 추구해서는 국민의 행복을 높일 수 없다"고 일침을 가했다. 정부의 목표는 국민의 행복이어야 하는데, 이명박 정부가 이를 거스르고 있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주류 경제학자들에 대한 비판도 아끼지 않았다. 이정전 교수는 최근 펴낸 책 <경제학을 리콜하라>에서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어서면 경제 성장이 행복도를 끌어올리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상식"이라며 "애덤 스미스는 250여 년 전 '물질적인 부는 행복의 척도가 아니다'고 했다"고 전했다.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가회동 김영사 서울사무소에서 그를 만났다.
애덤 스미스조차 "물질적인 부로 행복을 평가해선 안 된다"
주류 경제학이 득세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행복경제학을 용기 있게 말하는 이는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와 이정전 교수 정도다. 이정전 교수가 지난 2002년 2월 펴낸 <시장은 정말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는 국내 첫 행복경제학 서적으로 알려져 있다. 서구 선진국에서는 이미 1960년대에 행복경제학의 개념이 정립됐다.
미국의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은 1974년 경제성장과 행복 수준은 반드시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고, 이는 이후 학계에서 '이스털린의 역설', '행복의 역설'로 불렸다. 이 교수는 "당시 선진국에서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어서자, 경제가 성장해도 국민의 행복은 개선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경제성장을 통해 먹고 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면, 그 이후부터는 삶이 윤택해지고 더 많은 돈을 벌어도 행복해지지 않는다. 그 기준이 2만 달러라고 많은 연구결과가 보여주고 있다. 100평(330㎡)형 아파트에서 150평(495㎡)형으로 이사 간다고 하면, 처음엔 좋겠지만 더 큰 아파트를 보면서 처음 가졌던 행복감을 사라질 것이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행복지수는 주관적인 것이라고 폄하하며, 경제 성장만을 강조한다."고전 경제학의 시조인 애덤 스미스의 주저는 <국부론>(1776년)이 아니라, <도덕감정론>(1759년)이다. 그는 이 책에서 물질적인 부로 행복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애덤 스미스조차 250여 년 전에 경제 성장만 앞세우면 안 된다고 역설한 것이다. 존 스튜어트 밀이나 존 메이너드 케인스 역시 경제 성장이 무조건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고 했다."
- 1인당 국민 소득이 2만 달러를 넘어선 우리나라는 유독 선진국에 비해 행복도가 낮다."빠른 경제성장으로, 어느 나라보다 돈의 위력을 과신했기 때문이다. 돈만이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생각했다. 또 다른 원인으로는 너무 심한 경쟁을 지적할 수 있다. 돈을 벌기 위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밤늦게까지 일하면 행복하겠나. 다른 가치들은 배제된 채, 돈 버는 데 혈안이 된 사회는 불행할 수밖에 없다."
- 그래도 경제 성장만을 부르짖는 이들이 많다."맹목적인 경제성장을 해야 이득을 보는 계층이 있다. 바로 재벌과 고소득층이다. 이들은 정부가 경제성장을 명목으로 국민의 세금을 걷어서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세금을 깎아야 한다고 말한다. 관료들도 이에 호응한다. 이를 통해 경제가 성장하면 그 혜택을 이들이 독식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기득권 지위가 위태로워지고 뜯어먹을 게 없어지지 않겠나."
정부의 목표는 국민 행복... 이명박 정부는? "아니다"
인터뷰의 화제는 자연스레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으로 옮겨졌다. 그는 "정부의 목표는 국민의 행복"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가 이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고 보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정전 교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라고 하지만, 양극화 심화로 국민의 20%인 고소득층을 제외한 나머지 80%의 소득은 2만 달러 이하다. 각종 감세나 규제 완화로 20% 고소득층을 더 잘 살게 해줘봤자, 행복은 늘지 않는다. 각종 재분배 정책을 통해 2만 달러를 밑도는 80%의 소득을 올려주면, 전체 한국인의 행복도가 크게 증가할 것이다."이정전 교수는 지난 2008년에 펴낸 책 <우리는 행복한가>에서 국민의 행복을 높일 수 있는 대표적인 방법으로 일자리 창출을 꼽았다. 이명박 정부와 보수 경제학자들은 법인세 감세 등이 대기업의 투자를 늘려 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일자리가 정말 많이 늘었느냐"고 반문했다.
- 세계화 이후 경제가 성장해도 일자리가 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 "정부와 기업이 정말 일자리를 늘리는 데 힘을 쏟고 있다면, 제1의 목표를 일자리 창출로 잡아야 한다. 삼성에서 매분기마다 이윤을 발표하지 말고, 일자리 창출을 발표한다고 생각해봐라. 일자리 창출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이윤만 강조하니, 이윤이 창출되지 않는 일자리는 제거된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법인세를 깎아줘도 일자리가 늘지 않는다."
- 이명박 정부는 건설업계 부양에 힘을 쏟고 있다. 집값 오르면 국민들이 행복해지나? "큰 집으로 옮기게 되면, 얼마나 행복할까? 잠깐 기분 좋겠지만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나보다 더 큰 집을 가진 사람과 비교하면서 말이다. 다른 집 역시 값이 오르니, 더더욱 큰 행복을 느끼기는 어렵다. 집값 부담 때문에 고통 받고 있는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집값 부담을 떨어뜨리는 게 국민 행복을 더 증진시키는 일이다."
- 반값 등록금과 청년 실업 등 교육 문제가 가장 큰 화두다."국립대는 등록금을 더욱 낮춰야 하고, 사립대는 등록금이 적정한지 투명하게 따져봐야 한다. 전체적으로 경쟁을 낮춘다면 학생들이 더 행복해질 수 있다. 현재의 교육은 학생들을 좋은 기업에 입사해 돈 많이 벌도록 하는데 집중돼 있다. 하지만 이런 길을 간 사람들 중에 불행한 사람들이 많다. 경쟁보다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4대강 사업은 건설 산업 위한 돈 퍼붓기"이정전 교수는 본래 환경경제학자다. 행복경제학을 연구하게 된 것도 환경을 파괴하면서까지 경제를 성장시켜야 하느냐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명망 있는 환경경제학자인 그가 지난 30년 동안 정부 프로젝트를 받아 작업을 한 것은 한 손에 꼽을 정도다. 관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이곳저곳에 기웃거리는 일부 교수들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그는 "프로젝트를 따내서 돈을 들고 오지 못해, 제자들에게 항상 미안했다"고 했다. "왜 정부 프로젝트를 따내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많은 정부 프로젝트에는 답이 정해져 있다"며 "정부 입맛에 맞는 연구 작업을 해달라고 하는데, 어떻게 참여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대표적으로 4대강 사업을 꼽았다.
"정부는 환경 연구자들에게 4대강 사업 프로젝트를 많이 맡겼다. 대부분 일자리가 많이 창출되고 환경이 좋아진다는 답을 미리 제시했다. 당장 써먹을 수 있도록 빠른 작업을 원하니 연구 수준도 깊지 않다. 사실 4대강 사업은 건설 산업을 위한 돈 퍼붓기 아닌가. 사람들은 콘트리트 강변이 아닌 자연상태에서 더 큰 행복을 얻는다. 이런 주장을 해서 그런지 나한테는 4대강 사업 프로젝트 제안이 없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