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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7일은 반값 등록금 실현을 위한 대학생 평화집회가 10회째 열렸습니다. 집회 신고를 했지만 경찰은 집회를 허가하지 않았지요. KT 앞 광화문 광장 앞, 청계광장 앞까지 모두 경찰을 배치해 집회를 막았습니다. 학생들과 시민들은 프레스 센터와 청계광장이 이어지는 곳에 모여 촛불문화제를 시작했습니다. 앰프를 실은 차를 1시간 반 가량 따라다니면서 내리는 것을 방해한 경찰 때문에 문화제가 늦게 시작됐지요.

 

동화면세점 앞에서는 가사도우미와 환경미화를 담당하는 어머니들이 모여 최저임금 실현을 위한 집회를 하더군요. 그곳을 지나쳐 경찰들 사이를 뚫고 학생들이 모여 촛불문화제를 진행하는 곳으로 왔습니다.

 

반값등록금 실현 집회가 시작된 지 한 시간쯤 지났을까요? 어디선가 갑자기 고소한 냄새가 풍겨왔습니다. 저녁도 못 먹고 문화제에 참석한 이들이 한참 배가 고플 시간이었지요. 사회자가 어머니들이 오셔서 즉석에서 주먹밥을 만들어 학생들과 시민들에게 나누어 준다고 멘트를 하더군요. 호기심에 가보니 바로 반대편 동화면세점 앞에서 최저임금 현실화를 위해 집회를 하던 민주노총 산하 여성위 어머니들(우렁각시) 이었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한가마니나 해와서 학생들에게 나눠 줄 주먹밥을 만드는 중이었습니다.

 

주먹밥을 나눠준다는 안내 방송이 나가자 순식간에 학생들이 줄을 서더니 "열개요, 다섯 개요. 여기도 주세요"라며  여기저기서 주먹밥을 달라는 요청이 밀려들었습니다..

 

주먹밥 빚으랴 비닐 팩 주랴 학생들이 원하는 개수만큼 나눠주랴... 어머니들은 손이 모자라서 쩔쩔매더군요. 사진을 찍던 저는 카메라를 어깨에 걸고는 함께 주먹밥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위생장갑을 끼고 밥을 동그랗게 꼭꼭 뭉치는데 뜨거워서 제대로 뭉치기가 힘들었습니다. 1말들이 상자 10박스에서 6번째 박스를 열어 주먹밥을 만들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4박스를 함께 만들었는데  손은 뜨겁고 다리는 끊어질 듯 아프더군요.

 

10개 박스의 주먹밥을 다 만들 때까지 서서 뜨거운 밥을 손과 주걱으로 뒤집어 골고루 섞고 꼭꼭 눌러 주먹밥을 빚은 어머니들은 얼마나 고단할까요. 주먹밥을 열심히 만들고 있는 어머니를 붙잡고 한 기자가 묻더군요.

 

"어디서 나오셨고 왜 주먹밥을 만들어 나눠주시게 되셨나요?"

"민주노총 여성위원회 소속 어머니들이고요. 학생들이 등록금 반값 실현하려고 나와서 집회하는데 피자나 치킨 그런 것만 먹더라고요. 그래서 학생들에게 밥을 먹이는 게 어떨까 의논을 하고 밥을 지어와 주먹밥을 만들게 됐습니다. 그래도 밥을 먹어야 든든하지요."

끼니를 거르고 달려가는 자녀를 억지로 붙잡아 밥한술이라도 먹여보내던 어머니의 마음이 동한 것입니다. 모두가 내 자식 같았던 게지요. 어미니들로서는 대학생들의 요구가 도무지 남의 일 같지 않았던 것이지요. 제가 열심히 주먹밥을 만들면서 어머니들의 일이 남의 일 같지 않았던 것처럼요.

 

아들아이가 대학 1학년 등록금과 입학금을 합쳐 500만 원이 넘는 돈을 한학기 수업료로 냈습니다. 4식구의 가장인 나의 한 달 수입은 100만 원에서 150만 원 사이인데 말이지요.

 

아이 2학기 등록금을 어찌 마련할까 하는 생각만으로도 까마득하기만 합니다. 장애가 있는 여성 가장에다 사회에서 취업을 하기엔 고령인 나 같은 사람은 반값이 아니라 등록금 제로가 필요한 상황이지요. 6월 10일 학생들과 학부모가 모두 나와 6.10 민주화의 함성을 되살렸으면 좋겠습니다. 반값 등록금이 실현될 때까지 말이지요.


#반값 등록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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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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