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7일 저녁, 청주의 대표적 관광명소인 상당산성에서 성곽 길을 따라 걷는 '달빛여행'이 진행되었다. 언론들은 행사를 홍보해줬고, 청주삼백리 회원들은 일찍 도착해 진행을 준비했다. 장마철 수시로 변하는 날씨를 누가 알겠는가? 시내 외곽에 위치한데다 날씨가 흐려지니 몇 명이나 참여할지가 관심사였다.
현명한 사람들은 시간, 거리 불문하고 내용 좋은 행사를 찾아다닌다. 시간이 다가오자 매월당 김시습의 시비 뒤편 잔디광장으로 하나, 둘 모여든 사람들이 100여 명에 달했다. 청주삼백리 송태호 대표가 지난 5월 17일 '청남대 달빛여행'에 이어 '상당산성 달빛여행'을 추진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는 것으로 행사가 시작되었다.
관심 부족이 원인이겠지만 살다보면 자주 접하면서도 모르고 있는 것들이 많다. 어떤 것이든 관심을 가져야 눈에 보인다. '달빛여행'에 앞서 퀴즈를 풀며 내 고장 청주에 관심을 갖는 시간을 가졌다.
*상당산성은 사적 몇 호인가? → 제212호
*상당산성에 있는 문의 이름은? → 진동문(동문), 미호문(서문), 공남문(남문), 동암문, 남암문
*상당산성이 위치한 산의 이름은? → 상령산
*청주에서 제일 높은 산은? → 선도산(547m)
*통합을 추진 중인 청주와 청원에서 가장 높은 산은? → 좌구산(657m)
*청주 흥덕사지에서 직지를 인쇄한 연도는? → 1377년
*청주라는 지명은 언제부터 쓰기 시작했나? → 고려초기인 태조 때 '서원'에서 맑은 고을 '청주'로 지명이 바뀜
퀴즈가 끝나고 잔디광장을 올라 문에 도깨비문양, 천장에 남쪽의 수호신 주작이 그려져 있는 공남문에 들어섰다. 공남문은 원형이 잘 보존된 상당산성의 정문이다. 성문이 뚫렸을 때 적군이 쉽게 들어오지 못하도록 뒤쪽에 옹벽이 있다. 문루 위에서 잔디관장을 내려다보고 남암문이 있는 해맞이언덕으로 향했다.
성벽 위로 난 길이 제법 가파르다. 숨이 가빠지고 땀도 흐른다. 힘이 들지만 길게 줄지어서 언덕을 오르는 모습이 보기 좋다. 남암문 위 해맞이언덕에서 송 대표가 한남금북정맥에 대해 설명하는데 행사를 시샘이라도 하듯 빗방울이 떨어졌다. 남암문과 연결된 산등성이가 한강의 남쪽과 금강의 북쪽을 잇는 한남금북정맥이다. 이 산등성이의 물이 낭성방향으로 흘러가면 한강, 시내방향으로 흘러가면 금강의 물줄기가 된다.
시내의 불빛이 잘 바라보이는 곳에서 숲 해설을 하시는 분에게 자연과 인간, 숲과 문명, 식물과 동물의 수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서문인 미호문(弭虎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런 때는 조금 더 아는 사람이 문화해설사다. 아내에게 백제의 상당현에서 유래한 상당산성의 이름, 김유신의 셋째 아들 김서현이 서원술성을 쌓았다는 기록, 장수가 군사를 지휘하던 곳으로 보화정 현판이 걸려 있는 동장대, 쌀뒤주에 누구든 필요하면 퍼가라는 '타인능해(他人能解)'를 써놓고 나눔을 실천했던 구례의 운조루에서 발견된 상당산성도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이었다.
서문의 이름에 왜 활고자 미(弭)자와 범 호(虎)자가 들어있는지 궁금하다. 서문에서 바라보는 성벽이 활모양이고, 좌청룡ㆍ우백호ㆍ남주작ㆍ북현무는 사람이 남쪽을 보고 선 것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서방신인 백호를 상징한다는 주장이 있다. 미호문 앞에 조선시대에 쌓은 새로운 성벽이 발굴되었다. 낮에는 이곳에서 미호천, 오창, 중부고속도로가 한눈에 들어온다.
미호문에서 마을길로 접어들어 화려하게 불을 밝힌 상업지역, 연못, 공남문을 지나 출발지인 잔디광장으로 갔다. 3대의 자동차가 흙 위에 장판을 깐 무대를 향해 불을 밝힌 채 공연이 시작되었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 중략 ~ 아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시에 푹 빠져들도록 감정을 살리는 권금주 회원의 시낭송 시간. 심순덕 시인의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가 공남문 앞 잔디광장에 울려 퍼질 때는 며칠 전 꿈속에서 봤던 어머니가 생각나 울컥 가슴이 메었다.
행사 때마다 무료봉사로 자리를 빛내주는 '얼쑤! 봉사단'의 창, 살풀이, 오카리나연주, 각설이 등 멋진 공연이 9시 40분까지 이어졌다. 흐린 날씨가 달을 감춘 달빛여행이면 어떤가. 큰 덩치를 사뿐사뿐 움직이며 멋들어지게 살풀이춤을 추는 이용일 회원에게 박수를 보내고, 오카리나로 연주하는 천년바위와 동반자를 따라 부르고, 행사에 출연한 공연단과 참여한 관람객이 한데 어우러져 흥겹게 춤을 췄으니 대 성공이다.
정성어린 손길로 두부를 직접 만드는 산성마을 '마오의 두부사랑이야기(043-250-1053, 252-1053)'에서 행사 참여자들이 실컷 먹고도 남을 만큼 막걸리와 두부를 무료로 제공했다. 상당산성에 가면 마오의 두부사랑이야기에 들려 맛이 일품인 두부 찜과 두부 전골 안주에 직접 빚은 막걸리 한 사발 팔아줘야겠다. '상당산성 달빛여행'은 진행자, 공연자, 참여자 모두가 내 일처럼 앞장서 만든 행사였다. 어떤 행사든 뒤처리가 깔끔해야 한다. 장마철에 비가 내리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행사장을 정리했다.
참여자가 적어 아쉬웠지만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얘기했다. 너무 좋았다고, 감동적이었다고, 이런 행사 자주 했으면 좋겠다고…. 한 술에 배부를 수 없다. 이렇게 조금씩 사람들의 가슴속에 뿌리를 내리면 된다. 시정이나 도정을 책임진 분들 바쁘다는 것 다 안다. 그래도 한번쯤 자리를 같이하며 행사의 정례화에 힘을 실어주면 좋을 것이다.
세상살이 마음먹기에 달렸다. 하늘에서 보지 못한 둥근달을 가슴에 품고 집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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